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태양력인 이집트 달력,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와 서구에 전래
⊙ 미 존스홉킨스대 스티브 행크-리처드 헨리 교수, 날짜와 요일을 고정한 달력 개발
⊙ 미 존스홉킨스대 스티브 행크-리처드 헨리 교수, 날짜와 요일을 고정한 달력 개발
문제 하나. ‘어떤 해’의 300번째 날과 ‘그 다음 해’의 200번째 날이 같은 요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해’가 윤년일까? 하나 더. ‘그 다음 해’ 1월의 달력과 요일 및 날짜가 모두 같은 달이 ‘어떤 해’의 달력에 있을까? 해답은 글의 마지막 부분에 있다.
날짜며 달을 처음 배우던 그때, 주먹을 꼭 쥐고 검지 바로 아래의 맨 처음 튀어나온 곳부터 1, 2, … 12를 세며 볼록 튀어나온 곳은 31일, 오목한 곳은 30일이라고 외웠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때 7월로 도착한 새끼손가락 아래 볼록한 곳에서는 같은 자리에서 시작하여 반대방향으로 다시 8월부터 세어야 하며, 2월은 28일이고 4년에 한 번씩 29일이 온다는 것까지 각자 기억속의 누군가가 이야기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하루, 한 달, 1년의 길이가 정해진 것이고, 이러한 결정은 누가 내린 것인지.
1년은 어떻게 1년이 되었는가
기원전 3000년 훨씬 이전부터 많은 고대 문명에서 살던 이들에게 주기적으로 변하는 자연현상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밝혀 내야 할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이들은 태양의 움직임, 별자리의 변화 등을 기록한 결과로 1년이 대략 365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특히 마야인들은 1년이 대략 365.242일임을 밝혀 냈는데, 현재의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측정한 365.24219879일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감탄을 자아낸다.
태양의 움직임으로 생기는 하루와 1년이라는 단위는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에, 중간의 다른 단위가 필요했다. 이때 기준이 된 것이 달인데, 달은 모양의 변화가 뚜렷하고, 맨눈으로 오래 쳐다볼 수도 있어 관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여러 문명권에서 태양력보다는 달을 기준으로 한 태음력을 사용했음이 여러 자료로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는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동굴에서 발견된 뼛조각인데, 일부에서는 이것이 달의 모양을 기록한 달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달의 관찰로 삭망월이 대략 30일이라는 것을 알아낸 고대인들은 태음력을 즐겨 쓰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우리 생활 속에도 여러 흔적으로 남아 있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은 태양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 태양력이다. 그렇다면 태양력은 언제부터 쓰게 된 것인가?
고대 이집트로부터 시작된 태양력
현재 쓰고 있는 태양력은 고대 이집트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에 대한 이집트인의 관심은 각별했는데, 이집트의 아스완, 카이로 등에 아직도 남아 있는 나일로미터(Nilometer)는 강의 높이를 측정하기 위한 장치로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얼마나 나일강의 높이에 관심이 많았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7월쯤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한 해의 시작으로, 지금쯤 그들은 매우 분주했을 것이다. 나일강 상류에 큰 비가 오고, 하류에서는 강이 넘쳐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었는데, 물론 이 홍수로 인한 가축과 집 등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지만, 동시에 범람 후 비옥해진 땅에서 1년의 수확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 이집트의 1년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태양을 기준으로 관측한 1년이 365일쯤이라는 것을 안 이집트인들은 1년을 효과적으로 나누기 위해 고민했다. 그 당시 셈법으로 365를 정확히 셋으로 나누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10일을 기준으로 태음력에서 측정한 한 달을 30일로 하여 일 년을 만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나머지 5일은 어떻게 했을까? 이것은 그들의 신화와 관련이 있다. 하늘의 신 누트(Nut)와 대지의 신 게브(Geb)가 태양의 신 라(Ra)의 뜻을 어기고 결혼을 했다. 그 결과 누트는 일 년(당시 360일) 동안에는 자식을 가질 수 없다는 저주가 내려지게 되었다. 누트가 낳은 자식이 이집트를 통치할 것이라는 예언까지 나왔기 때문에 라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에 누트는 지식의 신 토트(Thoth)에게 도움을 청하였는데, 하늘의 달과 주사위 놀이를 하여 자신이 이기면 일년의 1/72을 더 쓰기로 했다. 주사위 놀이에서 이긴 덕에 누트는 360×1/72=5일을 더 얻어 자식들을 낳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1년은 365일이 되었다고 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초하룻날을 정하고 달력을 만드는 일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시리우스 별*이 태양과 거의 같은 시간에 떠오른 날로부터 1년을 12월, 1달은 30일(마지막 달은 35일), 1년을 365일로 정함으로써 최초로 태양력(양력)을 사용한 민족이 되었다.
율리우스 달력
1년이 365일로 구성된 달력은 꽤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런데 실제 태양의 공전주기는 365일보다 약간 길어서, 4년이면 하루 정도의 차이가 난다. 뭐, 많고 많은 날 중 하루쯤이야 싶지만, 40년이면 10일, 400년이면 100일의 차이가 나 계절이 맞지 않게 된다.
1년의 자연현상을 예측하고자 했던 애초의 목적과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달력이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시리우스 별의 위치로 나일강의 홍수를 알려줄 수 있는 제사장들의 예언이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당연히 제사장들의 권력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있었을 것이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농사의 모든 시기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수확량을 늘리는 데 더 용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의지가 모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부터 달력을 수정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238년경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왕위에 오르자 달력을 개혁하면서 5일로 이루어진 마지막 달을 4년에 한 번씩 6일로 하였다. 이 달력이 이집트 내에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200년 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고대 로마로 전해진다.
고대 로마의 식민지였던 고대 이집트에서 4년간 머물렀던 율리우스는 윤년이 적용된 태양력을 발견하고, 로마에서 쓰던 달력을 떠올렸다. 당시 로마에서 쓰던 달력은 태음력을 기본으로 태양의 움직임에 맞춰 윤달을 넣어 사용하고 있었다. 제사장과 관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윤달의 결정에 관여하다 보니 기준도 없고 날짜의 수도 오락가락하여 규칙을 알아보기 힘든 달력이 되었고, 온갖 비리의 온상이기도 했다.
조국으로 돌아온 율리우스는 권력을 손에 쥐고 모든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 개혁의 대상 중에 달력도 포함되었는데, 일단 옛 로마 달력의 사용을 금지하고 이집트에서 가지고 온 달력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율리우스 달력’이라 지칭한 뒤, 이것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이것이 기원전 46년의 일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 새로운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고 불렀으며, 달마다 로마신의 이름을 붙이면서 자신의 생일이 있는 7월에는 자신의 성인 율리우스를 붙여 신의 대열에 슬쩍 합류했다. ‘July’는 율리우스가 변형된 형태. 로마의 달력은 율리우스 달력으로 바뀌었지만, 일상생활에 정착하기까지는 혼란이 많았다.
후에 왕위에 오른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력의 일부를 개혁하면서 황제로서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도 달의 이름 중 하나로 바꾸었는데, 그것이 현재 8월인 ‘August’다. 황제인 자신의 달이 날짜가 7월보다 적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2월에서 하루를 떼어 8월에 붙였고 그 때문에 홀수 달은 31일, 짝수 달은 30일이라는 규칙도 깨지고 말았다.
현재 달력 시스템의 완성, 그레고리력
율리우스력에서 한 해를 365.25로 계산하면서 태양의 공전주기와 맞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1년이 대략 365.2422로 1년에 약 11분씩 오차가 쌓여 갔다.
(365.25-365.2422)×24×60≒11분
이 역시 1000년이 모이면 11000분, 즉 7일 정도가 되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사용되던 율리우스력은 사용 후 1000년의 세월이 넘어가면서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활절 시기를 결정하는 춘분 등의 시기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누적된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칙서를 내려 1582년 10월 5일을 기점으로 10일을 빼고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일이 되도록 개정하게 했다. 또 앞으로 예상되는 오차에 대비해 100년 단위의 해들 중에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 즉, 1600년, 2000년 등의 해에는 윤년을 두고, 400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해에는 윤년을 두지 않기로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이 달력을 사용하고 있다.
미래의 달력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아마 매해 날짜마다 요일이 계속하여 바뀌는 것에 대한 의견이 가장 많을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과 스티브 행크 교수와 물리천문학과 리처드 헨리 교수는 날짜와 요일을 고정한 달력을 개발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붙여 ‘행크-헨리 퍼머넌트 달력(Hanke-Henry Permanent Calendar)이라 명명했다.
이 달력은 1월 1일 일요일로 시작한다. 1년에 8개월은 한 달이 30일이고, 3·6·9·12월은 31일로 한다. 이렇게 하면 1~3월 날짜와 요일이 4~6월, 7~9월, 10~12월에 똑같아진다
이렇게 계산하면 1년이 8×30+4×31=364일이 된다. 부족한 날짜는 어떻게 할까? 5년과 6년을 번갈아 가며 한 번씩 12월에 한 주를 더 만든다. 예를 들어 2016년 12월이 6주라면 2021년, 2027년, 2032년에 한 주가 추가되는 것이다. 추가 일주일은 토요일인 12월 31일과 일요일인 1월 1일 사이에 들어가고, 날짜나 요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달력을 적용하면 날짜와 요일이 바뀌지 않아 매년 달력을 바꿀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는 항상 일요일, 수요일에 태어난 사람은 생일이 항상 수요일이 된다.
헨리 교수는 전 세계에 이 달력을 보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 달력은 과연 사람들에게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것인가? 만약 이 달력이 전면적으로 사용된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뀔까. 이득을 얻는 이는 누구이고, 반대로는 누구일 것인가.⊙
날짜며 달을 처음 배우던 그때, 주먹을 꼭 쥐고 검지 바로 아래의 맨 처음 튀어나온 곳부터 1, 2, … 12를 세며 볼록 튀어나온 곳은 31일, 오목한 곳은 30일이라고 외웠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때 7월로 도착한 새끼손가락 아래 볼록한 곳에서는 같은 자리에서 시작하여 반대방향으로 다시 8월부터 세어야 하며, 2월은 28일이고 4년에 한 번씩 29일이 온다는 것까지 각자 기억속의 누군가가 이야기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하루, 한 달, 1년의 길이가 정해진 것이고, 이러한 결정은 누가 내린 것인지.
1년은 어떻게 1년이 되었는가
도르도뉴 지방에서 발견된 뼛조각. 달의 모양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
태양의 움직임으로 생기는 하루와 1년이라는 단위는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에, 중간의 다른 단위가 필요했다. 이때 기준이 된 것이 달인데, 달은 모양의 변화가 뚜렷하고, 맨눈으로 오래 쳐다볼 수도 있어 관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여러 문명권에서 태양력보다는 달을 기준으로 한 태음력을 사용했음이 여러 자료로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는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동굴에서 발견된 뼛조각인데, 일부에서는 이것이 달의 모양을 기록한 달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달의 관찰로 삭망월이 대략 30일이라는 것을 알아낸 고대인들은 태음력을 즐겨 쓰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우리 생활 속에도 여러 흔적으로 남아 있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은 태양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 태양력이다. 그렇다면 태양력은 언제부터 쓰게 된 것인가?
고대 이집트로부터 시작된 태양력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던 장치인 나일로미터. |
7월쯤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한 해의 시작으로, 지금쯤 그들은 매우 분주했을 것이다. 나일강 상류에 큰 비가 오고, 하류에서는 강이 넘쳐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었는데, 물론 이 홍수로 인한 가축과 집 등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지만, 동시에 범람 후 비옥해진 땅에서 1년의 수확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 이집트의 1년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태양을 기준으로 관측한 1년이 365일쯤이라는 것을 안 이집트인들은 1년을 효과적으로 나누기 위해 고민했다. 그 당시 셈법으로 365를 정확히 셋으로 나누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10일을 기준으로 태음력에서 측정한 한 달을 30일로 하여 일 년을 만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나머지 5일은 어떻게 했을까? 이것은 그들의 신화와 관련이 있다. 하늘의 신 누트(Nut)와 대지의 신 게브(Geb)가 태양의 신 라(Ra)의 뜻을 어기고 결혼을 했다. 그 결과 누트는 일 년(당시 360일) 동안에는 자식을 가질 수 없다는 저주가 내려지게 되었다. 누트가 낳은 자식이 이집트를 통치할 것이라는 예언까지 나왔기 때문에 라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에 누트는 지식의 신 토트(Thoth)에게 도움을 청하였는데, 하늘의 달과 주사위 놀이를 하여 자신이 이기면 일년의 1/72을 더 쓰기로 했다. 주사위 놀이에서 이긴 덕에 누트는 360×1/72=5일을 더 얻어 자식들을 낳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1년은 365일이 되었다고 한다.
이집트신화 속의 신 누트와 게브, 그리고 라. 이들 간의 갈등과 달력에 얽힌 신화가 있다. |
율리우스 달력
로마 달력.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
1년의 자연현상을 예측하고자 했던 애초의 목적과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달력이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시리우스 별의 위치로 나일강의 홍수를 알려줄 수 있는 제사장들의 예언이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당연히 제사장들의 권력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있었을 것이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농사의 모든 시기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수확량을 늘리는 데 더 용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의지가 모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부터 달력을 수정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238년경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왕위에 오르자 달력을 개혁하면서 5일로 이루어진 마지막 달을 4년에 한 번씩 6일로 하였다. 이 달력이 이집트 내에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200년 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고대 로마로 전해진다.
고대 로마의 식민지였던 고대 이집트에서 4년간 머물렀던 율리우스는 윤년이 적용된 태양력을 발견하고, 로마에서 쓰던 달력을 떠올렸다. 당시 로마에서 쓰던 달력은 태음력을 기본으로 태양의 움직임에 맞춰 윤달을 넣어 사용하고 있었다. 제사장과 관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윤달의 결정에 관여하다 보니 기준도 없고 날짜의 수도 오락가락하여 규칙을 알아보기 힘든 달력이 되었고, 온갖 비리의 온상이기도 했다.
조국으로 돌아온 율리우스는 권력을 손에 쥐고 모든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 개혁의 대상 중에 달력도 포함되었는데, 일단 옛 로마 달력의 사용을 금지하고 이집트에서 가지고 온 달력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율리우스 달력’이라 지칭한 뒤, 이것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이것이 기원전 46년의 일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 새로운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고 불렀으며, 달마다 로마신의 이름을 붙이면서 자신의 생일이 있는 7월에는 자신의 성인 율리우스를 붙여 신의 대열에 슬쩍 합류했다. ‘July’는 율리우스가 변형된 형태. 로마의 달력은 율리우스 달력으로 바뀌었지만, 일상생활에 정착하기까지는 혼란이 많았다.
후에 왕위에 오른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력의 일부를 개혁하면서 황제로서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도 달의 이름 중 하나로 바꾸었는데, 그것이 현재 8월인 ‘August’다. 황제인 자신의 달이 날짜가 7월보다 적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2월에서 하루를 떼어 8월에 붙였고 그 때문에 홀수 달은 31일, 짝수 달은 30일이라는 규칙도 깨지고 말았다.
현재 달력 시스템의 완성, 그레고리력
율리우스력에서 한 해를 365.25로 계산하면서 태양의 공전주기와 맞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1년이 대략 365.2422로 1년에 약 11분씩 오차가 쌓여 갔다.
(365.25-365.2422)×24×60≒11분
이 역시 1000년이 모이면 11000분, 즉 7일 정도가 되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사용되던 율리우스력은 사용 후 1000년의 세월이 넘어가면서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활절 시기를 결정하는 춘분 등의 시기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누적된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칙서를 내려 1582년 10월 5일을 기점으로 10일을 빼고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일이 되도록 개정하게 했다. 또 앞으로 예상되는 오차에 대비해 100년 단위의 해들 중에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 즉, 1600년, 2000년 등의 해에는 윤년을 두고, 400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해에는 윤년을 두지 않기로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이 달력을 사용하고 있다.
미래의 달력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아마 매해 날짜마다 요일이 계속하여 바뀌는 것에 대한 의견이 가장 많을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과 스티브 행크 교수와 물리천문학과 리처드 헨리 교수는 날짜와 요일을 고정한 달력을 개발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붙여 ‘행크-헨리 퍼머넌트 달력(Hanke-Henry Permanent Calendar)이라 명명했다.
이 달력은 1월 1일 일요일로 시작한다. 1년에 8개월은 한 달이 30일이고, 3·6·9·12월은 31일로 한다. 이렇게 하면 1~3월 날짜와 요일이 4~6월, 7~9월, 10~12월에 똑같아진다
이렇게 계산하면 1년이 8×30+4×31=364일이 된다. 부족한 날짜는 어떻게 할까? 5년과 6년을 번갈아 가며 한 번씩 12월에 한 주를 더 만든다. 예를 들어 2016년 12월이 6주라면 2021년, 2027년, 2032년에 한 주가 추가되는 것이다. 추가 일주일은 토요일인 12월 31일과 일요일인 1월 1일 사이에 들어가고, 날짜나 요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달력을 적용하면 날짜와 요일이 바뀌지 않아 매년 달력을 바꿀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는 항상 일요일, 수요일에 태어난 사람은 생일이 항상 수요일이 된다.
헨리 교수는 전 세계에 이 달력을 보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 달력은 과연 사람들에게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것인가? 만약 이 달력이 전면적으로 사용된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뀔까. 이득을 얻는 이는 누구이고, 반대로는 누구일 것인가.⊙
문제의 답 ‘어떤 해’의 300번째 날과 ‘그 다음 해’의 200번째 날은 ‘그 다음 해’가 평년이라면 265일 차이가 난다. 265를 7로 나누면 6이 남으므로 두 날의 요일이 같지 않다. 따라서 ‘그 다음 해’는 윤년이고, ‘어떤 해’는 윤년이 아니다. 또한 일요일을 0, 월요일을 1, … 토요일을 6이라고 표시하고, ‘어떤 해’의 1월 1일을 일요일이라 하면 각 달 1일의 요일은 다음과 같다. ‘그 다음 해’의 1월 1일은 월요일이 되기 때문에, ‘어떤 해’와 요일 및 날짜가 같은 달은 5월이다. 2015년과 2016년의 달력을 비교해 보시라. *시리우스 별: 별자리 중 큰개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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