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4일 일요일

“상위권 자녀의 완벽주의 걱정된다면 ‘공감하는 칭찬’ 해주세요”

우리나라 입시에서는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상위권 학생일수록 실수에 민감하게 반응하죠. 상위권 학생들에게 완벽주의가 흔히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장형주(34)씨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 성적이 좋은 친구들에게서 이와 비슷한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이후 정신과 전문의가 된 장씨는 학생 상담을 하면서 상위권 학생들이 ‘공통된 문제’를 겪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지난 2014년부터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학생상담센터 전담 상담 의사로서 1000여건의 상담을 해왔다. 이들이 완벽주의로 인해 느끼는 우울감, 무기력감은 학업, 대인 관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나타났다. 최근에는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부모와 학생이 흔히 겪는 완벽주의 증상과 해결책을 담은 ‘어린 완벽주의자들’을 펴냈다.

◇상위권 학생이 겪는 완벽주의…“대물림 탓도”

많은 상위권 학생과 학부모들은 완벽주의가 학업 성적 향상에 도움될 것이라고 여긴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순위가 바뀌고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제도 때문이다. 그러나 장씨는 “대학 입시에 실패하는 상위권 학생들의 십중팔구는 완벽주의 탓”이라며 “수능 만점을 목표로 하던 최상위권 학생에게 예상외의 어려운 문제가 주어지면 실수를 남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그는 “설사 대입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완벽주의적 강박으로 성적을 유지한 학생들은 대학이나 사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완벽주의는 사고(思考)를 경직시킬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입시제도 외에도 상위권 학생들의 완벽주의를 부추기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장씨는 ‘대물림’에 주목했다. 사회 전반에서 완벽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젖어 있는 부모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자녀에게 완벽주의를 대물림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의 부모는 어김없이 완벽주의자예요. 자녀는 부모의 말에 담긴 태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거든요. 가령, 자녀가 학교에서 99점을 받았다면 완벽주의 부모는 ‘99점이라니 대단한데 딱 하나 틀린 게 있네!’라고 말해요. 이때, 자녀는 부모의 말에 내재한 태도에 예민하게 반응하죠. 이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자란 학생은 모든 일에서 부족한 부분이나 단점 등에 집중하는 태도를 지니게 돼요.”


◇완벽주의 예방ㆍ치료하려면…“언어습관부터 교정해야”

자녀가 이러한 완벽주의를 겪고 있다면 혹은 겪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씨는 “만 24세 이하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는 부모, 학교, 사회의 도움 없이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며 “자녀의 완벽주의를 가장 확실하게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은 부모의 완벽주의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한 치료법 중 언어습관 교정을 우선으로 권했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담긴 말투와 표현을 바로잡기만 해도 언어습관과 태도 개선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완벽주의자들은 평소 ‘가정법’, 형용사와 부사 등 ‘꾸밈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완벽주의자들이 가정법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자신의 선택이나 미래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며 “‘완벽히’ ‘제대로’ ‘충분히’ ‘열심히’ ‘잘’과 같은 부사를 습관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성향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그는 완벽주의적 언어습관을 교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했다.

“먼저 자신의 평소 언어습관을 살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인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대화를 녹음해요. 이후 녹음파일 속 자신이 한 말을 대본처럼 받아 적습니다. 이때, 가정법이나 꾸밈말 등 완벽주의적 성향이 묻어난 부분을 모두 표시해요. 그다음 표시한 부분을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말해보는 거죠. 이러한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 말투가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완벽주의자 부모는 자녀에게 하루 일과를 묻거나 칭찬을 할 때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장씨는 “부모들은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니’ 등을 묻지만, 이보단 ‘오늘 기분이 어때’와 같이 감정 상태를 물어보고, 자녀가 이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칭찬 역시 능력이나 노력보다는 감정에 ‘공감’해주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권했다. 궁극적으로 그가 제시하는 완벽주의의 해결책은 부모와 자녀가 서로 감정을 최대한 많이 표현하고 교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00점을 받아온 자녀에게 ‘정말 똑똑하다’ 혹은 ‘열심히 노력했구나!’라고 칭찬하기 전에 감정을 먼저 살펴야 해요. ‘100점 받아서 기분이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자녀가 ‘행복하다’고 했다면 ‘네가 행복했다니 엄마(아빠)도 정말 기뻐’라는 식으로 칭찬해주는 거죠. 다시 말해, 부모가 기쁜 이유는 자녀가 행복해 하기 때문이란 걸 보여주는 겁니다. 이런 칭찬을 받으며 자란 학생은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죠.”
조선에듀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