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0일 월요일

촛불을 켜면 다이아몬드가 생긴다?

탁자마다 촛불이 켜진 어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젊은 연인들이 그윽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본다. 갑자기 남자가 조용히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는 반지를 내민다. 여자는 갑작스런 청혼에 당황했지만 이내 눈가에 기쁨의 눈물이 맺힌다. 그런데 반지를 집어든 여자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잠깐 스친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니어서라나?

‘보석 중의 보석’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는 모스경도계 기준으로 최고 등급의 광물이다. 자연물질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뜻이다. 빛 굴절률도 높아 제대로 가공하면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린다. 덕분에 ‘변치 않는 사랑’의 의미가 더해져 청혼반지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값비싼 반지를 선물 받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탁자 위 촛불 속에서는 초당 150만 개의 다이아몬드 입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노랑, 빨강, 파랑 등 다양한 색깔을 내며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은 부위에 따라 온도 차이가 크다. 가장 바깥쪽은 섭씨 1,400도에 달하지만 심지 근처의 어두운 부분은 500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곳이 다이아몬드 입자를 쏟아내는 보석공장이다. 흑연, 풀러렌 등 다양한 종류의 탄소 입자도 만들어진다.

이 사실은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화학과의 저우우종(周武宗) 교수가 밝혔다. 저우 교수는 동료교수와의 대화에서 이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과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노력했지만 촛불의 원리에 대해 별로 알아낸 것이 없다”는 지적에 저우 교수는 “무엇이든 과학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반박하며 촛불 연구에 매달렸다.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 해오며 어둠을 밝혀온 촛불을 과학자의 시각으로 처음 바라본 사람은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1550년 어느 날, 베이컨은 화살촉을 촛불에 달구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심지 부근 불꽃 중심부의 온도가 생각보다 낮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30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1860년,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촛불의 비밀에 다시 도전했다. 그는 점토로 만든 가느다란 관을 촛불에 집어넣어 내부의 성분을 추출했고, 녹은 파라핀이 심지 끝에서 연소되며 물과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패러데이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불꽃의 화학적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6년의 강연은 ‘양초의 화학사’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졌다.

다시 90년이 지나 1954년이 돼서야 열전도율이 높은 석영을 이용해 촛불의 정확한 온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또한 불꽃 중심의 어두운 부분에서 열분해 된 탄화수소가 연소에 의해 확산되면서 밝은 불꽃이 생겨난다는 원리도 밝혀졌다. 최근에는 우주공간의 무중력 상태에서 촛불이 어떻게 타오르는지 알아내는 실험도 있었다.

그러나 촛불 속에서 수십 억 분의 1mm 크기밖에 되지 않는 나노입자를 채취해 분석한 것은 2011년 8월 발표된 저우 교수의 실험이 처음이다. 뜨거운 불 속에서 나노 크기의 물질만을 골라내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우 교수는 알루미늄 양극산화물(AAO)을 재료로 10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 두께의 극히 얇은 포일을 만들고 80nm 크기의 작은 구멍을 무수히 뚫었다. 그리고 40nm의 더 작은 구멍이 뚫린 포일을 위아래로 겹쳐서 촛불 하단부의 심지 근처에 1초 동안 넣었다가 얼른 빼냈다.

알루미늄 포일은 구멍이 많고 두께가 얇아 촛불이 타오르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고, 그을음 색깔을 띤 여러 크기의 나노입자들은 2단계의 구멍을 통과하면서 포일에 달라붙었다. 초음파 처리법으로 그을음을 분리해 고해상도 투과전자현미경(TEM)으로 관찰하자 4종류의 탄소물질이 발견됐다.

첫째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래파이트(graphite)라고 불리는 흑연이다. 0.34nm의 흑연 조각들이 20nm 크기의 둥그런 공 모양으로 뭉친 뒤 쇠사슬처럼 길게 연결돼 있었다. 다음으로는 1nm 이하의 풀러렌(fullerene)이 발견됐다. 수많은 탄소 원자가 격자형으로 결합된 풀러렌은 온도와 열에 잘 견디며 표면이 매끄러워 신물질로 각광받는 소재다. 불꽃의 상층부나 외곽으로 갈수록 뚜렷한 형체 없이 덩어리처럼 뭉쳐진 무정형탄소(amorphous carbon)가 많아졌다.

채집된 나노입자 가운데 예상치 못한 물질도 발견됐는데, 다이아몬드 입자가 바로 그것이다.
크기는 2~5nm에 불과했지만 분명한 다이아몬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불꽃 하단부에서 상층부로 갈수록 다이아몬드 나노입자의 숫자가 많아지고 크기도 커졌다.

이를 바탕으로 촛불이 타오르는 원리를 화학적으로 정리해보자. 양초의 재료인 파라핀(CnH2n+2) 속 탄화수소가 심지에서 열분해되며 C2, C3, C2H2 등의 라디칼(radical)로 나뉜다. 이들은 불꽃 하단부에서 다시 수소와 결합해 흑연과 다이아몬드의 나노입자를 형성한다. 불꽃 중심부로 이동하면 입자의 크기가 커지면서 풀러렌 입자까지 생겨난다. 불꽃 상층부에서는 나노입자가 다시 분해돼 무정형탄소와 그을음이 돼 날아간다. 1분이면 1억 개 가까운 다이아몬드 입자가 생겼다가 공중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다이아몬드가 사라지는 것은 아깝지만 촛불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결과다. 저우 교수는 각종 산업에서 핵심재료로 쓰이는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더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제조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청혼 중이던 연인에게로 되돌아가보자. 남자는 평범한 금반지를 내밀었지만 여자는 이제 실망하지 않는다. 그와 결혼한다면 저녁식사 때마다 식탁에 촛불이 켜질 것이고, 매일 밤 수십 억 개의 다이아몬드 입자들이 집안을 환하게 밝힐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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