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엄친딸, 이래나의 리얼 다이어리 ③ |
수강신청 기간, 수업 관련 정보가 담긴 우리의 바이블 블루북(blue book)을 들여다보면 산해진미 요리를 눈앞에 둔 것처럼 입이 행복하게 쩍 벌어진다. 한 학기 동안 날 가슴 설레게 할, 무려 2천 개가 넘는 수업이 눈앞에 있어서다. |
학기가 시작되는 첫 일주일은 바쁘고 설레고, 또 행복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다. 2천 개가 넘는 수업 중에서 수강과목을 정하는 일은 복잡하지만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다. 이 중 내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은 모두 4과목. 모든 학생들이 이왕이면 더 재미있고 더 유익한, 그리고 학점도 잘 받을 수 있는 수업을 듣기 위해서 촉각을 곤두세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인기가 있고 입소문이 난 곳일수록 사람이 몰리는 법.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2학기에 접어든 나는 한 번의 경험으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전략이 필요해!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 두꺼운 책을 한 권씩 나눠준다. 예일대생의 성경책이라 불러도 좋을, 일명 블루북이다. 이 책에는 예일대에 개설되어 있는 모든 수업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한 학기 동안의 커리큘럼은 물론 교수에 대한 소개, 이전 학기 학생들의 수업평가 등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실려 있어서 수강신청을 할 때는 물론 학기 중 수업을 해나갈 때도 꼭 필요한 책이자, 가장 믿을 만한 존재다. 천천히 읽으면서 내가 듣고 싶은 과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물론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으려면 굉장한 인내를 필요로 하고, 또 시간도 꽤 많이 걸린다.) 자기의 소신과 촉을 믿는 것도 좋지만, 제아무리 자기 앞가림 잘하는 예일대 학생일지라도 이 수많은 과목 중에서 단 4개를 고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상대는 카운슬러다. 아카데믹 카운슬러라는 공식 명칭을 가진 이들은 학생들이 어떤 수업을 들을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들은 예일대의 어딘가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로, 우리에게 무조건 도움이 되는 존재다. 이들과 내년이나 후년의 플랜을 같이 짠다. 물론 관심사가 비슷한 친한 친구나 선배들의 조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첫 일주일은 쉽게 말해 수강신청 변경기간이다. 한 학기에 4과목을 듣는데 7과목 정도 신청을 해서 직접 수업을 들어본다. 이때는 출석점수가 반영되지 않아서 가볍게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블루북에 나온 수업 진도대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수업도 있고, 점수에 반영하는 시험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경우도 있다. 이번 학기에 들을 4과목을 최종 결정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지라 필수과목을 신청하고, 나머지는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골랐다. 약물 수업과 사람과 죽음이라는 과목을 재미있게 듣고 있다. 드러그와 마약에 관한 약물 수업의 공식 이름은 Drug Brain Behavior. 약물이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배우는 수업이다. 150명이 들을 수 있는 이 수업은 400명이 지원할 만큼 경쟁률이 대단했다. 지난 학기부터 이 수업에 관심을 가졌던 나는 꼭 듣고 싶었고, 수강에 성공하기 위해서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교수님에게 무려 다섯 통의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온 이래나라는 학생이다. 우리나라에는 마약에 관련된 학문이 전혀 없다. 법적으로도 금지되어 있지만, 그래서 더 음성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수업을 들으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논리적인 글을 써 내려갔다. 한국에서는 배울 기회가 없으니 제발 들어가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수업과 관련된 학업 플랜도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보여드렸더니 결국 기적이 일어났다. 마지막 날에 교수님이 직접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한 자리가 비어 있으니 얼른 신청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보통 공석이 생기면 고학년 위주로 우선권이 주어지는데, 수업에 대한 나의 열정을 눈여겨보신 교수님의 배려로 1학년인 내가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어려서부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으며 어떤 일이든 진실하고 간절하게 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수강신청도 진정성을 가지고 절실한 마음으로 접근하니 뜻하는 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마약부터 아프리카 역사까지, 다양한 수업 수많은 수업 중 예일대생이 좋아하는 수업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심리학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베이스가 되는 학문이다 보니 모두가 관심을 갖는 것 같다. 나는 지난 학기에 심리학 관련 과목을 들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다. 학문으로서도 재미있지만, 사람의 심리에 대한 접근을 훈련하니 실제로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비즈니스를 할 때도 사람의 심리를 베이스로 접근하는 것은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번 수강신청 기간에 가장 화제가 된 수업은 음식 수업이었다. 새로 개설된 수업인데 가장 인기가 많았다. 경쟁률이 치열했다는 말이다. 어떤 나라의 음식과 거기에 얽힌 문화, 역사를 알아보는 독특한 수업이다. 수업을 보면 얼마나 다양한 주제와 방법으로 학문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내가 수강신청에 성공한 마약 수업도 굉장히 흥미롭다. 마약의 종류와 실태부터 그것들이 어둠 속의 경로로 어떻게 운반되고 확산되어 가는지, 세상에서 일어나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현실을 배우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어린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밤새 국경을 넘어 달리면서 마약 운반책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다. 몰랐던 것을 알게 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지적인 자극을 주는 좋은 수업인 것 같다. 사람의 본능이라는 수업도 굉장히 재미있다. 철학적인 성격이 강한 강의인데, 역시 인기가 많아서 수업에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이 수업을 통해 나는 세상의 모든 이치에 답이 없다는 것을 배웠고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넓은 눈도 가지게 됐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내 눈에는 검은색이라도 다른 사람 눈에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알게 되니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르니 인정하자는 마음을 알게 됐다. 이 깨달음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준 것 같다. 수강신청을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 중 하나가 “생전 듣지 않을 과목을 꼭 들어라”다. 이렇게 재미있고 다양한 수업이 있는데, 전공 공부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역사, EDM(electronic dance music) 같은 특이한 수업을 통해 예일이 학문에 깨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일대 학생들은 전공수업을 듣겠다며 혈안이 되어 있지 않다. 학교는 그저 학생들에게 세상의 다양한 맛을 학문으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곳인 것 같다. 예일대는 다른 아이비리그 학교에 비해서 예술에 대한 역사가 깊다. 아카펠라를 제일 잘하기로 유명하다. 아트 쪽으로 많이 유명하고 다른 학교보다 특화된 것이 많다. 클래식하고 무거운 학문을 추구하는 곳이 하버드라면, 예일은 개성이 많은 학생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하버드가 정통파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팀 서포트가 대단한 우리는 월등하게 행복하다. ^^ 유일한 한국어 수업, 그리고 한국인 수많은 수업 중 한국과 관련된 수업은 딱 하나다. 한국어 수업이다. 케이팝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 대한 문화적인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진 캠퍼스 안에서 학문적 붐이 일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되는 법.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언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있어서 기분이 좋다. 예일대에 다니고 있는 한국인 학생은 모두 30명 정도 된다. 수가 굉장히 적어서 잘 뭉치는 편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인들은 마음을 터놓는 대화를 하기 때문에 우리끼리 더 잘 뭉치는 것 같다. 나도 미국인 친구가 많고 한국인 친구, 교포 친구도 많지만 마음을 터놓는 가장 친한 친구는 그래도 한국인 친구다. 기분 좋은 것은 숫자가 많지 않아도 한국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뜻하고, 여러모로 인정을 받는 훌륭한 친구가 많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는 학교 내에서 ‘한국인의 밤’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노래를 부르고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한국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행사다. 나는 뜻깊은 일에 동참하고 싶어 장기자랑으로 행사에 참가했다. 무대 위에서 노래 공연을 펼치면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항상 애국심을 강조하시던 아빠를 떠올렸다. 그룹 코리아나로 세계무대에서 활동을 많이 한 아빠는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그 시절에는 해외여행도 어려웠던, 외국인들이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때라 아빠의 얼굴과 행동이 곧 한국의 얼굴이라는 생각을 늘 하셨다고 한다. 어딜 가든지 ‘자랑스러운 한국인’ 소리를 듣기 위해서 매너를 지키고, 심지어 호텔 방 청소까지 깨끗하게 할 만큼 조국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던 분이시다. 아빠는 드럼에 태극기를 달고 연주를 하실 정도로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하신데, 이번에 ‘한국인의 밤’ 행사를 진행하면서 아빠의 그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나라에 대한 무조건적인 마음은 나뿐 아니라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미국에서 자란 교포 친구들을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상승하는 만큼 그들의 자부심도 커지는 것 같다. 흔히 이스라엘 교육에 대해서 대단하다고들 하는데, 한국인 엄마들 사이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교포 친구들은 내가 아빠에게 들었듯 ‘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엄마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항상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자란 그들, 그리고 또다른 예일대 학생들 네명이 학교에서 마련한 ‘예일 코리아’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상태다.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봄방학을 맞아 서울의 내 방 안인데, 내일은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친구들을 위해 가이드를 할 예정이다. 봄방학이라는 달콤한 시간에 데이트를 포기하고 본인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 친구들이 멋있어 보이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하나 더, 학생들에게 투자를 해주는 학교 프로그램도 훌륭한 것 같다. 등록금이 왜 비싼가 했는데, 이렇게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항상 연구하는 것은 높이 살 만한 부분인 것 같다. 이번 ‘예일 코리아’에 비용 전부를 학교에서 제공한다. 이제 2학기째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2천 개가 넘는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살아 있는 학문을 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래나는… 1994년생. 리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 키스 스쿨 (Keith School), 스위스 레잔 아메리칸 스쿨(Leysin Ameriacn School), 한국지구촌고등학교(GCFS)를 졸업했다. 서울시장배 동호인 펜싱대회 1위, NAC(North American Cup) 32강에 드는 수준급 펜싱선수이기도 하다. 사랑의 구보대회, 여성탈북자를 위한 모금운동 등 기부문화에 관심이 많다. 현재 예일대에 재학 중이며, 경제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기자 글 이래나 사진제공 이보영, 셔터스톡 여성조선 |
2015년 7월 7일 화요일
산해진미보다 맛있고 매력적인 예일대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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