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예술·과학 아카데미’(The Israel Arts and Science Academy·IASA). 현지 교육학자가 1990년 설립한 고등학교 과정의 영재교육기관이다. 이곳 음악실에서 한 남학생이 직접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한국 방문단 앞에서다. 연주를 마친 학생에게 졸업 후 계획을 물었다. 작곡 역량을 끌어올리려고 유명한 기관으로 진학하겠다는 식과는 전혀 다른 답이 돌아왔다. 그는 “1년 동안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무료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이런 태도에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 학교의 교육법이 영향을 미쳤다. IASA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스라엘 내 아랍계 학생이나 이주민 등을 다양하게 선발한다. 종교가 다른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어울린다. 학생들은 매주 한 차례 상담교사와 이스라엘의 사회 문제나 시사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매주 화요일엔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지역사회에 찾아가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저소득층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노인이나 장애인을 돕는다.
영재를 골라내는 과정에도 같은 철학이 녹아 있다. 1단계로 어디에 관심이 많고 여가 시간엔 무엇을 하는지 등을 묻는 심리측정평가를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낮은 점수를 받기 때문에 비중이 높지 않다고 한다. 2단계에선 교사들이 한 시간가량 학생을 면접하며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지 등을 살핀다. 이 학교 교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3단계다. 모든 지원자가 3일간 기숙사에 머물며 실제 학교 생활을 체험하는데 학교 측은 사회성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영재 교육의 역사가 40여 년에 달하는 이스라엘은 재능뿐 아니라 리더십과 사회적 책임감, 민주적 사고를 갖추게 하는 것을 인재 양성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를 위해 수업도 교사가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철저히 스스로 실험 등을 통해 깨닫도록 기다려준다. 이스라엘에선 고교 3년을 마치고 1년간 봉사활동을 하는 ‘커뮤니티 서비스’에 나서는 학생들이 있는데, IASA는 졸업자의 30%가 참여한다. 일반 고교는 해당 비율이 2% 수준이다.
한국에도 과학고 등 7개 고교가 영재학교로 지정돼 있다. 입학 경쟁이 치열해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영재교육원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이 횡행한다. 중학교 때부턴 본격적으로 고난이도 문제 풀이와 선행학습에 나선다. 이른바 ‘영재’들은 과학고를 나와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인구 1만 명당 과학자 수가 140명에 달하고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만 노벨상 수상자가 7명 배출된 이스라엘에선 우리보다 느슨한 기준으로 ‘우수 학생’을 골라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인재로 길러내고 있다. 황 부총리는 한국에 IASA의 교육 모델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리더십과 사회적 책임이 절실한 국내에서 ‘우리는 어떤 인재를 키우고 있는가’라는 고민이 시작됐으면 한다.
중앙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