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6일 금요일

생물학의 지도를 완전히 변화시킨 RNA-꿈의 분자가 되기까지


1993년 앰브로스 그룹이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조그만 벌레의 돌연변이가 작은 RNA 조각의 결핍으로 인해 유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꿈의 분자’는 그 후 생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미르(miR: micro Ribo Nucleic Acid)라는 분자에 대한 이야기다. 2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RNA라는 물질은 생물학의 지도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RNA라는 분자의 재발견
첫째, 미르의 발견과 더불어 이뤄진 siRNA라는 물질의 강력한 도구적 활용성 때문이다. 분자생물학자들은 유전자의 기능을 조사하기 위해 여러가지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유전자의 기능을 직접적으로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험과학은 대상을 조작함으로써 기능한다. 따라서 유전자를 없애고, 쪼개고, 과발현시키고,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과 결합하는 단백질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이 사용된다.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듯이, 분자생물학자들은 부수고, 쪼개고, 추적한다. 그것이 유전자의 기능을 완벽하게 밝혀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는 가장 원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해당 유전자만을 없앤 후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유전학의 시대를 이끈 초파리는 바로 이러한 장점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사선이나 화학물질, 또는 유동인자를 이용해 하나의 유전자만을 방해하는 기술이 초파리 유전학자들에게는 가능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유전자의 기능 대부분이 초파리 유전학자들로부터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생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넉아웃(Knock-out)이라는 방법으로 생쥐의 유전체 중 해당 유전자 부위만을 도려내는 기법을 개발했다.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넉아웃 생쥐 한 마리를 만드는 데에만 수년이 걸릴 정도로 고된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짧은RNA 조각을 세포에 주입하는 것만으로 매우 정확하게 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분자생물학자들은 환호했다. siRNA를 잘만 디자인하면 원하는 어떤 유전자라도 침묵시킬 수 있다. 그동안 돌연변이를 사용해오던 초파리 유전학자들도 이젠 siRNA가 주입된 초파리들을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유전자 기능연구에 신기원이 열린 것이다. 이제 분자생물학 연구는 siRNA라는 도구 없이는 상상할 수조차 없게 돼 버렸다. 그것이 과학의 발전이 도구의 발전과 맞물려 있음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둘째,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대물림의 중심이 되는 DNA와, 생물의 신진대사 대부분을 관장하는 단백질을 축으로 연구돼온 생물학의 지침서에 변화가 생겼다. DNA와 단백질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수동적 분자로만 여겨졌던 RNA가 실은 적극적으로 유전자 정보의 흐름을 조절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르를 비롯한 다양한 꼬마RNA들은 유전자 발현의 네트워크를 조율한다. 단백질처럼 강력한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꼬마RNA들은 세포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꼬마RNA들은 유전자 발현의 미세조절자라고 볼 수 있다.

꼬마RNA는 유전자 발현 조절

RNA라는 분자가 가진 특징은 구조적으로는 DNA와 가깝지만 기능적으로는 DNA와 단백질의 중간 즈음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네 개의 염기로 유전자 정보를 저장하는 DNA처럼 RNA에도 디지털화된 정보가 수록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RNA에 정보가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리보솜을 구성하는 RNA들의 대부분엔 정보가 담겨 있지 않다. 리보솜RNA(rRNA)의 대부분은 단백질들의 복합체를 구성하기 위한 일종의 뼈대가 된다. 번역RNA(tRNA)에서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트리플렛 코돈을 제외한 부위도 일종의 구조체처럼 작동한다. 라이보자임(ribozyme)이라는 RNA분자는 단백질처럼 효소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RNA는 DNA처럼 디지털 정보를 기능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단백질처럼 아날로그 정보를 사용하기도 하는 셈이다.

꼬마RNA들은 RNA분자의 이런 두 가지 특성을 이용해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게 된다. 먼저 꼬마RNA들은 디지털 정보를 기반으로 표적RNA 혹은 DNA와 염기결합을 이룬다. 핵산은 4개의 염기로 구성되고 A-T, G=C 의 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20개 정도의 짧은 길이를 가진 RNA라 할지라도 표적과의 일치도는 4*20 정도로 매우 정밀할 수 있다.

이런 디지털 정보를 기반으로 한 꼬마RNA들의 특징이 미세조절자로서 그들이 기능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표적을 찾은 꼬마RNA들을 인식하고 표적의 기능을 조절하는 것은 단백질 복합체에 의해 이뤄진다. 애고넛, 드로샤, 파샤 등의 단백질들을 비롯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없이 많은 단백질들이 이러한 경로에 관여하고 있다.

유전자 발현의 조절이라는 연구주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끄 모노와 프란수아 자콥이 대장균에서 오페론을 발견한 이래로,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DNA와 단백질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러한 패러다임 안으로 RNA라는 분자가 뛰어들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최초의 미르인 lin-4도 단백질의 돌연변이를 연구하던 고전유전학과 발생학의 전통 속에서 우연히 찾아낸 것이다.

꼬마RNA들의 존재가 과학자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그 새로운 기능이 알려지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과학자들이 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 분자생물학자, 생화학자, 진화학자를 비롯해서 수많은 생물정보학자들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RNA의 세계에 입성했다. 겨우 17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이제 꼬마RNA들에 대한 연구는 한 개인이 더 이상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독립된 분과로 정착해버렸다. 하루에도 수십 편의 논문들이 발표된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새로운 종류의 꼬마RNA의 존재가 밝혀지고 있다. 꼬마RNA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건은 오래된 역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역사다.

현재진행형인 과학에 대해 말하는 방법
현재에도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최신 과학의 성과들을 난해하지도, 그렇다고 경박하지도 않게 담아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특히 한국처럼 과학교양서의 대부분이 번역서이거나 아주 쉬운 에세이의 형태로 출판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학 논문들은 일종의 압축파일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풀어내는 압축 프로그램이 돼야만 한다. 심지어는 분야가 달라도 논문에 접근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수많은 전문용어들이 횡행하는 과학논문들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과학 언론들은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매우 선정적인 이미지로 과학을 선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과학의 성과들은 대부분 그것이 이용될 가능성과 사회에 미칠 영향 등만을 고려해 보도되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의 배경들은 무시되기 일쑤다. ‘암치료에 획기적인 발판 마련’, ‘한국과학자, 치매의 원인을 최초로 발견! 치매치료에 신기원이 열릴 듯’등과 같은 제목이 과학 언론의 현주소다.

따라서 과학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겐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다. 우선 경박한 에세이로만 인식되는 과학자들의 교양서적을 넘어서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의 전통이 확립되고 전승돼온 서구에선 과학자가 곧 작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과학자사회에 발표하는 논문 외에도 언제나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저술들로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었다.

뉴턴과 다윈이 이러한 저술의 표본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윈의 예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7세기~18세기의 과학자들의 작업은 자연철학과의 구분이 쉽지 않다. 과학자들 자신이 바로 철학자였다. 학회가 성립되고 전문저널이 지금처럼 많이 생긴 것은 훗날의 일이다. 그 시기에 뉴턴과 라부아지에, 보일과 볼타, 갈바니, 라이프니쯔와 같은 과학자들이 저술한 책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과학자들의 에세이와는 수준이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철학적으로 반성하고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려 했으며, 대중과 자신의 동료들 모두를 대상으로 저술활동을 했었다. 17~18세기 과학자들의 저술은 철학서이자 사상서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사는 철학사와 분리되지도 않고, 분리될 수도 없다.

과학이 전문화되고 과학을 둘러싼 사회적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는 19세기에도 이러한 전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기에 다윈과 볼츠만은 자신들의 과학적 작업들을 철학적으로 사색하고 책을 집필했다. 그 외에도 19세기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 전통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과학자들의 작업은 비엔나라는 공간에서 논리경험주의로 이어지기도 했고, 철학의 지형을 바꿔놓는 계기도 됐다.

과학의 팽창과정 속 현실
20세기에 들어와 과학은 캠브리아기 대폭발과 같은 엄청난 팽창과정을 겪는다. 분과과학의 시대가 시작됐고, 과학 저널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19세기의 전통이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전통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물론 과학저술가라는 전문직업인들이 생겨났고, 많은 교양과학서들이 그들에 의해 집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20세기 중엽은 과학사라는 학문이 독립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했다. 과학의 역사가 서구인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과학학 혹은 메타과학이라는 개념도 이때쯤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런 조류 속에서 과학자들의 저술보다는 과학의 주변부에서 서식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저술이 과학저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가 과학교양서라고 읽고 있는 ‘과학혁명의 구조’와 같은 책들이 과학의 주변부에서 만들어진 과학저술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에른스트 마이어, 칼 세이건, 션 캐롤 같은 과학자가 우리 곁에 있고, 유전학의 역사를 쓴 스터번트 같은 학자의 전통도 살아 있다. 과학논문들은 압축된 스타일로 변형됐고, 과학자와 글쓰기가 괴리돼가는 전문화 과정을 통해 과학의 오랜 전통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작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학자들은 글을 쓴다. 바로 그것이 한국에는 부재한 전통이다.

또 한가지 넘어서야 하는 벽은 바로 과학언론의 경박함이다. 과학기자들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언론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네이쳐와 같은 잡지가 서구인의 교양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며 한국의 과학언론은 반성해야 한다. 분자생물학이 하버드에서 교양의 기초로 다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대학들은 반성해야 한다. 대중의 관심사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눈높이란 이 정도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선정적인 과학기사만을 내보내는 기자는 오만한 것이다.

짧지만 과학이 이 땅에 건너온 지 수십 년이 흘렀고 그 동안 과학과 관련된 여러 사태를 거치면서 대중의 눈높이도 향상됐다. 뿐만 아니라, 과학 언론이 대중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고 또 반대로 대중이 과학언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묻혀버린 많은 발견들을 끄집어 내고, 거기에 새로운 활력을 입히는 것, 그것이 과학 언론이 해야할 수많은 책무 중 하나여야 한다. 대중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능력 탓이지 대중의 경박한 관심사 때문은 아닌 것이다.

한국 과학 언론의 현주소는 심각하다. 대부분의 종이신문사에는 ‘과학’만을 다루는 섹션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IT나 기술과 같은 분야와 혼합돼 있다. 궁금하다면 뉴욕타임즈를 보라. 그것이 바로 과학언론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대한 과학자도 아닌 필자가 이러한 고민들 속에서 글을 썼다면 건방진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윗세대가 해주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의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 과학학의 저술들과 과학자들의 현실이 완전히 분리돼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과학자는 그런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과학자의 현실적 조건을 경험한 과학자가 과학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대중들에게 솔직하고 생기 있게 전달하는 작업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라는 고민을. ‘꿈의 분자’는 그런 고민 속에서 쓰여졌다.

1. 초파리의 모든 유전자들을 대상으로한 siRNA 라인이 존재한다. 이 거대한 작업은 미국이 아닌 오스트리아 비엔나대의 배리 딕슨(Barry Dickson)이라는 과학자에 의해 이뤄졌다. VDRC라고 불리는 센터의 V는 바로 비엔나(Vienna)를 의미한다. http://stockcenter.vdrc.at/

2. Philipp Kapranov, Fatih Ozsolak, Sang Woo Kim, Sylvain Foissac, Doron Lipson, Chris Hart, Steve Roels, Christelle Borel, Stylianos E. Antonarakis, a. Paula Monaghan, Bino John, and Patrice M. Milos, "New class of gene-termini-associated human RNAs suggests a novel RNA copying mechanism," Nature, Nature Publishing Group, 466 (2010), 642-646.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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