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7일 화요일

예일대생의 별난 학교 사랑

예일대 엄친딸, 이래나의 리얼 다이어리 ②
대학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재미있는 풍경이 있다. 다들 자기가 ‘대학생’이라는 것과 ‘예일대’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 모습이다. 물론 하버드도 스탠포드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예일대에 합격하고 아빠가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동대문에 달려가서 예일대 로고가 박힌 맨투맨 티셔츠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평소 내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는 분이라 닮은 에피소드가 많았기에 ‘역시 우리 아빠는 못 말려’라고 생각했던 기분 좋은 기억이다.

입학식을 위해 가족이 함께 학교에 갔을 때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들른 곳도 기념품 가게였다. 동대문에서 산 예일대 티셔츠는 하도 자주 입어 닳아버려서 새 옷이 필요했던 탓이다.

예일대 캠퍼스 안에는 기념품 가게가 두 곳 있다. 별생각 없이 들렀다가 우리 가족은 깜짝 놀랐다. 우리가 사려고 했던 후드티셔츠는 기본이고 양말, 속옷, 휴대폰 케이스, 문구류 등등 별별 아이템에 예일 로고가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또 놀란 것은 그곳을 채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었다. 입학시즌이라서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관광객까지 합세해 신들린 것처럼 쇼핑하는 모습이 놀라웠고 또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데 한 학기 동안 학교생활을 하고 보니, 그때의 풍경이 비단 입학시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늘 인산인해이고,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날짜를 미리 알아두었다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손에 넣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나는 좀 더 발이 빨라야만 한다. 체구가 작은 내 사이즈에 맞는 옷은 수량이 많지않아 구하려면 미리 물건이 들어오는 날을 체크해두어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 학교뿐 아니라 아이비리그의 학생들은 모두 자기 학교 로고가 박힌 옷을 즐겨 입는다. 공부할 때 입기 편하고 저렴한 데다 디자인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즐겨 입는다. 학교 옷을 입고 있으면 어쩐지 기분이 좋고,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절로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모르는 사이라도 예일이라는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는 걸 옷이나 각종 아이템을 통해 확인하면 기분이 좋다. 한국에서는 대학 이름이 적힌 옷이나 아이템은 구식이라고 치부되고 인기도 없는데, 이곳에서는 왜 이렇게 난리가 나는지 모르겠다. 미국과 한국의 재미있는 차이인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이곳의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애정이 정말 각별하다.



유난한 스쿨 스피릿!
흔히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스쿨 스피릿(School Spirit)이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 펜싱부 소속으로 경기를 종종 치르는 나는 그걸 특히 직접적으로 느낀다. 지난주에 경기가 있었는데, 내 개인전이었지만 학교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게임이라서 그런지 응원단이 굉장히 많았다. 게임이 있으니 응원하러 와달라고 따로 말하지도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동문들의 방문에 힘이 났다. 같은 예일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응원해주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뭉클했다.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는 느낌이 좋았다. 응원 덕분에 게임은 내 승리로 끝났다. ^^

펜싱뿐 아니라 풋볼, 미식축구, 하키 등 학교별로 대항이 붙으면 학교에 대한 애정도가 수직상승한다. 경기를 하는 사람이나 응원하는 사람이나 모두 에너지가 대단하다. 특히 라이벌 관계인 하버드와 대결하게 되면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들까지, 심지어 동네 주민들까지 모두가 한편이 되어서 응원한다. 분위기가 과열되기라도 하면 ‘이 사람들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사람이 목이 터져라 응원한다.

무엇이 모두를 학교에 열광하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입학하기 전에 모교 사랑이 뭔지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입학지원을 하면 인터뷰가 진행되는데, 그 장소가 캠퍼스가 아닌 지원자가 거주하는 지역이다. 인터뷰 면접관은 예일대 출신의 동문. 나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예일대 선배님을 만나서 면접을 치렀다.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배님의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이미 사회적으로 입지를 굳힌 선배님은 굉장히 바쁜 분이셨는데, 예일에 대한 사명감만으로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해 인터뷰를 해준다는 것이 내 눈에는 대단해 보였다. 학교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입시 인터뷰를 나누면서, 나도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면 이렇게 무엇이든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취업보다 중요하고 좋은 학교생활

2학기에 접어드니 학교생활이 더 재미있어졌다. 1학기 때는 친구들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낯설고 힘들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생각해도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고 친구들과의 커뮤니티도 많아졌다. 학교생활이 재미있고 안정적이니 예일대생이라는 자부심과 소속감이 자동으로 커지는 것 같다. 학문을 대하는 태도, 지적인 욕구도 높아지고 공부를 하는 것이 재미있다.

3학년 이상인 펜싱팀 언니 오빠들은 각종 기업에서 면접을 보자는 스카우트 제안을 많이 받는다. 미국의 회사들은 운동하는 학생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운동을 잘하는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체력, 인성의 밑바탕이 제대로 깔려 있는 데다 성적까지 좋은 경우도 많아서다. 실제로 우리 펜싱팀 팀원들은 성적이 다 좋다. 운동을 하는 근성과 공부를 하는 근성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선수이다 보니 실력이 좋은 경우에는 당연히 프로팀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오기도 한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런 각종 제안들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이 대부분 ‘노’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펜싱팀 선배 중 한 명이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아이비리그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생활이다.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학교의 다양한 커리큘럼을 놓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다는 인식이 모두에게 깔려 있다. 정규 교과과정을 끝까지 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3학년이나 4학년이 되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학생의 능력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곳은 그야말로 정반대의 캠퍼스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학교생활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이다. 학교가 교육이라는 기본에 충실하고 학생들 역시 진리 탐구에 기를 쓰는 분위기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기에 형성된 문화인 것 같다.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의 본기능이 이런 것이 아닐까. 



모교 사랑에서 출발한 기부문화

지금 예일의 의학대학 건물은 공사 중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졸업생이 학교에 엄청난 금액을 기부했는데, 그 기부 조건이 “의대에 학생을 더 받아달라”는 요구였다고 한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건물이 많다. 대부분 기부한 사람의 이름이다. 예일에는 이런 기부자들이 참 많다.

알려진 대로 미국은 도네이션문화가 오픈되어 있다. 졸업생이든 재학생이든 그들의 가족이든,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명분으로 기부를 한다. 한국의 기부와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부자들의 돈 자랑이 아닌 명분이 있는 기부라는 것이다. 미국에는 “100억을 드리겠습니다. 알아서 좋은 데 써주십시오”라는 식의 기부가 없다. 구체적인 명분이 반드시 따라붙는다.

아이비리그에는 장학금 제도가 많다. 전교생의 절반 이상이 장학금 수혜자다. 성적우수자뿐 아니라 명분이 확실한 경우, 예를 들어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망했거나 운동 특기생인 데다 총명한데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 등이면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자국민(미국인)에 해당되는 이야기라 나에게 해당사항은 없지만, 좋은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부터 미국 대학들이 ‘컬리지 버블(College Bubble)’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비싼 등록금이 원인이 되어, 앞으로 많은 대학이 없어지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의 단어다. 실제로 아이비리그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시대라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학교마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건강한 기부문화와 활발한 장학금 제도가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부를 많이 하는 이유는 부자인 졸업생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베이스가 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지금의 나처럼,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했다면 졸업하고 수십 년이 흘러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선배님들의 가슴 속에는 학교에 대한 추억과 아련한 애정이 남아 있다. 그들을 보면 나는 어떤 졸업생이 될지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학교에서 보낸 이메일을 수시로 받아본다고 한다. 학교행사부터 최근의 이슈 등을 실시간으로 알려줘서 자기 자식이 예일대의 일원이 되었다는 소속감이 생긴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메일에는 기부와 관련된 내용도 들어 있다고 하는데, 기부를 할 수 있는 다양한 금액과 방법을 제시하며 끊임없이 학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나는 이런 좋은 기부문화를 보면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소신 있게 기부하고 사는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다.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는데,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진정성 있는 기부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기부할 대상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기부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래나는… 1994년생. 리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 키스 스쿨(Keith School), 스위스 레잔 아메리칸 스쿨(Leysin Ameriacn School), 한국지구촌고등학교(GCFS)를 졸업했다. 서울시장배 동호인 펜싱대회 1위, NAC(North American Cup) 32강에 드는 수준급 펜싱선수이기도 하다. 사랑의 구보대회, 여성탈북자를 위한 모금운동 등 봉사와 기부에 관심이 많다. 현재 예일대에 재학 중이며, 경제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기획 임언영 기자  사진제공 이래나  

여성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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