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5일 목요일

환경의 변화를 DNA에 기록하기 환경의 인지조율사 RNA

RNA 편집과정은 외부환경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사용된다. 특히 외부환경의 변화에 맞춰 신경 간의 연결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켜야 하는 신경계에서는 RNA 편집이 더더욱 중요한 분자적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RNA 편집을 담당하는 효소들의 발현은 외부신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편집효소들의 표적이 되는 단백질과 RNA들은 많은 경우 신경 간의 연결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두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가소성은 RNA 편집이라는 과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조율될 수 있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유전자 발현이라는 양적 조절을 통해서가 아니라,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수정하는 질적 조절을 통해서 RNA 편집과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생명체에게 유전체의 정보를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다. 자외선에 노출되었을 때 우리의 피부에서는 즉시 DNA 수리효소들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유전체의 염기서열이 마구 뒤엉키게 되면 세포가 죽거나 불사의 암세포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적 이점이 존재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세포들은 유전체의 정보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세포에서 유전체의 정보는 매우 보수적으로 유지된다.

RNA 편집과정은 이러한 유전체 정보의 보수성에 흠집을 내는 기제다. 하지만 RNA 편집과정이 유지되고 선택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전체의 정보가 RNA 수준에서만 수정되기 때문일지 모른다. RNA의 수명은 짧다. 특히 RNA는 DNA상의 정보를 잠정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만을 담당한다. 따라서 RNA 수준에서 염기서열을 수정하는 방법으로 외부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생명체의 전략은, 암과 같은 위험을 피하고 유전체의 정보를 보존하면서도, 외부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효율적인 전략일 수 있다.

환경의 정보를 DNA로 기록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미 소개했듯이, 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돌연변이에 노출될 가능성을 감수하고라도, 생명체가 유전체의 정보를 수정하는 경우가 있다. 면역계의 세포들이 그렇다. 예측 불가능할 정도의 다양성을 가진 외부 물질들에 대응하기 위해서 면역세포들은 염색체 재조합 및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수정한다. 외부항원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해야 하는 선택압이 돌연변이로 인한 암의 발생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기틀을 마련해준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RNA 편집의 표적인 되는 많은 단백질들 중에 DNA 복제 과정의 오류를 수정하는 효소들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유전체 정보를 보존하는 데 있어 가장 신중을 기하는 때는, 세포가 분열할 때일 것이다. 세포가 분열하기 위해서는 유전체의 정보가 복제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 DNA 수리 효소들의 가장 큰 목표가 된다. RNA 편집효소들은 바로 이 효소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면역계의 세포들은 DNA 수리효소들이 정확히 작동해야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유전체의 정보들을 수정할 수 있다. 원하는 부위에 국소적으로 일종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면역세포들로서는 이러한 기제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다른 부위에까지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것을 막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면역세포들은 DNA 수리효소들에 일어나는 돌연변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경세포들에서도 DNA 수리효소들의 돌연변이가 세포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

하지만 DNA 수리효소들에 발생하는 돌연변이에 면역세포와 신경세포들이 민감한 이유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DNA 수리효소들은 반드시 DNA 수준에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DNA의 정보가 RNA로 전사되는 과정을 감시하는 수리효소들도 존재한다. APOBEC 계열의 수리효소들은 면역세포의 DNA 재조합과정을 관리하는데, DNA뿐 아니라 RNA의 염기서열도 수정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면역세포들의 DNA가 항체의 다양성을 창출하기 위해 수정되는 과정은 RNA 수준에서도 일어난다. 즉, RNA에서 수정된 정보가 DNA로 재부호화(recoding)되는 것이다.

RNA 수준에서 수정된 정보를, DNA에 거꾸로 기록하는 재부호화 과정은 주로 APOBEC 효소들에 의해 수행된다. 또한 이 효소들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적응적 선택을 거쳤다는 증거가 있다. 즉,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APOBEC 효소들이 매우 빠르게 인간의 유전체 속에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신경세포에서도 가능할까?

면역계의 경우, 이러한 분자적 기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면역세포들의 유전체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항체와 수용체의 다양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면역세포에겐 외부의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물질들에 대한 대응이 선택압이 된다. 하지만 신경세포들에서까지 이러한 기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과 같이 고도의 인지능력을 지닌, 특히 엄청난 수의 신경세포를 발생시키고 분화시켜야 하는 고등생물의 경우에, 경험과 학습에 의해 습득된 외부환경의 정보들을 적절히 유전체에 각인시켜야만 하는 선택압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면역계와 신경계는 외부환경을 인지하고, 그 변화를 유전체에 잘 갈무리해야만 하는 공통의 선택압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

면역계는 이러한 대응을 위해 자신의 유전체의 정보를 과감하게 수정한다. 이러한 기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왔다. 그리고 우리는 RNA 편집효소들이 신경계에서 고도로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신경세포 내부엔 RNA 편집에 의해 수집된 외부환경의 정보들이 DNA로 재부호화되는 기제가 존재할 것이고, 아마도 그러한 분자적 기제는 RNA 편집과정에서 수정된 정보가 RNA를 매개로 하는 DNA 수리효소들에 의해 DNA로 기록되는 식으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신경세포에서 특히 고도로 발달한 RNA 편집과정의 기능이 잘 설명될 수 있다. 즉, 학습이나 경험에 의해 수정된 RNA 수준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경우, 이러한 RNA 수준의 변화를 DNA에 기록하는 것이다.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유전학적 변화로 전이되는 셈이다. 그러한 전이는 RNA 편집과정과 DNA 수리라는 두 과정이 연계됨으로써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사실 면역계에서는 RNA에 의해 매개되는 DNA 재부호화 과정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면역계의 DNA 재부호화 과정이 신경계에서도 가능하다는 가정은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증거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지지되어 왔다. 우선 면역세포의 VDJ 염색체 재조합을 담당하는 두 가지 효소들이 중추신경계에서도 발현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경험에 의한 가소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는 후각신경세포들의 세포분열과정에서 이 효소들이 대량으로 발현된다. 후각신경세포들은 다양한 후각수용체들을 발현하는데, 특히 생쥐에서는 후각신경세포들의 수용체에서 면역세포와 비슷한 염색체 재조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또 한가지 증거는 DNA 중합효소의 한 종류인 DNA 중합효소Y 의 경우에서 나타난다. 이 효소는 면역계에서 면역글로블린 단백질들의 유전자를 수정하는 데 관여하는데, 바로 이 효소가 역전사효소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RNA의 정보를 DNA로 기록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 바로 역전사효소다. 많은 레트로바이러스들이 자신들의 RNA 유전체를 숙주의 유전체에 끼워 넣을 때 사용하는 것이 역전사효소이기도 하다.

놀라운 사실은 DNA 중합효소Y가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두뇌 부위에서 발현되며, 면역글로블린의 염색체 재배열에 관여하는 DNA 중합효소M도 이 부위에서 발현된다는 것이다. 또한 신경세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여러 수용체들이 면역세포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면역글로블린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에서 RNA 편집과정이 활발히 일어나며, 역전사 효소들도 활발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인간의 유전체에서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 트랜스포존, LINE과 SINE에는 역전사효소가 코딩되어 있다.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기억 형성에 중요하다는 것은 최근 들어 확실해지고 있다 . 또한 이러한 DNA 수준의 후성유전학적 변화에 RNA가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

RNA 편집에서 DNA 재부호화로-환경의 변화를 기록하기

상황을 정리하자면,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두뇌영역의 신경세포들이 외부의 환경변화들을 RNA에 기록하는 기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주로 RNA 편집에 의해 수행된다. 외부환경의 변화된 정보가 RNA에 기록되는 방식은 RNA 편집효소들이 신경세포간의 연결을 담당하는 단백질들의 염기서열을 조금 수정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잠정적으로 외부의 변화가 RNA를 매개로 신경가소성을 유지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수정은 잠정적이다. 기록이 유전정보의 보관소인 DNA가 아니라 RNA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환경의 변화가 있다면 그러한 변화를 DNA에 기록하는 것이 세포에 이익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RNA 편집과정이 DNA 수리과정 및 역전사과정과 맞물리게 되는 것이다. 즉, 환경정보가 RNA로, RNA의 정보가 DNA로 기록되는 DNA 재부호화과정이 완성되는 셈이다.

RNA에 기록된 정보들이 DNA로 거꾸로 기록될 수 있으려면 세포질에 존재하는 편집된 RNA들이 핵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는 문제가 있다. 신경세포에는 RNA 소포체(granule)이라는 복합체가 상당수 존재하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RNA들과 RNA 결합단백질들이 결합되어 있다. 최근의 연구들은 바로 이 RNA 복합체가 핵에서 신경세포의 말단으로만 수송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방향으로도 수송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즉, 세포질에서 RNA 편집에 의해 수정된 정보들이 DNA가 존재하는 핵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지금도 여러분의 두뇌에서는, 오늘 점심에 먹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정보가 RNA에 기록되고, 그 정보가 다시금 DNA에 재부호화되는 과정이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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