2016년 2월 11일 목요일

중력파

이론 물리학자들은 수식(數式)으로 세상을 읽는다. 간결할수록,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수록 아름다운 수식으로 여긴다. 현대 과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식은 1915~16년 나왔다. 아인슈타인의 논문 네 편에 담긴 방정식들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이라고 부른다. 방정식을 풀면 시간과 공간, 블랙홀과 빅뱅까지 우주 만물의 원리가 쏟아진다.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현상은 지난 100년 모두 실험으로 증명됐다. 마지막 남은 것이 중력파(重力波)다.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동심원(同心圓)을 그리며 퍼져 나간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별이 폭발하고 블랙홀이 충돌하면 잔잔한 우주 공간이 출렁인다. 여기서 생긴 중력의 물결은 에너지를 담고 우주 전체로 번져 간다. 과학자들은 반세기 넘게 지구를 지나는 중력파를 찾으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물결이 갈수록 잦아들 듯 중력파도 지구에 다다를 즈음이면 아주 약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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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미국 과학자들이 남극 전파 망원경으로 3년을 추적한 끝에 중력파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금세기 최고 발견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불과 열흘 뒤 관측 결과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몇 달을 재검증했고 발표는 취소됐다. 중력파라고 믿었던 것은 우주먼지가 만든 잡음이었다. 중력파를 찾던 국제 연구단이 내일 중대 발표를 한다고 예고했다. 이번엔 진짜 중력파를 찾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연구단은 4㎞ 터널 둘을 이어 붙이고 끝에 거울을 단 장비 '라이고(LIGO)'를 썼다. 레이저는 똑바로 나아간다. 하지만 거울 사이를 레이저가 오가는 도중에 중력파가 지나가면 거울이 출렁이면서 레이저가 비뚤어진다. 출렁이는 폭은 원자 하나 크기 정도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물리학 이론을 감수(監修)했던 킵 손 캘리포니아공대(칼텍) 교수다. 중력파가 검출됐다면 그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다.
▶라이고에는 1조원이 넘게 들었다. 중력파가 뭔지 몰라도 다들 잘 사는데 왜 과학자들은 목을 매는 것일까. 맥스웰은 19세기에 전자기(電磁氣) 현상의 원리를 담은 수식을 발표했다. 이를 1888년 헤르츠가 실험으로 확인하자 제자가 "어디에 쓸 거냐"고 물었다. 헤르츠도 몰랐다. 7년 뒤 마르코니가 이 원리로 무선 통신을 발명했다. 과학자들은 중력파 발견도 전자기 현상처럼 새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젠가 인간이 중력을 조작해 공중을 마음대로 떠다니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런 시대로 가는 티켓이 1조원이라면 오히려 너무 싸지 않은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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