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6일 수요일

왜 수학을 대학입시 과목에 둘까?

수학이 인생을 좌우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수학도 발달한다. 수학의 천재들은 더 복잡하고 난해하며 삶과 무관한 듯 보이는 수학 문제를 창안했다. 안타깝게도 현실과의 괴리가 큰 탓에 이런 수학 지식은 권력을 안겨주지 못했다. 응용할 수 없는 수학은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과학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바람에 한때 쓸모없어 보이던 수학 지식도 응용될 자리를 찾곤 했다. 과학은 새로운 이론에 적합한 수학 지식이 눈에 띄지 않으면 새로운 수학 지식을 창안하기도 했다. 이러면서 수학은 현대 교육 과정에도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수학을 과연 누구에게 어느 수준까지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비판론자들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어려운 미적분 문제를 모든 고등학생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사회에 진출하면 까맣게 잊을 텐데?”라고 반문한다. 이 점은 수학을 왜 배우느냐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실 ‘수학을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은 ‘어느 수준까지 배우는 것이 적당한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구구단도 수학의 일종인데 우리는 구구단을 익혀두지 않으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불편하다는 점을 잘 안다. 즉 일정한 수준까지 수학을 배워 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에 있어 ‘수학을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은 한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변별력 비중은 매우 높다. 수능 점수로 진로가 어느 정도 결정되는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 수학은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가 된다. 



수능에서 수학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수학이 사회의 발전에 꼭 필요한 학문’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미적분을 모르면 미시경제나 거시경제를 논할 수 없다. 수학적 개념 없이는 재무제표를 볼 수 없고 재무제표를 못 보면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공계에선 더하다. 수리적 이해 없이 세계 일류 스마트폰, TV, 반도체, 자동차, 유조선, 초고층빌딩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국가의 처지에선 대학입시에서 수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이점을 주어 이런 사람들을 상위권 대학 학과 진학으로 유도하는 것이 기술적 진보와 경제적 성장에 유리하다.  

‘문제 풀이’에서 ‘즐기기’로  

미국의 한 수학교과서에 수록된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사진.
다만 학교의 수학교육이 진정한 의미의 수학교육인지는 되돌아봐야 할 문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수학이라기보다는 계산에 가깝다. 즉 고교생이 수학 시간에 하는 활동의 대부분은 문제를 푸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정한 공식에 이런저런 숫자를 대입해 답을 알아내는 것에 불과하다. 기술자이자 사업가인 콘래드 울프램은 이런 교육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는 계산 기술을 가르치는 짓은 그만두고 수학을 가르치자고 주장한다. 계산은 수학을 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복잡한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도구를 갖고 있다. 바로 컴퓨터다. 시험에 나오는 어떤 어려운 문제든 컴퓨터에 입력하면 1초도 안 되어 답이 나온다. 이 컴퓨터는 바로 인류가 만든 것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확장시키는 도구를 만들어놓고도 이를 쓰지 않고 문제를 푸느라 여전히 골머리를 앓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울프램은 학교에서 힘든 계산 작업을 컴퓨터에 넘기면 많은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수학 시간이 훨씬 재미있어진다. 문제를 내고 푸느라 교사와 학생 모두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그 시간에 갖가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여러 상황을 설정해 수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게 된다. 수학은 삶과 무관한 골칫 덩어리에서 삶과 바로 맞닿아 있는 흥미롭고 생생한 오락 거리가 될 수 있다.

학교는 수학이 실제의 경제활동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미적분 같은 복잡한 수학이 쓰이는 분야는 대단히 많다. 주식, 보험, 투자, 회계, 경제계획, 연금, 기후, 물 관리, 선거 등 다양하다. 수학이 실생활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널려 있다. 문제 풀이에만 열중하는 현재의 수학교육으로는 이런 것을 다룰 여유가 없다.  

약간만 방향을 전환하면 통섭이라는 현대의 흐름에 맞는 활동이 수학 시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수학이 덜 기계적이면서 더 실용적이고 더 개념적인 활동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면 수학을 왜 배우느냐는 질문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컴퓨터는 17세기에 ‘계산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어려운 계산을 맡아주는 직업이 컴퓨터였다. 그러다가 기계인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컴퓨터라는 직업이 사라졌다. 새로 출현하는 문명의 이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컴퓨터도 교육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 아이를 멍청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상 앞에 진득이 앉아 책을 보면 사고력이 좋아지고 창의력이 발달하는 반면 컴퓨터만 하면 지적 능력이 퇴화된다는 주장이다. 컴퓨터는 또한 학생을 검색, 짜깁기, 표절의 대가로 만든다고 한다. 그러니 시험 시간에 컴퓨터를 쓰도록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것은 학생의 지적 수준이 아니라 검색 능력을 측정하는 꼴이 된다.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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