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서울에 있는 외국인 학교를 취재한 특집 신문기사가 문득 떠오른다. 연희동에 있는 이 학교는 미국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과정까지의 일반과정을 미국교육 그대로 옮겨와 실행하고 있는 곳이다. 입학 조건도 매우 까다로운 학교로 알려져 있고, 졸업 후에 미국 명문대학으로의 진학률도 아주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대학들도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 곳으로 인정해 주는 학교로 알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간의 관심도 클 것이고, 특집기사의 취재 대상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취재 기자가 외국인학교 학생 가정을 방문해서 학생과 학부모의 대화를 지켜보고 서술한 기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엄마가 학생에게 “너희 반(class)에서는 누가 공부를 제일 잘 하니?” 하고 물었다고 한다. 이런 질문이야, 독자들도 경험하고 이해하시겠지만, 대한민국의 학부모라면 아이들에게 한번씩 물어보곤 하는 질문이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일반적인 예상답안은 그 반에서 1등을 하고 있는 학생의 이름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기사에 드러나 있는 대답이 미국학교에서 들을 만큼 우리에겐 낯설다. “엄마, 그렇게 어리석은(silly) 질문이 어딨어? 수학은 00가 제일 잘하고, 과학은 00가, 역사는 00가, 그리고 축구(football)는 00가 잘 해.”
‘엄친아’라는 신조어가 유행한지는 오래 되었다. ‘엄마 친구 아들’을 줄인 말이다. ‘엄친아’는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공부는 물론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음이 기본이다. 여기에 스포츠에도 만능이고, 성격도 온화하고 리더십이 있으며, 예절도 밝다. 과연 엄마 친구 아들이 존재할까? 정확하게는 ‘엄마 친구 아들’보다는 ‘엄마 친구 아들들’이라고 이야기함이 옳지 않을까 한다. 엄마가 본 여러 친구 아들들의 좋은 면만을 모두 모아 합성한 가상의 인물이 바로 ‘엄친아’가 아닐까 한다.
‘엄친아’의 허상은 한국 교육이 만들어내는 허상이라고 본다. 다양함을 존중하고, 다양한 부분 중의 한 부분에서의 뛰어난 우수성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격려하기 보다는, 모자라는 점에 대해 먼저보고, 이를 지적하고 끌어 올려서는 전체를 앞서가야 한다고 강박감을 느끼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영재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21세기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는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분야의 구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연구분야와 업무 분야를 창조해가고 있다. 이렇게 광활하고 넓은 모든 영역에서 어디서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재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영재상일까?
물론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모든 과목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찾기란 우리 사회에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해와 인식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학교 수업의 모든 교과목에서 이런 뛰어난 능력들을 발휘하여 한 과목에서의 1등 학생이 다른 과목에서도 1등을 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더욱 이런 종합적인 영재로서의 능력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 부모들이 학교를 다닐 때와 비교해 발전된 학문적 성과와 이런 성과에 의해 촉발된 교과과정의 심화된 변화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와 같은 종합적인 영재가 더 이상 가능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다. 변화의 지점을 명확하게 바라보면서 이런 변화에 대응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영재들이 교육 받을 수 있도록 인도될 필요가 있다.
여러 과목을 두루 평균 이상으로 우수하게 성취도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소질이 있는 몇 가지에 흥미를 가지고 이 분야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재성을 맘껏 발휘함이 오히려 영재로서의 더 큰 성공가능성을 보여주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영재적인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홀한 교과목이나 분야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본인이 흥미 있어 하는 부분에 더욱 열심으로 노력을 맹렬하게 경주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칭찬과 격려가 아닐까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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