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어렵기만 한 수학
우리나라에선 ‘수포자(수학 포기자)’란 말이 널리 쓰일 정도로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다.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 괴로워하기까지 할 정도. 대학 입시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수학 공부를 하지만, 왜 배우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학 성적은 좋다. 2012년, 65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비교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들의 수학 과목 성취도는 OECD 국가 중 1위였지만 흥미도는 28위였다. 교육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3월 제2차 수학교육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학습량을 줄이고 수업 중 계산기, 엑셀 등 공학도구를 활용하며 과정 중심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계산기 사용’이 논란이 됐다.
전면 도입 No!교육부는 새 수학 교육과정에서 통계를 강화하자는 맥락에서 계산기 활용 방안이 거론됐는데 오해가 생겼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이 따분하게 여기는 수학을 실생활과 연관된 내용을 중심으로 바꿔보려는 의도였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통계’다. 학교에서 통계를 적극적으로 교육할 수 없는 이유는 계산 때문이다. 데이터의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평균값, 분산 등을 계산하는 데 시간을 다 허비하고 만다. 계산기, 엑셀 등을 활용해 제대로 된 통계 교육을 시키자는 의미였는데, 평소 수학시간에 모든 계산을 계산기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졌다고. 이에 따라 사칙연산을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업에서는 계산기 사용이 제한될 예정이다.
계산기 도입 이모저모
계산기 사용 문제를 두고 여전히 교육 현장과 학계에서 논쟁 중이다. 계산하는 법을 다루는 단원에서는 당연히 계산기를 쓰면 안 되겠지만, 활용을 배우는 경우 계산하다가 정작 배워야 할 것을 놓칠 수 있으니 도구를 쓰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초등학교 수준에서는 기초적인 계산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지만, 단계적으로 계산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YES 계산보다는 과정이 중요
단순 계산으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계산 능력을 충분히 익혔다는 전제하에서 수학시간에 계산기를 활용하면 폭넓은 내용을 다룰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계산기 사용이 필요하다는 것. 원기둥의 부피를 구할 경우 원주율을 곱하다가 시간이 흘러가버릴 수 있는데, 이때 차라리 계산기를 사용해 계산 시간을 줄이고 원주율이 무엇인지를 더 자세히 배우는 것이 낫다고 본다.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뒤 이를 문제에 적용해 풀이할 수 있게 되면 단순한 계산에서 해방돼 수학적 사고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NO 기초 능력 저하 우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계산기를 사용하는 것이 버릇이 되면 계산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직접 계산해봐야지만 사고의 폭과 문제 해결력이 길러진다는 것. 요즘 아이들은 기계에 익숙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은데, 수학에서마저 계산기에 의존한다면 사고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본다. 하위권 학생들은 기본 연산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산기를 쓰다 보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문제를 풀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각종 시험에서 계산기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 한 수학시간에만 계산기를 쓰도록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현장의 목소리계산기로 풍부한 데이터 다룰 수 있어 수업에서 계산기는 도입해야 합니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에서 계산기를 쓰지 않으면 다룰 수 있는 문제가 매우 제한됩니다. 계산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실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고, 가상의 수치를 가지고 문제 상황을 제시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수학이 실제 세상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시험입니다. 시험시간에 계산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계산기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시험문제를 못 풀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험시간에도 사용한다는 결정을 한 다음에 수업에 계산기를 본격적으로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이 경우 공평성을 위해 학교에서 계산기를 대량으로 구입해 모든 학생이 같은 기종의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계산기 도입을 통해 더 풍부하고 실제적인 데이터를 수업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영준(누원고등학교 수학 교사)
사고를 위한 도구로서 활용해야 계산기 사용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을 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수학 교육의 변화를 위한 정책이 나올 때마다 계산기 사용 문제가 마치 새로운 수학 교육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상황도 안타깝습니다. 단지 빠른 시간 안에 실수하지 않고 계산한 뒤 나온 결과만을 평가하는 현재의 수학 교육에서 계산기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사고의 과정을 배우는 데 수학 교육의 초점을 맞춘다면 계산기는 훨씬 더 많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발견의 도구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PC를 이용할 수 있고 여기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앱이 있어 단지 계산기에 국한해서 그것을 사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의는 시대착오적이라 생각합니다. 계산기를 사용하지 않고 하는 수학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수학도 있으며, 결과를 계산해서 답을 내는 도구가 아닌 수학적 원리를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도구로 생각한다면 수학 교육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김연주(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수학 교사)
전면 도입은 반대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사용 방안에 대해선 제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계산기나 공학 도구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입니다.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 해결력 혹은 창의성 개발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계산기를 사용함으로써 빅 데이터나 실제 데이터를 처리해볼 수 있어서 실생활 문제의 접근이 용이해집니다. 다만 암산력을 키우는 초등 1, 2학년에서는 규칙성을 찾는 것과 같은 주제에 선별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무엇보다 교사가 도구 사용의 장단점을 인지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공학 도구에 대한 교사 교육이 선행돼야할 것입니다.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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