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통합 후 교육과정 연구안
과학과목 필수 교과시간 크게 줄어
창조경제는 물론 국가미래 흔들것"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면서 50여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로 급성장했다. 이는 1960년대에 시작된 ‘과학입국, 기술자립’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근면하게 땀흘려 일한 국민 덕분이었다. 현 정부도 선진국 진입을 위한 마지막 도약을 위해 ‘창조경제’를 내세웠고, 국민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에 접목해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산업,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보자고 하고 있다.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다. 과학기술이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며, 국부를 창출해낸다. 과학기술에서 앞서 나가지 못하면 절대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없다. 이런 과학기술 중심 전략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창의적 인재교육이다. 미국은 10여년 전부터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영국은 학생들의 학력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국어·수학·과학 과목만을 평가한다. 전 국민의 과학적 소양은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한 역량이다.
교육부는 최근 고등학교 교육에서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에 대한 소양을 키워주기 위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구시대적인 문·이과 구분은 폐기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지만, 교육부 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이하 연구위원회)의 통합형 교육과정 연구안이 과학교육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돼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교육과정 개정 때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과목의 필수교육시간은 각각 15단위(1단위는 학기당 17시간)이고, 체육·예술은 각각 10단위였다. 연구위원회의 연구안을 보면 국어·영어·수학은 각각 12.25단위, 사회는 16단위(역사 포함), 과학·체육·예술은 각각 10단위다. 과학과목의 교육 비중은 2009년에는 15.1%였으나 개정안의 비중은 10.8%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의 4과목으로 구성되는 만큼, 과목당 필수 교과시간은 2.5단위에 불과하며, 이대로라면 최소한의 과학교육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현상은 2014년도 수능수험생 중에서 자연계열 선택자들이 치르는 ‘과학탐구’ 응시자는 38.9%에 그쳤고, 특히 기초 자연과학인 ‘물리 I’과 ‘물리 II'의 경우 응시자가 각각 8.7%, 0.9%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공계 전공 희망자들이 문과계열에 비해 크게 적은데, 그나마 이공학의 핵심 과목인 물리학을 모르고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에서의 자연과학, 공학 등의 교육이 부실해지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즉, 고등학생의 60% 이상이 과학을 거의 듣지 않고 졸업하고, 과학이 인기가 없다보니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과학교사가 설 자리가 없고, 과학교육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통합교육 연구안을 내놓은 연구위원회의 구성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위원 11명 전원이 교육학 전공자이며, 문과 성향 인사들이다. 이들은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학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좋은 교육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정하는 자리라면 과학계와 산업계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청소년의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다. 청소년의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은 창조적 인재육성의 필수사항이며, 창조경제의 성패,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게 과학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통합형 교과과정을 개편해야 할 것이다.
박성현 <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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