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5일 목요일

교사들 "깨우면 학생들 대들어… 학부모가 항의하기도"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정말 많이 자긴 합니다. 수업 과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 반에 3분의 1은 항상 잔다고 보면 돼요. 성적이 상위권인 아이들은 덜 자는 편이고…."

서울 A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최모(53)씨는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들을 깨우는 것을 이제 거의 포기했다. 끊임없이 바뀌는 입시제도와 점점 늘어나는 행정업무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 가면서 진도를 제대로 맞춰갈 여력이 없다는 게 최씨 항변이다. "요즘 교원평가제가 시행되면서 선생님들이 좀 더 긴장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까지 깨우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일일이 깨우고 수업하기가 어려워요. 소리 지르면 목도 쉬고요. 그래서 자는 아이들을 못 본 체 지나치기도 하죠."

서울 B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한모(27)씨는 "교사가 잣대를 들고 잠자는 학생을 가리키며 '일어나라'고 하면 선생님 손에 있던 자를 잡아채고 째려보며 대드는 아이들도 있다"며 "그럴 때 교사는 당황스러운 것을 넘어 위협감을 느낀다"고 했다. 공부하느라 늘 잠이 모자라는 아이를 깨운다고 학부모가 학교에 항의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깨우고 싶어도 못 깨운다는 교사도 있었다.

인천 C중학교 교사 박모(56)씨도 '잠자는 학교'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박씨는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며 "요새 초등학교에서도 선행(先行)학습을 한 아이들은 잔다"고 했다. 박씨는 "솔직히 아이들은 교사가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며 "인성교육이 중요한데 그게 안된 아이들이 많아서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교사들이 행정 업무를 보고 있다. 교육청 공문 처리와 방과 후 수업 비용 정산 같은 잡무까지, 교사들은 다른 업무가 수업준비에 지장이 있을 만큼 많다고 말한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공교육의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잠자는 학교'의 가장 큰 원인으로 노력하지 않는 교사들을 꼽고 있다. 수업을 재미있게 준비하거나 교실에서 자는 아이들을 깨우려는 열정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다른 얘기를 한다.

B고등학교 교사 한씨는 "수업준비 시간도 모자라는데 지난 1학기에는 학생들이 하루에 양치질을 몇 번씩 하는지를 파악해 보고하라는 공문도 내려왔다"며 "예전에는 학생들 성적 등 필수 정보만 입력하면 됐는데 요새는 별 시답잖은 것까지 다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인천 D중학교 교사 박모(56)씨는 "방과 후 수업을 하면 학생들로부터 받은 방과 후 수업비와 비용을 정산하는 일까지 선생님이 다 한다"며 "행정실에서 해야 할 일들도 선생님이 떠맡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교사는 교육의 질(質)만으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아이들 돈을 관리하는 일까지 맡기는 시스템에서 무슨 공교육의 질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이런 잡무들 때문에 학생들 앞에서 체면도 안 설뿐더러 수업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진다"고 했다. 대구 E고등학교 교사 유모(38)씨도 "수업은 따로 준비를 안 해도 별 표시가 안 나는데, 공문은 기한이 있으니까 안 하면 바로 표시가 난다"며 "공문서 처리가 교사들의 주(主) 업무 같다"고 답답해했다. 높은 경쟁률의 임용고시를 통과한 고학력 학교 교사들의 봉급이 학원이나 대기업 등에 비하면 박봉(薄俸)이어서 교사들이 수업준비를 위해 노력하게 하는 '당근'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학생들 간의 성적 격차가 너무 크고, 한 반에서 가르쳐야 하는 학생 수가 많은 것도 교사들의 고충이었다. 서울 F중학교 교사 황모(51)씨는 "수학시간에 학생들에게 주관식 20문제로 시험을 치면 반에서 절반은 0점이 나오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경기도 G고등학교 교사 한모(51)씨는 "학교는 시험을 거쳐 비슷한 성적의 학생들을 모아놓은 학원과 달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포기한 학생이 섞여 있어 가르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편으로 교사들이 자성(自省)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었다. "수업준비보다 행정업무에 더 신경 쓰는 교사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는 것이다. 서울 H중학교 교사 배모(46)씨는 "선생님들이 시간을 내려면 얼마든지 낼 수 있는데 본인 여가 활동에만 관심이 많지 수업 연구는 잘 안 한다"며 "교사 중 15% 정도만 공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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