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영재'의 시대다. 지난 2000년 영재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본격 도입된 영재 교육은 최근 명문대로 향하는 '엘리트 코스'의 핵심으로 추앙받고 있다.
4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영재교육을 받는 학생 수는 전체 학생의 약 1.88%다. 전국 영재학교는 25개, 교육청 영재교육원 269개, 대학부설 교육원 66개, 초·중·고 영재 학급은 2651개에 달한다.
언어, 외국어(글로벌), 수학, 컴퓨터, 발명, 예술, 운동, 소프트웨어, 정보보호영재부터 인성영재까지 그 분야도 다양하다.
■너도나도 영재학교·학급 가자
영재교육에 대한 관심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지만 사실 그 개념은 모호하다. 타고나는 것인지, 길러지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여전히 분분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루이스 매디슨 터먼은 영재를 '아이큐 135 이상의 지능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창의성과 지적 배경 등이 더해졌다. 우리나라 영재교육진흥법에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자'로 영재를 뜻매김했다.
그렇다면 왜 영재교육이 '사교육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일까. 교육계 일각에서는 만연한 학벌주의로 '대입이 인생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영재교육이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른바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명문대로 가는 통로로 인식되면서 영재로 키워준다는 사설학원들이 판을 치고, 영재학교와 영재학급에 들어가기 위한 선행교육이 영유아까지 내려왔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실제로 문화센터 등의 영유아 영재교실은 가장 빨리 마감되는 인기과목 중 하나이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운영되는 전국 초·중·고 영재학급에 들어가려는 경쟁 열기는 매년 더해지고 있다.
2015학년도 영재고 입학 평균 경쟁률은 18.41대 1로 전년보다 치열했다. 대전과학고는 90명 모집에 2216명이 지원해 24.62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고, 대구 과학고도 90명 모집에 2019명이 지원해 22.43대 1을 기록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21.42대1, 경기과학고 20.77대 1,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19.11대 1, 서울과학고 11.93대 1, 광주과학고 9.03대 1로 영재고 대부분 100여명 모집에 수천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문제는 역시 선행학습이다. 영재학급·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행교육이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상진 부소장에 따르면 최근 초등 3학년 영재학급에 들어가려면 7~8년이 앞선 고 1, 2학년 수준의 선행학습이 이뤄져야 한다. 필수 관문인 수학·과학 지필고사가 올림피아드 문제와 유사하거나 고교 수준의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행교육을 막기 위해 정부는 교사관찰추천제를 확대 중이지만 신뢰도·타당성 시비를 우려한 일선 학교나 학부모들이 반기지 않고 있다. 안 부소장은 "영재를 판별할 명확한 검사가 없다 보니 창의성·영재성을 평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통 5~7년 앞선 선행문제를 출제한다"며 "사교육 없이는 탈락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결국 이를 위한 선행교육이 초·중학교뿐만 아니라 영유아로까지 확산됐다"고 비판했다.
■높아지는 영재고 의대 진학률
영재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는 영재교육의 연결성이다. 현재 KAIST 등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는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위한 학과나 학부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영재고 졸업생들의 비전공 진학도 늘고 있다. 의·약대 진학이 대표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영재학교의 의·약대 진학률은 과학고보다 높았다. 지난 5년간 영재학교의 진학률은 이공계가 압도적(92%)으로 많았지만 의·약계 진학률도 7.7%나 됐다. 영재고 중에서도 의·약계열 진학률이 가장 높은 서울과학고는 2013년 졸업생 120명 중 27명, 2014년 졸업생 122명 중 18명이 의·약대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 5년간 서울과학고는 10명 중 2명(17.6%)이 의·약대로 진학하고 있었다.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만 봐도 영재고인 서울과기고, 경기과기고는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3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세종과고, 대구과고, 한국영재고 등도 10위권 내 포진하고 있다. 안 부소장은 "현재 영재고에서 운영 중인 교과과정도 창의성보다는 명문대 입시를 위한 학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대학 이공계열로 진학을 해도 영재성을 살리는 학습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 연결성이 없다는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