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1일 화요일

매머드 부활, 가능할까?

미국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생태학‧진화생물학과 베스 샤피로 교수는 지난 4월 ‘How to Clone a Mammoth(매머드를 어떻게 복제할까)’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제목 그대로 매머드를 비롯한 멸종한 동물들을 부활시키는 소위 탈멸종(de-extinction)의 과학을 다루고 있다.
불과(?) 3700년 전까지도 살았던 매머드는 서식지가 추운 지역이다 보니 영구동토층에 썩지 않은 사체가 발견되는 일이 있어 오래 전부터 부활의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특히 1996년 복제양 돌리가 태어나면서 체세포핵이식을 통한 매머드 복제가 현실성 있는 방법으로 부상했다. 즉 매머드의 세포에서 핵을 추출해 아시아코끼리의 핵을 제거한 난자에 넣어 재프로그래밍한 다음 코끼리 자궁에 착상시킨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매머드 사냥(물론 동토에 묻혀있어 상태가 좋은 사체) 열풍이 시베리아 동토를 뜨겁게 달궜고 실제로 약간 과장해서 정육점의 고기라고 할 정도로 보존이 잘 된 사체가 발견돼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샤피로 교수는 책에서 이런 방식의 매머드 부활을 꿈꾸는 대표적인 과학자로 일본 긴키대의 이리타니 아키라 교수를 등장시켰고 우리나라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의 황우석 박사도 잠깐 나온다.
이들은 러시아 현지인들과 손을 잡고 보존 상태가 뛰어난 매머드를 계속 찾고 있는데, 저자는 이 접근법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즉 아무리 상태가 좋더라도 핵 속의 게놈은 이미 산산조각이 난 상태이기 때문에 핵이식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것. 실제로 지난 2008년 학술지 ‘네이처’에 매머드 게놈의 70%를 해독한 논문이 실렸는데, 분석한 DNA 조각 대부분이 길이가 100염기가 채 안 됐다. 책을 보면 가장 상태가 좋은 시료조차도 한 조각이 수백 염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샤피로 교수는 책에서 보다 현실적인 매머드 탈멸종 방법으로 게놈편집을 통한 ‘생태적 부활’을 소개하고 있다. 즉 진짜 매머드를 복원시키는 ‘종 부활’이 아니라 아시아코끼리의 게놈에 매머드의 특징을 갖게 하는 유전적 변이를 집어넣어 과거 매머드의 생태적 지위를 갖는 생명체를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미국 하버드대 유전학과 조지 처치 교수가 이 진영의 대표주자다.
매머드 부활은 크게 두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나는 게놈이 최대한 온전히 보존된 핵을 코끼리 난자에 넣어 복제하는 ‘종 부활’로 일본의 이리타니 아키라 교수가 대표주자다. 반면 코끼리 게놈에 매머드의 핵심 특징을 갖게 하는 유전자를 편집하는 ‘생태적 부활’ 방법은 미국의 조지 처치 교수가 대표주자다. 베스 샤피로 교수는 탈멸종을 다룬 책에서 후자가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 강석기
매머드 부활은 크게 두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나는 게놈이 최대한 온전히 보존된 핵을 코끼리 난자에 넣어 복제하는 ‘종 부활’로 일본의 이리타니 아키라 교수가 대표주자다. 반면 코끼리 게놈에 매머드의 핵심 특징을 갖게 하는 유전자를 편집하는 ‘생태적 부활’ 방법은 미국의 조지 처치 교수가 대표주자다. 베스 샤피로 교수는 탈멸종을 다룬 책에서 후자가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 강석기
매머드 고유 염기 변이 140만 곳
학술지 ‘셀 리포트’ 7월 14일자(인터넷에 미리 공개됨)에는 생태적 부활 프로젝트의 첫 단계라고도 볼 수 있는 매머드 게놈과 아시아코끼리 게놈을 비교분석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매머드와 코끼리의 신체적 생리적 차이를 유발하는 유전적 차이를 밝힌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결과는 바꿔치기해야 할 유전자들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연구자들은 아시아코끼리 세 마리와 매머드 두 마리의 게놈을 해독한 뒤 가장 먼저 해독된 아프리카코끼리의 게놈을 기준으로 해서 배열한 뒤 차이를 분석했다. 참고로 외모가 튀는 매머드가 두 코끼리 종의 먼 친척 같지만 실제로는 공통조상에서 400만~900만 년 전 아프리카코끼리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250만~500만 년 전 아시아코끼리와 매머드가 갈라졌다. 사람이 고릴라와 침팬지의 먼 친척 같지만 실제로는 고릴라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뒤에 사람과 침팬지가 갈라진 것과 비슷하다.
코끼리과(科) 종의 계통도를 보면 먼저 아프리카코끼리(위)가 갈라졌고. 다음으로 아시아코끼리(가운데)와 매머드(아래 둘)가 갈라졌다. 이번 연구에서 아시아코끼리 세 마리와 매머드 두 마리의 게놈을 해독해 아프리카코끼리의 게놈을 기준으로 배열한 뒤 분석했다. ⓒ ‘셀 리포트’
코끼리과(科) 종의 계통도를 보면 먼저 아프리카코끼리(위)가 갈라졌고. 다음으로 아시아코끼리(가운데)와 매머드(아래 둘)가 갈라졌다. 이번 연구에서 아시아코끼리 세 마리와 매머드 두 마리의 게놈을 해독해 아프리카코끼리의 게놈을 기준으로 배열한 뒤 분석했다. ⓒ ‘셀 리포트’
매머드는 100만~200만 년 전 서식지를 시베리아와 북미 툰드라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했다. 즉 표면적을 줄여 열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귀와 꼬리가 작아지고 두껍고 긴 털이 무성하게 났다. 또 피지샘이 많아지면서 피지를 다량 분비해 방수와 단열 효과를 냈다. 또 지방층도 두꺼워졌고 목 뒤에는 지방을 태우는 갈색지방조직도 잘 발달해 겨울에는 영하 30~5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을 견뎌낸 것으로 보인다.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 살던 동물이 이런 조건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게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미국 시카고대와 펜실베이니아대 등 공동연구자들은 세 종에서 단일염기변이 자리 3300만 곳을 확인했다. 즉 DNA염기가 서로 다른 곳이 무려 3300만 곳이나 된다는 말이다. 이 가운데 매머드에 고유한 변이는 140만 곳이었다. 게놈 상의 DNA 염기 변이가 유전자의 아미노산 변이로 이어지는 경우를 확인한 결과, 1642개의 유전자에서 아미노산이 바뀌었고 26개 유전자에서는 변이로 중간에 정지 코돈이 들어가면서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아시아코끼리의 게놈을 매머드의 게놈으로 편집하면 정말 매머드가 태어날지도 모른다. 물론 140만 곳을 다 바꾼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이고 유전자의 아미노산을 바꾸는 변이만을 고려할 경우 일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1600여개의 유전자를 편집한다는 것 역시 꿈같은 일이다.
샤피로 교수는 책에서 일단은 유전자 몇 개만 편집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처치 교수의 실험실에서는 아시아코끼리의 줄기세포를 대상으로 이런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연구결과를 매머드의 ‘생태적 부활’ 관점에서 볼 때 추위에 적응하게 한 유전적 변이가 편집 작업의 1순위가 될 것이다.
논문에서는 매머드의 신체적, 생리적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 변이를 소개하고 있다. 피지샘의 확대에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세 유전자의 변이를 찾았고 지방조직과 관련된 유전자 54개를 찾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급격한 온도변화와 관련해 변이가 확인된 온도수용체 유전자 13개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특히 TRPV3 유전자의 변이가 주목을 받았다.
TRPV3는 33도 이상이 되는 온도에서 작동하는 열수용체다. 분석결과 두 코끼리에서는 647번째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인데 매머드의 경우 아스파르트산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수용체의 구조가 약간 바뀌면서 민감도가 20%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매머드는 더위의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셈이다. 어차피 추운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안 됐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생쥐의 TRPV3 유전자의 같은 위치에 변이가 일어나면 역시 열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TRPV3가 열을 감지해 활성화되면 털의 생장을 억제하고 모낭의 퇴화를 촉진한다는 것. 반면 TRPV3 유전자가 아예 고장난 생쥐의 경우 열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서늘한 곳을 좋아하고 털도 꼬불꼬불하게 자란다. 이처럼 한 유전자가 여러 특성에 영향을 주는 작용을 ‘다면효과’라고 부른다.
열수용체 TRPV3의 분자구조(일부)로 왼쪽은 647번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N647)인 코끼리의 TRPV3이고 , 오른쪽은 아스파르트산(D647)인 매머드의 TRPV3다. 아미노산 하나가 바뀌었음에도 구조가 꽤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변이로 매머드는 열에 둔감해지고 털이 많이 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셀 리포트’
열수용체 TRPV3의 분자구조(일부)로 왼쪽은 647번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N647)인 코끼리의 TRPV3이고 , 오른쪽은 아스파르트산(D647)인 매머드의 TRPV3다. 아미노산 하나가 바뀌었음에도 구조가 꽤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변이로 매머드는 열에 둔감해지고 털이 많이 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셀 리포트’
이번 연구에 따르면 매머드의 생태적 부활을 위한 유전자 편집 1순위는 TRPV3로 보인다. 현재 처치 교수팀은 이 작업을 하고 있거나 이미 끝마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포 차원에서 편집된 유전자가 제대로 발현하는 걸 확인한다고 해서 성공을 자축하기에는 이르다. 편집된 게놈을 담고 있는 핵을 코끼리 난자에 넣어 재프로그래밍한 뒤 코끼리 자궁에 착상시켜 새끼가 태어나야 스토리가 완결된다.
샤피로 교수는 책에서 이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아시아코끼리는 2~3개월마다 배란을 하고 그나마 난자가 하나만 나온다. 복제가 성공할 때까지 난자가 수백 개 어쩌면 수천 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생쥐에 코끼리의 난소 조직을 이식해 코끼리의 난자를 만들어내게 하는 실험이 성공했다. 이 난자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그렇게 된다고 가정하고 핵이식과 재프로그래밍, 자궁 착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18~22개월의 임신기간을 거쳐 새끼가 태어난다. 유전자 몇 개라도 편집된 매머드(따라서 털복숭이 아시아코끼리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조차 10년 이내에는 나오기 어려울 거라는 말이다.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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