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시험날 아침이면 교실을 돌아다니며 공부 많이 했냐고 일일이 물어보는 아이가 있었다. 나도 슬쩍 친구에게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대로 공부했다고 말하는 녀석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들 어떤 이유 때문인지 공부를 제대로 못했단다. 이런 걸 꼬치꼬치 물어보는 녀석도 웃기지만 시험인데도 제대로 공부한 아이가 없다는 것 또한 이상하다.
시험날인데 하나같이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 이것은 ‘셀프 핸디캐핑(Self Handicapping)’ 전략의 일종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셀프 핸디캐핑을 풀어 쓰면 ‘제 무덤 파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스스로 단점이나 결점을 만드는 행위다. 자신을 자랑하기에도 모자랄 판인데 왜 스스로 깎아 내리는 것일까? 왜 아이들은 자신이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일까? 시험을 망쳤을 때를 미리 대비하고자 함이다. 변명거리를 미리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원래 이 정도로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제대로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만한 사정이 있어 못했다고 미리 변명거리를 만들어 두기 위함이다. 남들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정성껏 문제를 푼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을 쓴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물어본다. “그거 답 맞니?” 아이는 엄마의 눈을 힐끗 쳐다보고 이내 답을 지운다. 엄마는 그저 답이 맞는지 물어봤을 뿐인데 아이는 지레짐작으로 답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질문을 부정적 평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야 부모가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해 주지만 중·고등학생이 되면 채점 역시 아이의 몫이 된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미 스스로 채점하는 아이들이 많다. 스스로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틀린 것도 맞은 것으로 채점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건 맞을 수 있었는데, 실수야’ 이렇게 생각하고 답을 슬쩍 고쳐 쓴 뒤 동그라미를 친다. 자기 자신조차 속인다. ‘난 이런 것 정도는 맞힐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위로한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틀린 게 많으면 안 된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평가를 의식한 탓이다.
아이들은 이처럼 일상에서 내 생각보다 남들의 평가에 민감하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속인다. 내 생각보다 남의 눈을 심각하게 의식하는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좌절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신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이들이 일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함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신감에서 비롯된 창의성이 부족할 때 좋은 성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모의 평가와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실수에 야박하면 부모의 평가에 민감해지고, 결과에 연연하면 자신조차 속이게 된다. 학습 면에서 보더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아이들의 실력이 월등하다. 최상의 시험공부 전략은 틀린 문제를 두 번 다시 틀리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공부의 기본은 오답노트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답노트의 진가는 형식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다. 틀린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두 번 다시 틀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여 반복 연습하는 데 있다. 오답노트를 아무리 멋들어지게 만들어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아이가 있고 오답노트가 없는데도 실력이 향상되는 아이가 있다. 오답노트를 꼭 만들지 않더라도 틀린 문제를 ‘실수’로 여기지 않고 ‘틀렸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틀리지 않도록 노력한 아이는 반드시 실력이 나아질 수밖에 없다. 다른 이들의 평가가 아닌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공부 역시 잘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우리 딸이 탁월하기를 먼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제정신 가지고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남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불행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행복은 제정신에서 나오고 탁월함 또한 제정신일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시험날인데 하나같이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 이것은 ‘셀프 핸디캐핑(Self Handicapping)’ 전략의 일종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셀프 핸디캐핑을 풀어 쓰면 ‘제 무덤 파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스스로 단점이나 결점을 만드는 행위다. 자신을 자랑하기에도 모자랄 판인데 왜 스스로 깎아 내리는 것일까? 왜 아이들은 자신이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일까? 시험을 망쳤을 때를 미리 대비하고자 함이다. 변명거리를 미리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원래 이 정도로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제대로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만한 사정이 있어 못했다고 미리 변명거리를 만들어 두기 위함이다. 남들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정성껏 문제를 푼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을 쓴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물어본다. “그거 답 맞니?” 아이는 엄마의 눈을 힐끗 쳐다보고 이내 답을 지운다. 엄마는 그저 답이 맞는지 물어봤을 뿐인데 아이는 지레짐작으로 답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질문을 부정적 평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야 부모가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해 주지만 중·고등학생이 되면 채점 역시 아이의 몫이 된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미 스스로 채점하는 아이들이 많다. 스스로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틀린 것도 맞은 것으로 채점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건 맞을 수 있었는데, 실수야’ 이렇게 생각하고 답을 슬쩍 고쳐 쓴 뒤 동그라미를 친다. 자기 자신조차 속인다. ‘난 이런 것 정도는 맞힐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위로한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틀린 게 많으면 안 된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평가를 의식한 탓이다.
아이들은 이처럼 일상에서 내 생각보다 남들의 평가에 민감하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속인다. 내 생각보다 남의 눈을 심각하게 의식하는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좌절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신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이들이 일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함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신감에서 비롯된 창의성이 부족할 때 좋은 성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모의 평가와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실수에 야박하면 부모의 평가에 민감해지고, 결과에 연연하면 자신조차 속이게 된다. 학습 면에서 보더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아이들의 실력이 월등하다. 최상의 시험공부 전략은 틀린 문제를 두 번 다시 틀리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공부의 기본은 오답노트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답노트의 진가는 형식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다. 틀린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두 번 다시 틀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여 반복 연습하는 데 있다. 오답노트를 아무리 멋들어지게 만들어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아이가 있고 오답노트가 없는데도 실력이 향상되는 아이가 있다. 오답노트를 꼭 만들지 않더라도 틀린 문제를 ‘실수’로 여기지 않고 ‘틀렸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틀리지 않도록 노력한 아이는 반드시 실력이 나아질 수밖에 없다. 다른 이들의 평가가 아닌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공부 역시 잘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우리 딸이 탁월하기를 먼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제정신 가지고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남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불행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행복은 제정신에서 나오고 탁월함 또한 제정신일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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