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6일 금요일

"숨 막히는 경쟁을 발전 기회로 삼아라"

예일대 합격생 양은성양의 조언

예일대 신입생 양은성(19)양의 학창시절은 '경쟁'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교육열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서울 대치동의 대청중을 거쳐 소위 영재들만 모인다는 민사고, 명문 예일대까지 치열한 경쟁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최근 'Why Not? 지금부터 시작이야!'라는 책을 낸 그는 "경쟁의 근본은 본인의 성장이지, 다른 사람들과의 줄 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숨 막히는 경쟁을 자신이 발전할 기회로 삼아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을 어떻게 즐길까.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그가 민사고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를 통해서였다. “난 민사고에 갈 거야,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거든”이라고 으스대며 말하는 친구를 보며 왠지 모를 오기가 발동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학생들이 모인다는 말에 끌렸고,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늦은 시기인 중2 겨울방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민사고 입시에 뛰어들었다.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늘 듣고 자랐지만 민사고에 입학하는 순간 주위 동기들의 스펙에 적지 않이 놀랐다. 국제 대회에서 입상한 동기부터, 내신 만점자들까지 화려한 스펙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들과 3년간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점차 그들과 생활하면서 익숙해지자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스펙도 그 아이의 특성 중 하나라고 편히 생각했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환경이든 재빨리 적응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한몫했다.

“저는 한 번도 남들을 누르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초조해지기 때문이죠. 그냥 있는 그대로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사람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듯, 저도 조금 더 노력이 요구되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니 더 분발하자고 편히 생각했어요”

그는 치열한 경쟁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로 작용한다고 단언한다. 우수한 학생들과 만나 경쟁하게 될수록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것. 기대치가 높아지면 목표를 더욱 높게 잡고,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고 했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경험이 있었기에 주저 없이 전 세계 인재들이 모인다는 예일대에 지원할 수 있었죠. 대학에 입학하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경쟁에 놓이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할 앞으로의 제 모습을 생각하면 벌써 즐거워요.”

숨 가쁘게 달려온 당찬 열아홉 살의 양은성양.
◆자신을 한계 짓지 말자
그의 이력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민사고 3년 동안 활발히 대외 활동을 한 결과 2009년 대한민국 인재상 2기 수상자로 선정됐고 국제계열 전체 수석으로 졸업했다. 민사고 6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법무법인 김앤장의 후원을 받아 한국고교생모의항소법정대회(NMCC)를 친구들과 공동 창설하고 2008년, 2009년 대회를 연이어 주관했다. 이어서 담당한 2009년 세계청소년모의국회(WYMC)에서 총 프로그램 기획팀장 및 디자인 총 팀장의 중책을 맡아 성공적으로 회의를 이끈 바 있다. 영어 모의법정, 영어토론 대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렇게 쉴 틈 없이 늘 새로운 도전을 한 이유는 뭘까. 양양은 도전 자체가 재미있다고 했다. 포트폴리오를 관리할 목적이나 다른 사람이 시켰다면 못했을 것이란다. 새로운 분야를 발견하는 즐거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 보는 세계와 선택의 폭이 넓어지죠. 제가 안전지대에만 머물러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따른 실수를 사전에 줄이려는 의도예요. 훗날 제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할 때 다양한 경험이 자산이 되어 최고의 적합한 길을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도전을 즐길 수 있었던 데에는 부모님의 역할도 컸다. 경험의 다양성을 높이 평가했던 그의 부모는 늘 그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해주려 헌신했다. 이후에는 그가 어떤 도전을 한다 해도 늘 찬성하고 격려해줬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오빠와 저를 위해 늘 경주까지 내려가서 다양한 문화재를 탐방시키셨어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면 짬을 내서 꼭 보러 갔죠. 서점이나 박물관에 가서 자극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는 요즘 예일대에서 보낼 4년간의 대학생활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빡빡한 일정보다는 군데군데 여유공간을 뒀다.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저 자신을 한계짓지 않았다는 점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대학생활을 하면 다양한 기회 앞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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