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8일 일요일

욕하는 아이들, 욕보는 부모들

욕만큼 배우기 쉽고 전염성 강한 언어도 없다.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습득하고 일상에서 응용·발전시킨다. 사춘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아이들의 욕을 또래 문화나 반항쯤으로 해석하고 외면으로 대응하고 있다. 욕하는 우리 아이, 정말 괜찮은 걸까?


등하교로 분주한 학교 앞에서는 거친 욕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말의 시작부터 끝까지 욕으로 가득해 듣고 있자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욕하는 아이 때문에 고민이라는 부모들의 하소연이 십분 이해된다. 국립국어원에서 실시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97%, 중·고등학생의 99%가 비속어를 사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이나 통신언어에 비해 일상에서 욕설 등 공격적인 언어 표현을 더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들은 주로 ‘상대방이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할 때’ 공격적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고 응답했다. 대화 상황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공격적이거나 폭력적 언어로 대응하는 것이다. 욕은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주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다.

사회를 형성했던 순간부터 만들어졌다고 추측될 만큼 인간 생활사와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 게다가 사춘기 시절의 욕설은 어느 시대에나 반복되던 일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하는 욕은 감정을 푸는 개인적인 목적을 넘어섰다. 일부 일탈 학생들이 과시를 위해 욕설을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평범한 학생들까지 모두 욕을 하는 시대가 됐다. 한 중학교 교사는 “아이들에게 욕은 일상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욕이 특수성을 잃고 접미사와 접두사처럼 문장에 붙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말에 욕을 섞어서 썼다면, 이제는 욕에 말을 섞어서 쓰고 있는 셈.

물론 사춘기 아이들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또래 집단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쓰는 말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홀로 낙오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욕에 대한 거부감보다 크다. 또 약자로 판단되면 따돌림을 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약자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욕설을 한다. “욕을 하면 강해 보이고, 강해 보이면 나쁜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라는 아이들의 토로는 우리 교실의 슬픈 단면이기도 하다.

금(禁)욕을 해야 하는 이유
우리 사회는 욕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단순한 버릇이나 아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욕은 감정과 의도를 포함한 일종의 폭력이다. 남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입히려는 폭력성이 욕을 매개 삼아 집단적으로 사용된다. 악성 댓글을 다는 사이버 폭력이 일상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교폭력도 언어폭력에서 시작한다. 욕은 단순히 불쾌한 단어만 뱉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방에게 강렬하게 전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단어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일으키고 욕의 대상자는 자존감의 저하까지 불러올 수 있는 것이 욕이다. 언어폭력의 피해자는 물론 언어폭력을 목격하거나 그 장면을 듣기만 해도 상처를 주고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영국 런던대 존드웨일 박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욕설은 일반 단어에 비해 4배 이상 오래 기억에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습관처럼 욕을 쓰다 보면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가치관과 인식이 형성되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일상의 욕설은 인성과 정서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사회를 황폐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큰 시각에서 보면 일상 속에 파고든 욕설이 크고 작은 범죄의 잠재적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욕설이 집단문화로 고정돼버렸다. 욕이 친밀감이나 유대감을 느끼는 수단이 돼 있다면 혼내거나 쓰지 못하게 금지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단순히 욕을 금지하면 아이들은 부정적 감정이 들거나 그것을 표현해야 할 때 짜증이나 신경질, 화로 대신할 수 있다. 사춘기를 겪는 남자아이들은 강한 내부의 에너지를 푸는 대안으로 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면박만 주면 조절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럴 때는 아이의 감정이 소진됐을 때 “아까 너무 심한 것 같았다. 그런 말은 옆에서 듣는 사람도 힘들다”라고 일깨워주는 것이 좋다. 한 교육기관에서는 습관적으로 욕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욕이 가진 본래 뜻을 가르쳤더니 욕설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저학년 때일수록 이런 효과가 크다고 한다.

욕은 듣는 사람의 뇌도 마비시키지만, 욕을 하는 사람의 뇌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 평소 욕설을 자주 하는 학생일수록 충동성과 공격성이 높고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워싱턴대 엘마 게이츠 교수팀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때, 혹은 욕을 할 때 배출되는 침전물에 해로운 성분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욕설이 뇌 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늘어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거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욕설을 심하게 쓰는 아이라면 욕설 자체보다 근본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부모나 친구 사이의 문제가 욕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집 안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쓰지 않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분노 조절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상담센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청소년들의 폭력적인 언행은 기성세대의 폭력적인 문화와 경쟁적인 사회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다. 욕설을 막기 위해서는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으로 부족하다. 아이들의 금(禁)욕은 폭력적인 구조가 개선될 때 실현될 것이란 현실이 그 방증이 아닐까.

Mini Interview“욕은 가장 소심한 분노의 표현입니다”황지현(「욕하는 내 아이가 위험하다」 저자·가정의학과 전문의)

아이들이 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표현이 미숙한 아이들이 ‘내가 지금 화가 나 있는 이유를 살펴봐달라’라며 말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화가 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욕을 하거나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방식으로 화를 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죠. 욕을 사용하는 부모 밑에선 욕하는 자녀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소년의 분노 표출에 관심을 갖고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이처럼 욕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성장한다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거나 더 큰 사건·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욕하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욕을 하는 행위는 보다 극단적인 분노 표출로 악화되는 과도기로 분석됩니다. 신체적 폭력, 인터넷 중독, 왕따 등 보다 진화된 단계로 접어들기 직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욕만 하는 상태라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나쁜 말을 쓰는 버릇을 고치겠다는 것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욕하는 행동 속에 감추어진 아이들의 속내와 원인을 찾아 근본적으로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욕이 위험한 이유가 있나요? 어린아이들이 욕을 하는 것은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이럴 때는 아이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청소년들의 욕은 상대를 제압하거나 상처를 주겠다는 2차적 목적을 갖습니다. 욕을 강압적으로 못하게 만들어도 공격성은 그대로 유지되죠. 방치하면 강화된 폭력이나 신체적 폭력, 왕따 등으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폭력 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치료할 때처럼 가정, 학교, 또래 친구 등의 관계 형성을 면밀히 살펴보고 점검하는 단계부터 시작돼야 건강한 아이로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가 욕하는 상황을 목격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아이들에게 욕을 가르치고 방치하는 것은 모두 어른들입니다. 처음 욕을 사용하는 아이는 단호하게 혼을 내고, 동시에 혹시 아이가 자신을 따라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욕을 하면 일반적으로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어떻게 욕을 할 수 있어?” 등의 반응을 보이는데, 되도록 “무슨 화나는 일이 있었니?”라고 화난 이유를 물어보는 대화가 우선돼야 합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나서 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좋습니다.


Profile 황지현 전문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이며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의 엄마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가족과 사회문제로 결부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심리학 공부를 병행했다. 고리타분하지만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라는 속담처럼 말이 가진 힘을 믿고 있다.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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