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4일 목요일

왜 구글과 페이스북은 바둑에 집착하는 걸까?

인류는 언제나 게임과 놀이를 즐겨왔다. 아니, 어쩌면 '쓸모없는' 놀이야말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 진화적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이 중 바둑을 '게임 중의 게임'이라고 한다. 가로 19줄, 세로 19줄로 구성된 바둑에서는 우주 전체의 원자 숫자보다 더 많은 조합과 배열이 가능하다. 덕분에 이미 1997 체스 월드 챔피언을 물리친 컴퓨터도 바둑에서만큼은 여전히 인간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지난주까지 말이다.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지난주에 유럽 프로 기사를 꺾는 데 성공했다. 단순히 구글이 보유한 천문학적 계산 능력 덕분만이 아니다. 알파고는 프로 기사의 게임 기록을 머신 러닝을 통해 습득한 것이다. 묘하게도 불과 며칠 전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역시 페이스북이 개발한 디프 러닝 바둑 프로그램 '다크 포레스트(DarkForest)'를 소개하기도 했다.

왜 구글과 페이스북은 바둑에 집착하는 걸까? 단순히 게임을 더 잘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체스와 바둑은 완벽한 게임(perfect play) 중 하나다. 적어도 이론적으론 완벽히 이길 수 있는 전략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만약 컴퓨터가 바둑 같은 고도의 완벽한 게임을 푼다면, 다른 완벽한 게임도 쉽게 풀 수 있게 된다. 반도체 설계와 컴퓨터 코딩 역시 자동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엔지니어 수백 명이 몇 년 걸려 설계해야 하는 반도체 회로를 구글 인공지능 기계가 단 1분 만에 완성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종말이다.

구글 알파고는 오는 3월 서울에서 상금 100만달러를 걸고 이세돌 9단과 역사적 대결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구글은 이번 게임에서 이길 필요도 없다. 지더라도 이세돌 9단의 전략과 판단을 미래 인공지능 기계의 학습 데이터로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머지않아 '응답하라 1988'의 프로 기사 택이마저도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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