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정시 논술 출제 경향(서울대·고려대·연세대)

문항수 늘리고 곳곳 통계자료… 까다로운 문제 출제
서울대, 고려대,연세대는 지난 10, 11일에 정시논술 시험을 치렀습니다. 일부에선 이번 정시논술 문제가 본고사 문제에 가깝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문항수를 다양화하고, 해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은 통계자료를 많이 활용해 평가의 정밀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문제를 출제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2009학년도 입시는 커다란 변화를 거칠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선 벌써부터 2009학년도 정시논술 문제가 어떻게 출제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3월 이후에는 각 대학이 2009학년도 논술 출제경향에 대해 발표할 것이므로 그때까지 차분히 기다려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출제된 2008학년도 정시논술 문제의 흐름도 알아야 합니다. 예비 수험생이라면 논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세 학교의 논술 경향을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상위권 학생의 경우에는 정시논술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고 향후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세 학교의 인문계 논술을 보면, 고교 교과과정과 연계하거나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는 예고한 대로 교과서를 지문으로 많이 활용했고, 주제 역시 고교 과정의 범위 안에서 출제했습니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교과서를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지문의 난이도나 주제는 교과 과정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자연계 논술의 경우, 세 학교 모두 사실상 수리논술과 과학논술을 구분해서 출제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과학 과목 간에는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수시 논술부터 쭉 이어진 경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연세대가 수리논술과 과학논술을 통합하는 형태의 문제를 일부 출제했으나, 수리적 사고력만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항이어서 사실상 수리논술 문제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정답을 찾는 문제로 간주되어 본고사형 문제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인문계 논술 출제경향
학생 눈높이 맞추려는 경향 교과과정 범위내 주제 출제

인문계 논술에서 서울대는 △한국사회의 가족문화 △다수결의 원리 △국민소득과 행복지수의 관계를, 고려대는 △한국사회의 사회적 신뢰를, 연세대는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각각 문제를 출제했습니다. 주제 자체는 익숙하고, 생소하더라도 어렵지는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측면은 제시문을 봐도 알 수 있는데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문제를 살펴봤을 때 고등학생이 독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제시문은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독해 자체가 난해한 제시문이 종종 출제되던 예년과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시문의 길이도 많이 짧아졌습니다. 고려대 (1)번 문제의 제시문을 제외하면, 길이도 무난하거나, 짧은 수준이었으니까요. 동서양 고전을 제시문으로 출제하는 경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서울대

논술에 있어 서울대와 다른 대학의 가장 큰 차이는 문제와 답안의 분량에 있습니다. 서울대 정시 논술은 5시간 동안 최대 4600자의 답안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문항은 전부 3개였지만, 문항별로 논제를 2, 3개로 구분해 총 논제 수가 8개나 됐습니다.

이런 외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제시문의 주제나 문제의 유형에서도 서울대는 다른 대학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문항별 주제를 보면, 문항 1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주의에 대한 것이었는데, 여기서 제시문으로 조선시대 족보가 등장한 것이 매우 이색적입니다. 문항 2는 다수결 원리에 대한 것인데, 각 제시문에서 문제 상황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주어졌기 때문에 다수결 원리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만 갖고서는 접근이 불가능했습니다. 문항 3은 물질적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것인데, 문제는 여기에 수리적 원리가 접목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사회적 현상을 평균, 산포도, 로그함수 등의 수학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물어 일반적인 인문사회 논술만 풀었던 학생들은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서울대 논술의 통합 정도는 크게 강화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논술의 또 다른 특징은 교과서에서 제시문을 출제하는 비율이 높고, 제시문의 난이도가 낮고, 길이도 짧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제시문 수는 다른 대학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번 시험에서도 세부 제시문과 논제의 물음 안에 포함된 도표까지 더하면 무려 21개의 텍스트가 출제됐으니까요. 이는 출제자가 개별 제시문을 이해하는 독해력보다 여러 개의 제시문을 연계하는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일 것입니다. 올해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이 점에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 유형을 보면 문제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제시한 후, 이를 바탕으로 문제 이해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모두 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논술 문제가 세계화, 정보화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라는 식으로 출제된 것과는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대학은 대체로 문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 정도를 평가하는 데 그치고 있지요. 다른 대학이 해결 방안을 묻더라도,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서술해도 무난한 평가를 해주는 반면, 서울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측정하기 위해 문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고려대

고려대는 2007학년도 수시 논술 수리적 요소를 배제하고 통계 자료와 도표 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문제의 형태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500자가량의 제시문 (1)을 400자 내외로 요약하는 문제 △제시문 (2)를 활용해서 (3)의 시를 해석하는 문제 △제시문 전체를 참고해서 (4)의 도표를 해석하고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문제로 정형화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연세대와 고려대는 크게 대비됩니다.

연세대는 논술 문제가 발표될 때마다 변화가 많아서 어떤 유형으로 출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면, 고려대는 그해 모의문제의 유형이 최소한 그해 정시까지는 유지되므로 문제 유형은 물론이고, 각 문제의 구체적인 질문 방향까지 예상이 가능하니까 말입니다.

고려대 정시 논술의 주제는 ‘신뢰의 유형과 역할’에 관한 것으로서, 흔한 주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인문계 논술을 어느 정도 훈련한 학생이라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시문은 전부 4개였고, 긴 지문 하나와 짧은 지문 하나, 시와 통계 자료가 제시됐습니다. 시와 통계 자료를 제시문으로 꾸준히 출제하는 것은 계열 내 통합의 틀 안에서 사회영역과 인문영역 간의 통합을 유지하겠다는 출제 교수들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연세대

이번 정시에서 연세대는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인과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 상황을 분석하는 문제를 출제했습니다. ‘민족 정체성에 대한 시각’은 그동안 여러 대학의 논술을 통해 다루어진 주제입니다. 즉 주제 자체는 학생들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지요. 이처럼 2008학년도 이전의 연세대 논술이 고도의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거나 창의력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면, 2008학년도 논술은 글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쓰는가가 중요해진 것이 특징입니다.

수시 논술에서는 대푯값의 개념으로 중용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이해하라는 문제가 출제됐습니다. 수리 통합적인 문제가 다시 등장한 것이지요. 반면, 정시 논술에서는 수리적 개념을 요구하는 문제는 출제되지 않았습니다. 통계 자료가 나오기는 했지만, 매우 기초적인 것이라 인문 계열 내 통합 문제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자연계 논술 출제경향
수리-과학 논술 구분해 출제 과학 과목 간에는 통합 원칙
이번 정시 논술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세 학교 모두 영역 간 통합의 룰을 충실히 따른 문제를 출제했습니다. 각 영역의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과학적 사고와 추론을 통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라는 문제를 출제한 것이지요. 때에 따라 제시문의 배경 지식으로 예상 밖의 영역이 혼합되는 경우도 있었으나(‘물리와 화학’처럼), 그러한 경우에도 주가 되는 영역을 위해 부수적인 영역의 배경지식은 추가 조건 또는 설명으로만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물리의 파동 굴절과 이상기체라는 매질의 변화를 다룬 고려대 2학기 수시논술의 논제 4를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문제 가운데 과학 교과와 연결시킬 수 있는 태안 앞바다의 기름 유출 사고가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는 같은 시사 이슈를 두고도 출제자 및 출제 학교에 따라 문제를 다르게 출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동일한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연세대는 수리논술로, 고려대는 과학논술 중 생물문제로 출제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출제 경향에 맞춰 자연계 학생들은 수리논술과 과학논술을 각각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세 대학의 수리논술 문제를 살펴보면 학교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수시와 정시에서 출제 경향이 다릅니다. 수시의 경우, 고려대와 연세대가 논증형의 문제를 출제함으로써 사실상 본고사에 가까운 출제 경향을 보였습니다. 정시에는 서울대가 논증형 문제를 출제해 2009학년도에는 사실상 정시논술 문제가 본고사 형으로 출제될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연세대는 정시논술에서 다소 시사적인 문제를 주제로 그동안 제시한 예시 문제와 유사한 통합형 서술 문제를 출제했습니다. 반면, 고려대는 구분구적법의 아이디어로 정적분을 이끌어 내는 문제라든지 정수론에 가까운 논증형 문제를 출제해 수시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본고사의 형태를 띤 문제가 나왔습니다.

내용은 교과서적인 내용이 위주이지만, 풀이 과정에서 단순 지식을 암기해서는 풀 수 없도록 수리과학적 사고력을 묻는 문항을 출제했습니다. 문항에 따라 필요한 경우 관련 공식이나 참고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지식의 유무가 아니라 개념과 원리를 적용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논술은 수리논술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세 학교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과학 교과 중 한 영역에만 집중한 문제는 잘 출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각 대학의 자연계 논술 문제에서 물리, 화학, 생물, 지학 등 한 영역에 한정된 범위의 문제가 종종 보이기도 했지만, 수시와 정시 전형을 거치면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는 물론 서울 시내 주요 중상위권 대학에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대신 과학교과 안에서 영역 간 혼합으로 출제되는 문제가 많아졌습니다. 즉 물리와 지학, 생물과 화학 등같이 영역 간 문제 혼합의 유형이 거의 정형화되어 다소간은 이런 출제 범위와 방식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수리논술을 준비하려면 고등학교 전 과정의 교과서를 논술 준비의 가장 기본적인 교재로 삼고, 교과서의 내용을 단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결과를 논리적으로 유도하고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의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과학논술을 준비하는 데 왕도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고교 교과과정의 공통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인 사항들을 꼼꼼히 알아두어 기초 자료로서 활용 가능한 지식을 많이 쌓아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왜 그러한 결론을 갖게 되었는지, 근거 이론과 그 유추 과정을 습득해두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수능 선택 과목이 아니더라도 물리, 화학, 생물, 지학의 Ⅰ 수준 정도는 공부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대학에서 발표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확한 출제 기준과 범위, 영역 등은 알 수 없으나 각 학교에서 완전 자율로 대학별 고사를 치르게 되는 2009학년도 입시에서 과학논술의 출제 방향은 매우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과학논술의 시험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대학의 일방적인 출제에 따라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면 과학 네 과목의 Ⅰ수준 교과는 최상위권 학교, 학과를 지망하는 자연계 수험생에게 기본적인 수험 교과가 될 것이고, 혹시나 올해와 다르게 수험생들에게 과학논술 시험문제 풀이의 영역 선택권 등이 보장된다면 선택 영역에 한해 최소한 Ⅱ과목 수준, 또는 그 이상인 대학 전공 기초 수준의 문제도 출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상위권 대학이나 학과에 진학하기를 꿈꾸는 자연계 수험생들에게 2009년 한 해는 과학논술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입니다. 급하게 공부될 수 없는 과학논술은 사소한 과학이론 하나라도 그 이유와 파생과정을 생각해보는 공부 습관을 갖는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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