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 동물원의 범, 재스민 향기, 수학 교과서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안톤 슈낙은 독일에서 잊힌 작가 … 한국에선 30년 가까이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 엉뚱하고 자유로운 상상력 … ‘모자가 벗겨지는 걸 보고 휘파람을 불자’
⊙ 엉뚱하고 자유로운 상상력 … ‘모자가 벗겨지는 걸 보고 휘파람을 불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Anton Schnack)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략)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중략)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략)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재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老木)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오는 은은한 음악 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 누구인가 모래자갈을 밟고 지나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이는데, 당신은 여전히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을 보일 때. (중략)
하고많은 날들을 도회(都會)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커먼 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 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 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나 아닐까? (중략)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 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루트 함순’(1859~1952·노르웨이 작가. 1920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편집자)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에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출처=차경아 옮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문예출판사, 2011년 6판 1쇄, p.9~13)
한때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비록 산문이지만 글 속 이미지가 시처럼 아름다워 소개한다.
안톤 슈낙을 슬프게 하는 대상은 특별하지 않다. 예리하고 섬세한 시선이 지나간 추억의 부스러기들이 그로 하여금 마음에 울림을 준다.
안톤 슈낙(Anton Schnack·1892~ 1973)은 1892년 독일 프랑켄 지방 리넥에서 태어났다. 그는 뮌헨에서 문학, 음악, 철학을 공부한 뒤 신문사 문예담당 편집장을 지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 미국의 전쟁포로가 됐다가 풀려났다(이를 두고 나치에 협력한 문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처음에는 시를 썼으며 나중에는 소설과 수필로 영역을 넓혔다. 짤막한 산문(Kleinprosa)을 즐겨 발표했다. 엉뚱하지만 자유로운 상상력이 드러난 작품이 많다. 국내에 번역된 〈우산을 확 뒤집어 보라〉의 한 문장을 인용하면 이렇다.
〈… 시간이 충분히 있다면 야릇한 취미에 빠져 시간을 보내 보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나뭇잎으로 온 몸을 장식하고 신나게 춤을 춰 본다든지, 때리는 듯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혹은 갑작스레 밀려오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며 괴로워하면서도 묘한 쾌감을 느껴 본다든지, 우산이 갑자기 확 뒤집어지는 걸 보고 킬킬대거나 점잖은 신사의 모자가 우스꽝스럽게도 벗겨져 날아가는 걸 보고 휘파람을 분다든지, 남몰래 지붕의 기와나 깡마른 나뭇가지를 휙 던져 본다든지 … (하략)〉(문현미 옮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1998)
그의 글은 권위적이지 않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일부러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작지만 소중한 우리 삶의 이야기를 투명한 감성으로 들려준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1941년 펴낸 수필집 《젊은 날의 전설(Jugendlegende)》에 실렸다.
한국인에게 문장교육을 시킨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1953년 처음 고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등장했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인의 마음을 이 단편이 어루만져 주었다. 당시 글은 일본 호세이대(法政大)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수필가 김진섭(金晋燮·1903~?)이 번역했다.
언론인 김성우(金聖佑)는 2000년 《월간조선》 4월호에 기고한 〈국어 교과서가 명문(名文)을 죽인다〉에서 자신이 파리 특파원으로 있을 때 안톤 슈낙의 고향을 찾아갔던 기억을 더듬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칼’이란 조그만 마을에서 살다 간 안톤 슈낙을 독일인들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더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의 글이 30년 가까이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이 이국(異國)의 무명작가가 한국인에게 문장을 가르쳤던 것이다.
김성우씨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전문을 암송했다고 한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글의 정조와 음조를 내 작문의 키노트(keynote)로 삼고 싶은 과욕에서”였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교과서에서 사라진 것은 1982년 무렵이다. 제4차 교과서 개편으로 사라졌는데 김성우씨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교과서에서 추방당한 것은 그야말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서 명문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인데, 우리를 즐겁게 하던 문장들이 퇴장했다”고 말했다.
교과서 영향 때문인지 많은 문인이 ‘우리를(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소재로 글을 썼다. 시집이나 에세이의 단골 메뉴였다.
시인 고은은 1960년대 잡지에 ‘슬프게 하는 것들’을 주제로 여러 차례 에세이를 연재한 일이 있다. 30대 중반이던 시인을 슬프게 만든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 까닭 없이—분명히 까닭이 있겠지만—벽에 금이 간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린이의 의족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제 어머니에 업혀서 어머니의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어린 의족을 따라가다가 ….
덧문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겨울 밤에나 비가 올 때나 제 구실을 하고 그 밖에는 한구석에 밀어붙이는 운명에서 나 자신의 운명을 느끼지 않는가. (중략) 비 온 뒤, 어린아이의 고무신 한 짝이 빗물로 채워져 있을 때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라사데의 현〉, 《세대(世代)》, 1969년 7월호, p.360~369)
〈개똥벌레〉로 친숙한 가수 신형원은 1992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앨범을 내놓았다. 타이틀곡 〈우리를 슬프게 …〉의 가사(조병석 작사·작곡)는 이렇다.
‘내가 사랑해 왔던 많은 순간들을 희미해지는 기억에 이별로 남길 때, 회색빛 거리에서 초라한 모습에 인생을 노래하는 맹인의 노래가 슬퍼. 점점 높아만 가는 빌딩 숲 사이로 길게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와 비오는 골목길을 지나는 차들과 그 사이로 비켜 선 아이가 왜 자꾸만 나를 슬퍼지게만 하는지 ….’
지난 7월 출간된 고(故) 최인호 작가의 다섯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에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제하의 글이 실려 있다. 《바보들의 행진》 《고래 사냥》의 최인호는 1980년대 한국문단을 풍미했던 ‘청년문학’의 아이콘이었다.
〈… 죽은 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가 아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우리들의 삶에 조그마한 기쁨을 주었던 모든 죽은 사람의 기억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때 살았었으므로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최인호,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안톤 슈낙(Anton Schnack)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략)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중략)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략)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재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老木)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오는 은은한 음악 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 누구인가 모래자갈을 밟고 지나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이는데, 당신은 여전히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을 보일 때. (중략)
하고많은 날들을 도회(都會)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커먼 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 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 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나 아닐까? (중략)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 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루트 함순’(1859~1952·노르웨이 작가. 1920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편집자)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에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출처=차경아 옮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문예출판사, 2011년 6판 1쇄, p.9~13)
국내 번역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문예출판사). |
안톤 슈낙을 슬프게 하는 대상은 특별하지 않다. 예리하고 섬세한 시선이 지나간 추억의 부스러기들이 그로 하여금 마음에 울림을 준다.
안톤 슈낙(Anton Schnack·1892~ 1973)은 1892년 독일 프랑켄 지방 리넥에서 태어났다. 그는 뮌헨에서 문학, 음악, 철학을 공부한 뒤 신문사 문예담당 편집장을 지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 미국의 전쟁포로가 됐다가 풀려났다(이를 두고 나치에 협력한 문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처음에는 시를 썼으며 나중에는 소설과 수필로 영역을 넓혔다. 짤막한 산문(Kleinprosa)을 즐겨 발표했다. 엉뚱하지만 자유로운 상상력이 드러난 작품이 많다. 국내에 번역된 〈우산을 확 뒤집어 보라〉의 한 문장을 인용하면 이렇다.
안톤 슈낙은 조락(凋落)의 계절인 가을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썼다. 충남 부여 궁남지의 활짝 핀 연꽃 위로 파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다. |
예를 들어 나뭇잎으로 온 몸을 장식하고 신나게 춤을 춰 본다든지, 때리는 듯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혹은 갑작스레 밀려오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며 괴로워하면서도 묘한 쾌감을 느껴 본다든지, 우산이 갑자기 확 뒤집어지는 걸 보고 킬킬대거나 점잖은 신사의 모자가 우스꽝스럽게도 벗겨져 날아가는 걸 보고 휘파람을 분다든지, 남몰래 지붕의 기와나 깡마른 나뭇가지를 휙 던져 본다든지 … (하략)〉(문현미 옮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1998)
그의 글은 권위적이지 않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일부러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작지만 소중한 우리 삶의 이야기를 투명한 감성으로 들려준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1941년 펴낸 수필집 《젊은 날의 전설(Jugendlegende)》에 실렸다.
한국인에게 문장교육을 시킨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실린 안톤 슈낙의 수필집 《젊은 날의 전설(Jugendlegende)》(1941년작). |
언론인 김성우(金聖佑)는 2000년 《월간조선》 4월호에 기고한 〈국어 교과서가 명문(名文)을 죽인다〉에서 자신이 파리 특파원으로 있을 때 안톤 슈낙의 고향을 찾아갔던 기억을 더듬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칼’이란 조그만 마을에서 살다 간 안톤 슈낙을 독일인들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더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의 글이 30년 가까이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이 이국(異國)의 무명작가가 한국인에게 문장을 가르쳤던 것이다.
김성우씨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전문을 암송했다고 한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글의 정조와 음조를 내 작문의 키노트(keynote)로 삼고 싶은 과욕에서”였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교과서에서 사라진 것은 1982년 무렵이다. 제4차 교과서 개편으로 사라졌는데 김성우씨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교과서에서 추방당한 것은 그야말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서 명문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인데, 우리를 즐겁게 하던 문장들이 퇴장했다”고 말했다.
교과서 영향 때문인지 많은 문인이 ‘우리를(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소재로 글을 썼다. 시집이나 에세이의 단골 메뉴였다.
시인 고은은 1960년대 잡지에 ‘슬프게 하는 것들’을 주제로 여러 차례 에세이를 연재한 일이 있다. 30대 중반이던 시인을 슬프게 만든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 까닭 없이—분명히 까닭이 있겠지만—벽에 금이 간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린이의 의족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제 어머니에 업혀서 어머니의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어린 의족을 따라가다가 ….
덧문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겨울 밤에나 비가 올 때나 제 구실을 하고 그 밖에는 한구석에 밀어붙이는 운명에서 나 자신의 운명을 느끼지 않는가. (중략) 비 온 뒤, 어린아이의 고무신 한 짝이 빗물로 채워져 있을 때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라사데의 현〉, 《세대(世代)》, 1969년 7월호, p.360~369)
안톤 슈낙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했다. |
‘내가 사랑해 왔던 많은 순간들을 희미해지는 기억에 이별로 남길 때, 회색빛 거리에서 초라한 모습에 인생을 노래하는 맹인의 노래가 슬퍼. 점점 높아만 가는 빌딩 숲 사이로 길게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와 비오는 골목길을 지나는 차들과 그 사이로 비켜 선 아이가 왜 자꾸만 나를 슬퍼지게만 하는지 ….’
지난 7월 출간된 고(故) 최인호 작가의 다섯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에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제하의 글이 실려 있다. 《바보들의 행진》 《고래 사냥》의 최인호는 1980년대 한국문단을 풍미했던 ‘청년문학’의 아이콘이었다.
〈… 죽은 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가 아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우리들의 삶에 조그마한 기쁨을 주었던 모든 죽은 사람의 기억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때 살았었으므로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최인호,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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