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역사의 유산에 짓눌려 현대화에 실패…새로운 그리스 건설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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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과 고색창연한 신화가 충돌한 싸움에서 늘 신화가 승리했다. 카페트조풀로스는 “우리의 담론은 국가 자체가 아니라 국가로서 갖는 가치와 고대 역사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물론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유가 된다. 개혁을 시도할 때마다 새 정부는 이전 정부가 문제를 방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스에서 어떤 일이든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새로운 규정 아래 구체제의 층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카페트조풀로스는 아테네 부시장으로 시정에 참여했다.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에 가입했을 때 돈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 졸부 엘리트층이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계층이 등장했다. 부패하지 않았고 개혁을 원하며 그리스가 국가로서 기능할 수 있기를 바라는 계층이다. 그들이 아직 뭉치진 않았지만 각박한 현실에 직면해 앞으로 단합할 것이다.”
그리스는 지난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국제채권단이 추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긴축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곧바로 냉혹한 현실에 부닥쳤다. EU 지도자들이 추가 구제금융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더 낫다고 판단하면 ‘그렉시트’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만약 추가 구제금융이 합의된다면 일부 부채의 탕감과 긴축 프로그램의 완화가 포함될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새로운 그리스의 건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고역이 될 것이다. 그리스 위기는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고 그리스 일간지 카티메리니의 야니스 팔라이오로고스 기자가 지적했다. “그리스인은 서방을 두려워하고 의심한다. 세계화와 변화를 겁낸다. 우리의 허세 이면에는 열등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린 고대 세계에서 많은 것을 물려받았지만 현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자신의 결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제 그 결점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탓한다.”
그리스는 수세기 동안 외부 세력의 지배를 받으면서 국민과 국가 사이의 유대가 끊어졌다. 탈세하고 국가를 속이는 전통이 애국적인 의무가 됐다. 그리스는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다가 1829년 독립했다. 초대 행정수반이던 이오아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는 중앙집권식 현대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막강한 지방 군벌들이 반발하면서 그는 결국 1831년 암살당했다. 다음해 그리스 최초의 현대 국왕 오토가 즉위했다. 그러나 그는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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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공산당이 일으킨 내전은 1945년부터 거의 5년 동안 지속됐다. 그 내전의 심리적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 1967∼1974년 미국의 지지를 받는 군사정권이 그리스를 통치했다. 이제 그리스는 부채 위기를 ‘트로이카’로 알려진 국제채권단[국제통화기금(IMF), EU, 유럽중앙은행(ECB)]과 특히 독일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트로이카에 맞서는 싸움은 역사적인 독립 투쟁의 맥락으로 이어졌다. 그리스 역대 정부의 잘못이 무엇이었든 대다수 그리스인에겐 긴축정책이 원수였다. 실업률과 빈곤률이 치솟았다. 지중해의 쾌활함 이면엔 암울한 절망감이 흐른다.
컬럼비아대학 교수로 ‘꿈의 나라(Dream Nation: Enlightenment, Colonization and the Institution of Modern Greece)’의 저자인 스타티스 구르구리스는 “강대국들이 다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그리스가 부채를 갚지 않으려 한다는 주장은 과장됐다. 부채를 상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모든 문제는 외부의 강요 탓이다. 긴축정책은 그리스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겼다. 그러나 긴축 프로그램이 시행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그 결과 부당하다는 느낌이 커졌다. 그들은 우리가 무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독일이 그리스를 무모하게 대한다.”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았고 또 다시 포위당했다고 느끼는 그리스인으로선 음모론에 빠져들기 쉽다. 그리스의 유대인은 홀로코스트 당시 대부분 희생돼 이제 몇 천명만 남았다. 그런데도 반인종주의연맹(ADL)에 따르면 그리스인의 69%는 반유대인 감정을 갖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비율이다.
아테네의 투자은행 그룹 악시아 캐피털 마켓츠의 콘스탄티노스 쿠포폴루스 대표는 “전 세계가 우리를 적대시하며 파괴하려 한다는 음모론이 성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의 경제적 무기력을 외세 탓으로 돌리는 사고방식에 강한 반감을 가진 신세대 사업가다. “그리스인에겐 유대인, 미국인 등 늘 잘못을 탓할 상대가 있다. 지금은 독일인이다. 그리스인은 열등감을 우월의식으로 포장한다. 우리는 세계가 우리에게 빚졌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뭔가 해야 한다.”
사회주의 정당 파소크와 보수 정당 신민주당이 수십 년 동안 권력을 나눠가진 결과 서로 뒤를 봐주고 눈 감아주는 문화가 생겼다고 팔라이오로고스 기자가 말했다. “두 정당이 번갈아 권력을 잡고 특권을 누리다 보니 그리스인이 국가에 충성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정부가 사복을 채우는데 왜 내가 세금을 내야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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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공동체 의식은 여전히 강하다고 키라마르기우 의원은 말했다. “학교 공동체가 서로 돕는다. 좀 더 여유 있는 가정이 가난한 가정에게 베푼다.” 그는 이번 국민투표 결과에 만족한다. “재정 문제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다. 강대국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재정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아테네 북부 교외 도시 키피시아는 드라페트소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조용하고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엔 고급 아파트와 우아한 빌라가 즐비하다. 2009∼2011년 총리를 지낸 게오르기우스 파판드레우 같은 정·재계 엘리트가 사는 곳이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노련한 정치인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그 역시 국가의 낭비벽에 충격 받았다. “공무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알아본 결과 인구 1100만 명인 나라에 공무원이 71만6000명이었다. 그에 비해 인구 6400만 명인 영국에는 공무원이 44만7000명이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집권 2년만에 공무원을 56만 명으로 줄였다. 아직도 많은 편이지만 이젠 매년 정확한 인원수가 집계된다.
정치가 불안정하지만 좌익과 우익은 현 상태를 지속하긴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루려면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금이 실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제를 고쳐야 한다. 부패와 높은 세금이 더 많은 부패를 부른다. 재산세와 사치세를 도입했지만 충분치 않았다.”
유로존을 떠나선 안 된다는 점엔 그리스인 모두가 동의한다. 옛 통화 드라크마로 돌아가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큰 재앙이 닥친다. 통화의 급격한 평가절하가 뒤따를 것이라고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지적했다. “5년 전에 드라크마화로 돌아갔다고 해도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지금은 훨씬 더 하다.”
그러나 관광객에겐 그리스는 여전히 휴가의 천국이다. 쾌청한 날씨와 낭만적인 해변에다 문화와 역사가 풍요롭다. 사람들이 정이 많고 친절하다. 그들은 현실에 적응해간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선 광경을 제외하고는 아테네의 삶은 이전처럼 계속된다. 기오르고스 카미니스 아테네 시장은 “누구도 지금의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잘 대처하고 있다. ATM에서 한도액 60유로를 출금하려고 인내심 있게 줄 서서 기다린다. 아테네엔 아직도 관광객이 보고 체험할 게 숱하다.”
- ADAM LEBOR
NEWS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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