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강철보다 강한 섬유·‘인공 거미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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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가 그치고 난 숲. 곳곳에 맑은 빗방울이 맺힌 거미줄을 볼 수 있다. 손대면 금방이라도 뜯겨나갈 것 같이 가늘지만 알고 보면 강철보다 강한 자연계 최고의 섬유다. 최근 과학자들이 이 거미줄을 만드는 유전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 강철보다 강한 인공 거미줄 생산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거미가 내는 거미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먹이를 둘둘 말 때 사용하는 것도 있고 집을 만드는 거미줄도 있다. 그중 집의 골격이나 자신의 몸을 낙하시킬 때 사용하는 ‘드래그라인(dragline)’ 거미줄이 가장 강하다. 같은 굵기라면 강철보다 5배나 강하며, 방탄복에 사용되는 인공섬유인 케블라(kevlar)를 능가한다. 만약 거미줄을 대량 합성할 수만 있다면 인공 힘줄이나 수술 부위를 봉합하는 실, 다리를 세울 때 들어가는 강철 줄 대신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방탄복이나 낙하산 등의 군사용품에도 매우 유용하게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강철보다 강한 섬유

거미줄은 거미가 항문에서 분비하는 실크(silk)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거미줄을 알려면 그 설계도인 단백질 유전자를 알아야 하는 법.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의 세릴 하야시(Hayashi) 교수 연구팀은 독거미의 일종인 ‘검은과부거미(black widow spider)’가 만드는 드래그라인 거미줄에 주목했다. 이 거미는 다른 거미보다 더 강한 거미줄을 내는데다, 유전자의 크기가 작아 해독이 쉽기 때문. 마침내 드래그라인 거미줄을 만드는 실크 유전자 두 개가 모두 해독됐다.

거미줄 유전자 해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9년 미 와이오밍대 연구팀이 처음으로 거미줄을 만드는 실크 단백질 유전자를 해독했다. 2000년 캐나다 생명공학회사인 넥시아 바이오테크놀로지사(社)는 와이오밍대로부터 관련 기술을 이전받았다. 넥시아사는 유전자를 염소에 주입, 염소젖을 통해 거미줄을 만들어냈다. 회사는 인공적으로 합성해낸 거미줄을 ‘바이오스틸(biosteel)’이라 이름 붙였다. 강철 못지않은 생물재료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넥시아사가 만들어낸 인공 거미줄은 자연산보다 품질이 떨어졌다. 거미줄을 만드는 유전자 일부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반쯤 찢겨 나간 설계도로 공장을 돌린 것이다. 반면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거미줄을 만드는 핵심 유전자인 MaSp1, MasP2를 찾아내 완전히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설계도 전체를 확보한 셈이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12일 국제학술지인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 )’지에 발표됐다.

◆거미줄 만드는 식물

한편으로 생각하면 거미를 대량 사육할 수 있다면 굳이 유전자를 해독하고 다른 동물에 이 유전자를 집어넣는 어려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검은과부거미는 혼자 살아가는 거미여서 다른 거미와 함께 있으면 치명적인 독으로 동료들을 죽인다. 또 거미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거미줄 생산으로 얻는 것보다 훨씬 많아 경제성이 없다. 세릴 교수는 “고기를 얻기 위해 늑대들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넥시아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미줄 유전자를 염소의 젖샘세포에 삽입했다. 세포는 다시 난자와 융합된 다음, 대리모 자궁에 착상된다. 이렇게 태어난 염소는 거미줄 단백질이 들어가 있는 젖을 분비하게 된다.

하야시 교수팀은 염소 대신 농작물이 낫다고 보고 있다. 동물보다 키우기가 쉽고 금방 개체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거미줄 유전자가 들어 있는 농작물을 수확해 공장에서 처리하면 대량의 거미줄 단백질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식물성 거미줄로 만든 등산복을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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