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 겸 기업가이자 노벨상 창시자인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Alfred Nobel, 1833-1896)은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이지만,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를 위시하며 유럽 지역 내의 외국에서 보냈습니다. 프랑스와 미국인들에 의하면, 노벨이 그의 유언에 '노벨 수학상'을 포함하지 않는 것은 그가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인 미타그 레플러(Mittag-Leffler, 1846-1927)와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에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만일 노벨 수학상이 있었다면 그 당시 스웨덴의 대표적인 수학자였던 레플러가 자기를 첫 수상자로 선정하게끔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노벨이 수학을 유언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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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노벨이 레플러가 첫 수상자가 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 이유는 자신의 연적이어서가 아니라 레플러 때문에 보다 우수한 다른 수학자들이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했을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는 이미 학문적으로 그를 앞선 앙리 푸앵카레(Henry Poincara, 1854-1912)와 데이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 등의 수학자가 있었기 때문에 레플러가 스웨덴 학계에 로비를 가한다면 수상이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럴 경우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노벨상의 취지에 위배되었을 것이고, 아마도 노벨이 레플러를 의식했다면 다름 아닌 이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한편에서는 수학이 노벨상에서 제외된 것은 단순히 수학에 대한 노벨의 관심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노벨은 그의 유언에서 인류의 행복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을 제정하여 매년 그의 유산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상금을 주도록 했습니다. 노벨상은 물리, 화학, 의학, 문학, 그리고 평화의 다섯 분야에 주어졌는데, 이들은 모두 노벨이 생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였습니다. 그 중 물리와 화학은 노벨 자신의 직업과 깊은 연관이 있었고 문학은 평소 노벨의 문학에 대한 조예를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평화상은 그의 이상주의와 '무기를 버려라'라는 책의 저자인 오스트리아의 여성평화운동가 베르타 폰 슈트너(Berta von Suttner, 1843-1914)와의 우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발명가이자 기술자였던 노벨은 과학상 수상 대상자는 반드시 '발명이나 발견'을 통해 '실질적인 인류 복지'에 기여한 자여야한다고 명시하였는데, 그 당시 학문의 성격상 이론 위주인 수학을 실용성 있는 분야가 아닌 것으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물리 분야만 보더라도 이론보다는 실험 분야에서 휠씬 많은 수상자를 배출해 왔습니다. |
2014년 7월 21일 월요일
노벨상과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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