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발전소라 일컬어지는 ‘MIT 미디어랩’의 창시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1995년 방한시 그의 책 한국어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전해들은 것이기도 하고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경험이긴 하지만 한국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바로 당신들의 교육체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중점을 두었던 바로 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당신들은 교육 분야에서 극히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교육의 길 대신에 주입식 암기교육에 극단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교육은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제야말로 미래지향적 교육을 구현하겠다는 인식으로 2009 교육과정 총론 개정 및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제1의 중점 과제, ‘창의와 배려의 조화를 통한 인재 육성-창의·인성교육 기본방안’ 추진을 통해 창의성과 인성이 함께 강화되는 교육을 실현코자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아직 정책에 대한 신뢰지수가 낮다.
그 배경에는 수십년간 교육개혁안이 추진되다 좌절되었던 점, 입시문제, 교육환경 문제, 교육주체들(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사이의 불신 등이 여전히 난마같이 얽혀 있는 탓이 있고, 이런 현실에서 이상적으로 보이는 ‘창의·인성교육’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하는 불신이 교육현장에 공존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 때문에 안된다’는 부정과 실패의 악순환이 계속될 경우,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사람’이 경쟁력의 전부인 우리나라는 ‘교육’ 때문에 글로벌 경쟁의 파고 속에 힘없이 떠밀려 생존을 심각히 걱정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최근의 입시정책이나 교육과정에 대한 접근의 방향을 보면 이제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기도 한다. 우선은 맹목적으로 외우고 문제풀이 하는 교육의 근원이 되어왔던 입시의 통로가 다양해졌다. 또한 학교의 독특한 교육철학에 근거해 다양한 커리큘럼을 운용하는 학교들이 많아졌으며, (’09 개정을 통해) 교육과정에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 주당 3~4시간이나 생기고, 이를 기반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의 경험을 주체적으로 기록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학습과정과 활동을 입학사정관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상당히 진일보한 변화라 하겠다. 이제는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경험한 것들이 진학·진로에 유의미해진 것이다.
왜 창의적 체험활동인가 산업화와 지식정보화를 넘어 미래 사회는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이 극한(extreme engineering)에 달하면서 결국 사람의 지혜와 감성이 모든 가치 창출의 근원으로 새삼 강조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동시에 더불어 살 줄 아는 인재’ 양성을 추구하는 창의·인성 교육이야말로 미래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창의성이 발현되기 위한 중요한 요소들이라는 (경험의) 개방성, 호기심, 몰입, 상상력 등이 만발하는 곳이 바로 창의적 체험활동의 현장이다. 학교 안팎의 교육 역시 온 몸으로 느끼고, 상상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될 때, 우리 청소년들의 감성은 더욱 풍부해져 창의로 승화되고 긍정적 마인드로 정화될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창의·인성은 이제 더 이상 지식암기로 습득될 수 없으며,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적·정서적 경험과 이를 통한 문제해결능력, 학문을 넘나드는 융합적 교육과정을 통한 새로운 지식·정보 창출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학교의 정규교육과정은 학습자의 적성과 관심이 중심이 되는 유연한 교육과정이 아니다. 이는 각 교과마다 해당 학문적 논리에 의해 교과별로 더 많은 내용들을 교육과정에 집어넣으려 하는 구조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지금, 창의적 체험활동을 추진하는 의의가 크다할 수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교과 이외의 활동이나 교과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으며, 교과의 벽을 뛰어 넘어 학생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영역의 지적·신체적 체험활동을 통합적으로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창의적 체험활동을 본 취지대로 잘 활용한다면 미래를 대비하는 선진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의 운용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의 4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각 영역별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학생, 학급, 학년, 학교 및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게 학교에서 선택하여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다. 여기에 제시되는 영역과 활동 내용은 권고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이보다 더 창의적이고 풍성한 교육과정을 선택과 집중하여 운영할 수 있다.
즉, 창의적 체험활동에 배당된 시간(단위) 수는 영역별로 학생의 요구, 학교 및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학교의 재량으로 배정하되, 학생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학교 급별, 학년별로 활동 영역 및 내용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창의적 체험활동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의 하위 영역 간에 통합하여 편성·운영할 수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 운영 계획은 학생들의 흥미와 소질, 학교와 지역 사회의 실정을 고려하여 작성하되, 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반영되도록 하며, 학교의 필요에 따라 기준 시간(단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여 운영하거나 격주제, 전일제, 집중제와 같이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다.
초등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에서는 학생의 기초생활습관의 형성, 나와 가족, 우리에 대한 공동체 의식의 형성, 주변과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북돋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중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에서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태도의 확립, 자신의 진로에 대한 탐구, 자아의 발견과 개성·소질의 발현에 중점을 둘 수 있는 활동들을 통해 긍정적인 마인드와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은 입시를 앞두고 있는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초·중학교(3시간)보다도 많은 4시간이다. 이는 고교시절이야 말로 나와 가족을 넘어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스스로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많은 시기이며, 전인적(holistic) 성숙을 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의 균형 잡힌 단련이 더욱 필요하며, 나아가 진로와 관심분야에 대한 심화된 활동이 필요하다.
아울러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탐구하고, 같은 관심을 공유하는 이들과 토론하며, 내적 동기를 외부로 적극 표출시키는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내가 아닌 동료, 내 가족만이 아닌 사회에 대해 고민하면서 남에 대한 배려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 등을 체험과 실천을 통해 행동력으로 길러야 할 것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무엇보다 학생의 자기주도적 계획과 활동에의 몰입이 중요하다. 체험활동을 기록한 포트폴리오가 감동과 생명력을 가지려면 자신의 개성과 호기심을 살려 학생 스스로 계획하고, 정말 몰입하여 해보고, 그 과정의 모든 느낌을 그대로 쏟아 만듦으로써 살아 있는 경험의 산물들로 누적될 때, 이는 학생의 자서전적 작품이자 인생의 여적이 되는 것이다.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창의적 체험 활동 활성화 학생 개인의 흥미와 소질을 살리면서 아울러 집단활동을 통해 개인의 창의성과 인성이 함양되는 체험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학교가 다양한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재량활동이나 특별활동이 교과 보충수업으로 변칙 운영되거나 체험이 없는 학습활동이 되어 왔던 점을 되돌아 볼 때, 학교마다 양질의 풍부한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단기간에 만들어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에 지역사회의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 전문가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는 정부 출연 연구소나 각 부처 산하기관, 기업, NGO 등이 가진 시설과 프로그램, 전문가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창의적 체험활동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나누는 교육기부 운동을 전개·지원하고 있다.
국가의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학교마다 창의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각종 시설과 수많은 프로그램, 전문가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으로 끝나기 쉽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과 사회의 적극적 협력이 있다면 가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육은 ‘온 동네(사회)가 나서서 아이를 인재로 기르는 것’이라 했다. 학교 안에서 다 할 수 없다면 학교 밖을 활용하고 지역사회 모두가 협력하면 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세계 10위권의 기술 강국이자 G20 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다. 비록 전국 1만여 개 학교마다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부한 전통과 문화, 예술과 과학기술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를 창의적 체험활동에 적극 활용하려는 의지와 다양한 형태의 나눔 활동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구축하는 창의체험자원지도(CRM)는 우리 주변, 지역사회를 비롯해 전국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시설, 인적자원(전문가, 동아리 등)을 총망라해 학교가 창의적 체험활동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것으로, 이러한 정보와 관련 커뮤니티를 웹사이트, ‘크레존(www.crezone.net
)’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16개 시·도교육청과 협력하여 체험자원들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고 있으며 내년에 창의적 체험활동의 시작과 함께 지역별·수요자 특성별 맞춤형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컴퓨터에 의해 인간 뇌의 확장이 이루어졌듯이 이 사이트를 통해 학교의 교육과정이 풍부해지고, 학교가 이를 적극 활용하여 우리 학생들의 경험과 사고의 영역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