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5일 월요일

라이트 형제의 가솔린 비행기 발명

라이트 형제의 가솔린 비행기 발명 하늘의 문을 열다 라이트 형제의 성공으로부터 시작된<br>항공기 발달의 역사

“성공 네 번 비행 목요일 오전 모두 21 마일 맞바람 평지 출발 엔진 동력만으로 평균속력 공기 중 31 마일 최장 57초 신문사에 알려요 크리스마스에 귀가 오빌 라이트” (원문: “Success four flights Thursday morning allagainst twenty one mile wind started from Level with engine power alone average speed through air thirtyone miles longest 57 seconds inform Press home Christmas Orevelle Wright”)
1903년 12월 17일, 인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성공을 알리는 이 짤막한 전보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에서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 1871~1948)가 오하이오주 고향의 아버지께 전달한 것이다. 59초를 57초로 쓰고 오빌의 이름에도 오타가 섞였지만, 그날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 1867~1912)와 오빌 라이트가 이룩한 업적은 그 전보용지마저 오늘날 중요한 역사의 자료로 남게 했다. 이날 라이트 형제가 이룩한 업적은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계를 타고 스스로의 동력으로 이륙을 했다는 것, 바람을 거슬러 속도를 유지하고 자세를 조종하며 날았다는 것, 이륙 지점과 같은 높이의 땅에 착륙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기록이었다.
라이트 형제,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하다.
20세기 벽두부터 라이트 형제가 달성한 이 중요한 성공은 지표면에서 2차원적으로 생활하던 인류의 활동 영역을 3차원적으로 확장시켰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동 속도의 증가와 이에 따른 거리의 단축은 인류의 문명을 바꿔 놓았으며, 인류가하늘을 넘어서 우주로 향하는 토대를 마련한 사건이었다.

하늘을 날기 위한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

땅 위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하늘을 나는 새를 부러워하고 날기를 갈망한 동물이 사람 외에 또 있었을까? 하늘을 나는 꿈은 과학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상상과 신화 속에서, 때로는 다빈치의 스케치와 같은 그림 속에서 점점 무르익어 왔다. 사람이 하늘을 비행한 공식적인 첫 기록은 1783년 11월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MontgolfierJoseph(1740~1810) and Jacques(1745~1799))가 만든 열기구에 두 사람이 타고 25분간 5마일(약 8km)을 비행한 것이다. 이렇게 공기보다 가벼운 기구를 이용한 비행은인류가 하늘을 날아서 여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고 새로운 발명에 대한 자극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약 100년간 더 나은 비행수단은 나오지 않았다.
초기 항공기 발달의 역사.
1799년에 영국의 조지 케일리(George Cayley, 1773~1857)라는 항공과학자는 하늘을 나는 기계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생각해 오던 비행 방식은 새를 모방하는 것이었다. 새는 날개를 이용해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힘(양력)을 발생시키면서 날개를 펄럭임으로써 바람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는 힘(추력)도 발생시킨다. 케일리는 기존 사고에서 벗어나 이 두 힘을 분리시켜서 고정된 날개의 양력이 비행기의 중력을 감당하고 별도의 추진 장치가 만드는 추력으로 공기의 저항(항력)을 감당하게 한다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당시의 이런 혁신적인 개념은 현대 항공공학의 이론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후세의 사람들은 케일리를 현대 항공공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됐다.
케일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영국인 중 윌리엄 헨슨(William Samuel Henson)은 1843년, 증기기관을 단 공중비행장치를 고안해 발표했는데, 케일리의 아이디어와 연구 결과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지만 비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1874년에는 펠릭스 드 템플(Felix Du Temple)이라는 프랑스 해군 장교가 개발한 비행기를, 1884년에는 알렉산더 모자이스키(Alexander F. Mozhaiski, 1825-1890)라는 러시아인이 헨슨처럼 증기기관을 단 비행기를 각각 개발해 잠깐 동안 이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말 그대로 ‘잠깐’ 떠올랐을 뿐이었다.

라이트 형제에 도움을 준 인물들

릴리엔탈이 글라이더를 이용해 비행을 시도하는 모습.
1891년, 독일인 오토 릴리엔탈(OttoLilienthal, 1848~1896)은 사람이 날개를 달고 조종을 하면서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기술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결과를 기록했다. 게다가 비행기의 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조종기술을 스스로 체험하며 개발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1889년에는 [항공의 기초로서의 새의 비행(Bird Flight as the Basis ofAviation)]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그 당시 구할 수 있는 가장 자세한 항공 역학적 데이터를 수록하고 있었다.
1894년경 출간된 이 책의 번역본은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관심을 갖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훌륭한 기술자는 1896년 8월 9일, 글라이더로 비행시험을 하다가 추락해 그 다음 날 사망하고 말았다. 만약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가장 먼저 동력비행에 성공을 했을 사람이었다. 라이트 형제의 업적에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또 한 사람으로 프랑스 태생의 미국인인 옥타브 샤누트(OctaveChanute, 1832~1910)가 있다. 그는 1875년부터 비행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1894년 [비행 기계에 대한 발전 현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기존 항공공학에 대한 모든 중요한 기술적인 성과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발전방향까지 제시했다. 라이트 형제는 이 책을 열심히 읽고 그와 연락해 절친한 사이가 됐다. 샤누트가 설계한 트러스 구조를 가진 복엽 글라이더(위아래로 두 개의 날개가 있는 글라이더)는 매우 성공적인 글라이더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 설계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에 그대로 적용됐다.

라이트 형제, 경쟁자를 물리치다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
동력비행을 누가 먼저 하느냐의 문제에 있어 라이트 형제의 경쟁자는 미국에 있었다. 새뮤얼 랭글리(Samuel P. Langley, 1834~1906)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 독학으로 미 해군대학의 수학 교수, 피츠버그 대학교의 물리학과 천문학 교수가 됐다. 1887년부터는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회장을 맡는 등 그 당시 출중한 과학자 중한 명이었다.

그는 1887년부터 동력비행에 관심을 갖고 많은 연구를 했는데1896년에는 증기동력 모형항공기의 비행 성공에 자신감을 얻고 사람이 타는 대형 비행기를 제작했다. 드디어 1903년 10월 7일과 12월 8일, 공개적인 시험을 했으나 두 번 다 실패하고 말았다. 이 참담한 결과에 랭글리는 여론과 의회의 호된 비판을 받았고, 의회의 재정 지원이 중단되고 말았다.랭글리가 두 번째 공개 시험에 실패한 날로부터 9일 후,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했다.

비행을 위한 라이트 형제의 노력

라이트 형제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톤에서 목사인 아버지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부터 항공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형제는 공동으로 기계완구와 자전거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서양 건너편에 살던 릴리엔탈이 글라이더 시험 중 추락사한 소식을 접하고 항공에 흥미를 가져 그들 형제의 인생을 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이들 두 형제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술과 담배도 가까이하지 않았으며, 비행에 대한 목표를 세운 후로는 오로지 이 목표에만 전념했다. 라이트 형제의 연구는 ‘고졸 학력의 자전거 제작 기능공’의 업적이 아니다.
그들은 매우 치밀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했다. 자신들이 구할 수 있는 문헌들을 조사해 탐독했고, 설계에 반영했다. 인간의 수많은 발명품 중에서 유독 항공기가 어려운 이유는 스스로 조종사가 돼 목숨을 걸고 시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현명한 형제는 처음에 연 모양의 모형을 만들고, 이어서 사람이 타지 않는 글라이더를 실험했다. 충분한 데이터가 쌓였을 때야 비로소 사람이 타는 글라이더를 가지고 비행시험을 조심스럽게 수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두 형제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시험비행 조종사로 성장해 나갔다.
또한, 글라이더의 비행시험 결과와 설계 예측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후, 날개를 설계하기 위한 풍동 시험 장치(공기가 흐르는 현상이나 공기의 흐름이 물체에 미치는 힘, 또는 흐름 속에 있는 물체의 운동 등을 조사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공기가 흐르도록 만든 장치)를 직접 개발했다. 그들은 이를 이용해 날개 단면 특성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냈다. 비행시험 할 장소를 고르는 일 역시 기상청에 문의해 바람이 세고 일정하게 불어오는 장소를 추천받았다. 그곳은 바로 자신들의 집에서 무려 1,000km가 넘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호크였다. 라이트 형제는 1903년 12월 17일 첫 번째 동력비행 시도에서 4번을 성공한 후 2년 동안, 오하이오의 한 목장에서 시험을 하며 기술을 발전시켰다. 특허를 얻고 미국과 프랑스에서 비행기에 대한 판매계약이 성사된 1908년까지, 모든 기술적인 내용과 비행 모습까지도 대중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이러한 라이트 형제의 기술 보호 의지에도 불구하고 1908년 비행기 기술의 베일이 벗겨졌고, 그 이후 비행기 기술은 국제적인 경쟁체제로 나아가게 됐다.
라이트 형제의 복엽 글라이더.(왼쪽) 1902년 키티호크에서 형 윌버 라이트가 조정한 글라이더.(오른쪽)

비행기 기술, 국제적 경쟁체제 돌입

이후의 대표적인 경쟁자들 중에는 미국의 글렌 커티스(Glenn H. Curtiss, 1878~1930)가 있었다. 커티스는 중학교 중퇴 학력을 가진 기발한 기술자였는데, 라이트 형제처럼 처음에는 자전거 가게를 시작했다. 본인이 직접 자전거 경주 선수로 시작해 모터사이클 선수로 명성을 날리게 됐고, 나중에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엔진을 단 모터사이클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사람의 모터사이클용 엔진은 당시 성능(중량당 출력)이 가장 좋은 엔진이었다.
라이트 형제의 경쟁자였던 글렌 커티스.
1907년, 이 성능 좋고 가벼운 엔진을 가진 기술자는 전화기를 발명한 (Alexander Graham Bell)이 결성한 항공 실험 협회에 참여해 비행기 개발의 새로운 강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비행기가 라이트 형제의 특허를 도용했다는 시비로 번지게 됐고 1909년 9월, 라이트 형제는 커티스에 대해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약 5년에 걸친 법정 다툼으로 인해 형제의 창의적인 정신은 분산돼 버렸다.

그 와중인 1912년, 진정한 항공 기술자였던 형 윌버는 어이없게도 장티푸스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14년 1월, 오빌 라이트는 커티스에게 승소해 기술료를 받게 됐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이러한 특허와 기술보호에 대한 라이트 형제의 집착으로 인해 미국의 항공 기술은 수년간 침체됐고, 그 기간 동안 유럽의 항공 기술이 미국을 앞지르게 됐다는 비난도 듣게 됐다.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비행기는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 침략자를 물리치고 평화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면서 비약적인 기술발전을 이루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비행기의 활용분야가 평화적이고 상업적인 용도로 점점 확대돼 소형 비행기는 자가용 비행기로, 대형 장거리 폭격기 기술은 대륙 간 여객과 물자 수송을 위한 여객 수송기 기술로 발전했다.

날로 발전하는 항공기술의 미래

1903년 12월, 전 세계에는 채 1분도 날지 못하고 승객은 한 명도 태우지 못하는 비행기가 단 1대 있었고, 비행기를 타 본 사람은 단 두 사람 있었다. 라이트 형제가 이때 뿌린 작은 씨앗은 점차 열매를 맺고 번성해 약 100여 년이 흐른 현재, 여객기는 1만 6,860대, 화물기는 1,940대에 이르고 있고, 연간 항공기 여객 수는 22억 7천만 명 이상, 항공 화물량은 4,100만 톤을 기록하고 있다. (2008년 기준)
1947년, 비행기는 음속의 벽을 넘어서 초음속 여객기가 출현했고 2004년, 최대 853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초대형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이 완성돼 대형 항공 수송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또한, 보잉사에서 개발한 B787은 동급의 항공기에 비해 연료 소모를 20%나 절감시키는 혁신적인 설계를 했다.
에어버스의 A380모델. 최대 853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초대형 여객기다.(왼쪽) 보잉사의 B787 모델. 동급 항공기보다 연료 소모를 20% 절감할 수 있다.(오른쪽)
최근에는 대형 항공기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개인용 항공기가 새로운 기술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의 대형 항공기가 공항에서 공항으로 승객을 수송하는 것인데 반해, 개인용 항공기는 집 앞에서 목적지까지 자동차처럼 직접 이동할 수 있는 운송수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고 항공기를 자율 또는 원격으로 조종해 운항시키는 무인항공기 기술 또 다른 새로운 분야이다. 아직까지는 대부분 군사용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무인항공기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 향후에는 항공기 자체가 상호 정보를 주고받으며 자율적으로 비행계획에 따라 운항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기술을 개인용 항공기 개념과 결합시키면, 아마도 공상과학 영화에서 공중을 고속도로처럼 질서정연하게 날아다니던 자가용 항공기들의 행렬을 눈앞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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