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1일 화요일

레고 블록으로 부활한 ‘튜링 머신’

현대적인 컴퓨터 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이 지난달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동성애자라는 죄명으로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인물이다.

최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산하의 리옹 고등사범학교(ENS) 대학원생 8명은 튜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난감 레고 블록을 이용해 완벽한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을 재현했다.

레고로 만든 튜링 머신에 쓰인 블록은 2만 개에서 3만 개 가량이다. 몇 달에 걸쳐 끝없이 발전시키느라 정확한 부품의 숫자를 아는 사람은 없다. 튜링 머신은 오로지 압축공기를 이용해 작동한다. 동력을 전달하는 공기 튜브의 길이만 50미터에 달한다.

레고 블록으로 ‘튜링 머신’ 완벽히 재현해

튜링 머신은 1936년 앨런 튜링이 ‘결정문제 이론을 응용한 숫자 계산 방법에 대해(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라는 논문을 통해 최초로 제안됐다. “기계장치로는 풀 수 없는 계산식이 있다”는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oedel)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함이었다.

정보가 기록된 테이프를 특수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에 집어넣으면 순서에 따라 반복 계산을 하면서 자동으로 답을 찾아낸다는 원리다. 현대적인 컴퓨터의 핵심 요소인 입력,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출력 개념을 모두 갖춘 최초의 장치였다.

제작진이 지난 2일 공개한 ‘레고 튜링 머신’도 이와 동일한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버튼을 누르면 압축공기가 튜브를 통해 기계 곳곳으로 전달되며 증기 기관차와 유사한 소리를 내면서 수십 개의 톱니바퀴와 축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레버를 올리거나 내리면서 축의 회전방향을 바꿔 원하는 계산 기능을 실행시킬 수도 있다.

2011년 9월, 종이에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면서 시작된 제작 작업은 2012년 3월이 돼서야 끝이 났다. 6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수백 번의 개선과 개량이 이뤄졌지만 레고 블록을 특별히 개조하거나 접착제를 사용하지도 않은 채 순수하게 조립과 튜브 연결만을 통해 기계를 완성했다.

압축공기로 작동하는 레고 튜링 머신 ‘루벤스’

기계의 명칭은 ‘루벤스(RUBENS)’로 정했다.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érieure)의 철자 순서를 바꿔서 재밌게 변형시킨 이름이다. 주동력은 압축공기에 의해 작동하는 2개의 축이 담당한다. 공기가 모자라면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 수동 펌프로 보충할 수도 있다.

▲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소속 대학원생 8명은 튜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압축공기로 작동하는 ‘레고 튜링 머신’을 완성했다. ⓒwww.turing2012.fr
루벤스 프로젝트는 다중정보학연구소(LIP)의 박사과정생 케빈 페로(Kévin Perrrot)가 이끌었다. 페로는 몇 달 동안 레고 블록을 연구하며 전에 없던 미래형 디자인을 완성했다.

그러나 전자식이 아닌 기계식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속도는 굉장히 느리다. 15분 동안 움직여서 겨우 알파벳 3개 가량의 정보를 처리하는 수준. 페로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식 휴대전화가 1초면 처리할 정보를 레고 튜링 머신으로 계산하면 3천168년 295일 9시간 46분 40초가 걸린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색, 노란색, 검은색, 빨간색 등 수만 개의 레고 블록이 빈틈없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면 튜링의 위대함과 제작진의 인내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기계의 실제 작동 모습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가 공개한 동영상(http://dai.ly/LwrCba)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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