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1일 화요일

논술 제시문 간의 공통·차이점 찾는 게 관건

〈예시문제 1〉

〈가〉 중(中)이란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음이다. 군자는 중용(中庸)에 따라 행동하고 소인은 중용에 반(反)하여 행동한다.

군자의 중용이란 군자의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 때에 따라 중(中)에 맞추어 행동함이다. 소인이 중용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소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동함이다.

군자는 자신의 현재 처지에 따라 행하고 그 밖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귀한 처지에 있다면 부귀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가난하고 천한 처지에 있다면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며, 오랑캐와 같은 처지에 있다면 오랑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환난에 처해 있다면 환난에 처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군자는 어떤 처지에 놓인다 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윗자리에 있을 때에는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아니하며, 아랫자리에 있을 때에는 윗사람에게 매달리지 아니한다.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으면 원망이 없게 될 것이니,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않고 아래로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편안하게 처신하면서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것을 행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나〉 우리가 〈윤리학〉에서 나온 언명들, 곧 진실로 행복한 생활이란 모든 장애로부터 벗어난 선의 생활이며, 선이란 중용에 있는 것이라는 언명들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최선의 생활방식은 중용에, 즉 각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중용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아가 시민들이 좋은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나쁜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가를 결정하는 기준들은 정치질서를 평가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질서란 시민들의 생활방식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에는 세 개의 계급이 있다. …중략…

국가는 가능한 한 평등하며 동등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되고자 한다. 다른 어떤 계급보다 중간계급이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중간계급에 기초를 두는 국가가 최선의 질서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중간계급이야말로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요소이기 때문이다. 중간계급은 다른 어떤 계급보다도 안전하다.

〈예시문제 2〉

〈가〉 전쟁을 피해 고향 집에 돌아온 나는 하루 종일 독서와 사색에 빠져서 가족들을 무심히 대했다. 그런 가운데에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괴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가슴에 사무쳤다. 고아는 배고픔에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헐벗은 노파는 이불도 없이 밤새 웅크려 있으며, 몹쓸 병에 걸린 자들이 허리를 조아려 구걸을 해도 의지할 데가 없었다. 나는 이들로 인한 슬픔과 괴로움에 하루하루를 탄식 속에 지냈다. 저들은 저들 자신이 괴로운 것일 뿐 나와는 무관한 일인데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동요시키는 것일까.

생각해 보건대 나에게 있는 지각이 천지의 기(氣)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혈맥이 온몸에 통하듯이 모든 사람은 천지의 기와 연결되어 있다. 자석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데 지각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이 없을 수 있겠는가? 남의 불행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인(仁)이야말로 바로 사람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온 세상 모든 인류는 나의 동포이다. 겉모습은 서로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 없다하더라도, 나는 책을 통해 저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고 세계 곳곳에서 만든 물건들을 사용하고 여러 나라의 예술을 향유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가 진보하면 우리도 진보하고 퇴보하면 우리도 퇴보하며, 그들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고 그들이 처참해지면 나도 처참한 심정이 된다.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사랑으로 끌어당기니 내 어찌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나〉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도 오래도록 만나지 않으면 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일본인 천 명의 익사나 러시아인 이천만 명의 기아에 관한 기사도 내 아내의 인 손가락과 위통에 시달리는 어린 아들의 찡그린 표정만큼 나의 동정심을 자극하지는 못한다. 분명 먼 곳의 불행과 가까운 곳의 불행은 우리 마음에 서로 다른 파장을 일으키고, 모든 인간적 사랑과 공감, 그리고 가치 부여는 관심의 원근법의 지배를 받는다.

어떤 이들은 사랑이 좁은 범위에서 넓은 범위로 확산되어 가고, 그와 더불어 사랑의 가치도 증대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자기애보다 동료애가, 동료애보다 조국애가, 그리고 조국애보다는 인류애가 더욱 가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의 대상이 속한 집합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사랑도 보편화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략…

따라서 인류애보다 조국애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조국은 인류보다 구체적인 가치의 내용을 개인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민족보다 인류를 사랑하는 일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다.

〈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중략…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비교’나 ‘제시문 간의 관계’를 묻는 문항은 논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문항이다. 이때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게 관건인데, 단순히 ‘내용의 차이, 스토리의 차이’ 비교에 머물러 서는 안 된다.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준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준점’을 통한 비교는 단순히 독해뿐만 아니라 전체 논술 문항을 해결해 나아가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기출문제를 통해 제시문의 차이점으로 쓰였던 관점이나 속성들을 유형화 해보자.

◆5가지 차이점과 주체

제시문항의 차이점을 밝히기 위해서는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필요하다. 기출문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기준은 크게 주체(대상), 범위(영역), 수단(방법 및 과정), 효과(결과), 목적(원인 및 동기) 이렇게 5가지가 있다.

먼저 〈예시문제 1〉의 제시문 〈가〉∼〈나〉를 토대로 주체를 기준으로 한 차이점을 알아보자.

〈가〉를 정리하자면 군자는 중용을 지니고 있고, 소인은 중용에 반하여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럼 ‘군자-중용의 도리를 지키는 이’로 정리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관점을 비롯해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중용 자체가 하나의 질서 유지 측면에서 활용될 수 있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사회 내에서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중용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 군자를 등용해 세상의 바른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서는 중용의 자세가 저절로 드러난다고 본다. 지혜로운 이는 너무 지나치고, 어리석은 사람은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데, 결국 개인의 노력을 강조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세계일보
안정적인 사회의 조건을 이야기할 때 ‘군자’를 등용해 세상의 바른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중산층이 정치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입장도 있다. 제시문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주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사진은 선거철 정치인들의 주요 방문지인 한 전통시장의 모습.

〈가〉가 개인적 차원을 다룬 반면, 〈나〉는 사회적 차원을 다루고 있다. 중산층이 많은 사회일수록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정치가 이뤄진다는 주장이다. 일단 중산층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양적으로도 가장 많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적 형식 측면에 대해 많은 고려가 이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중용’을 적용해 보았을 때, 일단 개인적 중용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체’의 차이를 찾으라고 해서 그 주체의 ‘이름’을 언급하는 표면적인 적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주체’의 차이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특정하는 것보다 그 주체가 가진 ‘속성’이나 ‘특징’을 자신의 언어로 분석해 낼 수 있느냐의 싸움이라고 보아야 한다.

◆범위를 기준으로 한 차이점

〈예시문제 2〉는 범위를 기준으로 차이점이 드러난다.

제시문 〈가〉∼〈다〉는 인간과 사회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감’이라는 수단이 매우 유용하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인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제시문들은 공감의 범위 면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친다.

제시문 〈가〉는 국가와 계급, 성별 등의 차이를 뛰어넘는 대동의 도를 추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국가와 계급, 성별의 구별 짓기는 공감의 폭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이에 따른 갈등과 전쟁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어떠한 구분도, 경계도 없는 무제한의 공감을 누리는 것은 ‘인(仁)’의 끌어당김으로 인한 당연한 것으로 인식한다.

〈가〉의 관점은 물론 바람직하고 추구해야 할 이상이지만, 제시문 〈나〉의 관점에 의하면 공감의 범위 확대는 그 구체성의 빈곤이라는 문제를 불러온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확장될수록 이 공감이 창출하는 가치는 점점 추상화된다는 것이다.

제시문 〈나〉는 추상적으로 범위가 확대된 공감보다 좁고 친밀한 범위 내에서의 구체적인 공감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나〉에 따르면 마지막 문장에서 인상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민족보다 인류를 사랑하는 일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제시문 〈다〉는 제시문 〈가〉와 〈나〉의 상충된 두 주장들을 연계하는 내용을 진술한다. 제시문 〈다〉의 화자는 실연의 아픔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개인의 차원에서 보편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 제시문은 공감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보여준다.

이번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제시문 〈다〉의 파악과 이용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제시문 〈가〉와 〈나〉는 상반된 견해인데, 〈다〉가 두 주장의 접점을 제시하고 하나의 대안적인 절충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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