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8일 일요일

벌레에게도, 찬란하게 빛나는 부분이 있다

보석이 된 벌레, 비단벌레


 이 사진은 미국의 사진작가 찰스 크렙스가 부쿼티 비단벌레의 눈 주위를 450배 확대해 찍은 것이다.
Nikon Small World 제공
붉은색에서 시작해 황금색을 거쳐 보라색으로 마무리되는 무지갯빛 광채가 눈을 어지럽힌다. 어느 보석(寶石) 세공사가 이렇게 멋진 장신구를 만들어냈을까. 금속성 광택으로 빛나지만 사실 사진의 주인공은 살아있다. 바로 '크리소크로아 부쿼티(Chrysochroa buqueti)'란 학명(學名)의 비단벌레다. 지난해 니콘의 현미경 사진대회 '스몰 월드(Small World)'에서 수상한 이 사진은 미국의 사진작가 찰스 크렙스가 부쿼티 비단벌레의 눈 주위를 450배 확대해 찍은 것이다.

 동남아시아에 사는 ‘크리소크로아 부쿼티(Chrysochroa buqueti)’란 학명의 비단벌레.
동남아시아에 사는 ‘크리소크로아 부쿼티(Chrysochroa buqueti)’란 학명의 비단벌레. 위 사진은 부쿼티 비단벌레의 눈 주위(화살표)를 450배 확대한 모습이다.
'살아있는 보석' 비단벌레는 전 세계에 1만5000여종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87종이 있다. 부쿼티 비단벌레는 동남아시아에 산다. 2012년 농촌진흥청은 한국과 일본, 동남아에 사는 비단벌레의 DNA를 분석해 '한국 비단벌레(Chrysochroa coreana)' 종을 찾았다. 한국 비단벌레는 초록색이 섞인 황금빛을 띤다. 비단벌레의 화려한 색은 짝짓기용이다. 해마다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벚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같은 오래된 활엽수에서 화려한 빛으로 짝을 유인하는 비단벌레를 볼 수 있다. 전남 해남 두륜산과 완도, 전북 정읍 내장산, 고창 선운산, 부안 변산반도 등에서 집단 서식지가 발견됐다.

한국 고유의 비단벌레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신라 유물에서 비롯됐다. 1973년 경주 황남대총에서 비단벌레로 장식된 금동 말안장 가리개, 발걸이, 허리띠꾸미개 등의 유물이 발굴됐다. 복원 작업을 거치자 황금빛과 초록색이 섞인 한국 비단벌레의 영롱한 빛이 살아났다. 어떻게 비단벌레는 1600년 동안 아름다운 빛을 그대로 간직했을까.

비단벌레의 껍질에는 무지갯빛을 내는 색소(色素)가 없다. 대신 빛을 반사하는 미세 결정 구조들이 촘촘히 나있다. 바로 '광결정(光結晶)'이다. 공작의 화려한 깃털, 모포나비의 푸른색 날개, 보석 오팔의 영롱한 색도 다 광결정 덕분이다. 우리 눈에 색이 보이는 것은 물체에서 그 색에 해당하는 파장의 빛이 반사되기 때문이다. 광결정은 특정 파장의 빛을 반사하고 나머지는 그냥 통과시킨다. 반면 색소는 특정 빛을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해 열로 소멸시킨다. 색이 바래는 것은 이처럼 색소가 빛 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광결정은 빛을 흡수하지 않으므로 세월이 흘러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광결정을 모방해 다양한 곳에 활용하려고 연구하고 있다. 광결정으로 더 많은 빛을 태양전지에 보내면 발전(發電)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광결정으로 빛을 한 방향으로 통과시키면 레이저를 만들 수 있다. 빛은 전자보다 정보 처리의 양과 속도에서 월등하다. 광결정으로 빛이 오가는 길을 칩 위에 만들 수 있으면 지금의 컴퓨터보다 더 빠른 광(光)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지난해 하버드대와 전자부품연구원, KAIST 공동 연구진은 광결정으로 색이 바래지 않는 물감을 개발했다. 서울대 권성훈 교수는 광결정 잉크로 지폐에 위조 방지용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고안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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