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3일 토요일

시장은 정의로운가…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Sandel) 교수의 紙上 특강


"富 창출 도구… 공정한지 말해주지 않아. 그래서 非시장적 가치·규범·공동善 필요"
"리먼 쇼크가 보여줬다… 시장지상주의는 이제 막장이다"

지난 2월 마이클 샌델(Sandel) 하버드대 교수에게 요청한 인터뷰 주제는 '시장(市場)과 정의(正義)'였다. 이 주제는 당시 예정돼 있던 샌델의 도쿄 강의 테마에서 빌려온 것이다. 샌델은 3월 25·26일 '글로벌리즘과 공동체'(요미우리신문 주최) '시장과 정의'(니혼게이자이신문 주최)란 테마로 강연할 예정이었다. 샌델의 강의를 인터뷰를 통해 Weekly BIZ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다.

3·11 대지진으로 샌델의 3월 도쿄 강연은 연기됐다. 일본의 테마를 차용했음에도 공교롭게 일본의 비극을 통해 일본의 대중보다 먼저 그의 강의를 단독으로 듣는 결과가 된 것이다. 인터뷰 내내 미안한 느낌이었다. 샌델은 지금 시장과 정의를 테마로 '정의란 무엇인가'(What's the right thing to do?)의 후속작을 준비 중이다. 인터뷰는 4월 6일 오전 10시 하버드대 샌델의 연구실 미팅룸에서 1시간 동안 이어졌다.

샌델은 후속작 제목으로 세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Justice and Money'(정의와 돈), 'Justice and Market'(정의와 시장), 'What Money Can't Buy'(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등이다. 그는 "무엇이 좋으냐"고 물었다. "첫 제목이 단순해서 좋다"고 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공적 토론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는 사이 공동선에 대한 인식과 책임감이 싹틀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제 '정의' 강 의도 공적 토론을 활성화하고 학생들에게 시민의식을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다른 이 의 얘기를 경청하는 법, 치열하게 논쟁하되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수업 의 목적이지요.”사진은 샌델 교수가 작년8월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4500여명의 청중 앞에서 강의하는 모습 / 김영사 제공'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 96만부가 팔렸다. 60만부가 팔린 일본에서도 샌델은 대스타다. 샌델은 당초 이번 일본 프로야구 자이언츠의 개막전 시구자(始球者)로 예정돼 있었다. 출판시장이 일본보다 작은 한국에서 결코 쉽지 않은 철학서가 그만큼 팔렸다는 사실, 작년 8월 샌델의 경희대 강연회에 4500명이 몰렸다는 사실은 주장의 당위성을 떠나 그 자체가 우리 사회에 던져진 중대한 시그널임이 틀림없다.

샌델 교수에게 일반론적인 시장과 정의의 문제 외에도 한국적 특수성을 지닌 공교육, 기름값, 중소기업·영세상인 논쟁, 카이스트 문제와 같은 현안에 대해 물었다. 그가 자신의 입장을 준 것은 이 중 영세상인과 공교육 테마였다. 저서처럼, 인터뷰도 쉬운 듯했지만 어려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장은 부를 창출하는 도구이고, 이 도구는 무엇이 공정한지 말해주지 않는다. 시장에서 우리가 성공했다고 해서 페니 한 푼까지 긁어모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시장은 그 자체로 공정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비(非)시장적 가치와 규범, 공동선(共同善)을 망각해선 안 된다. 시장지상주의가 어떤 식으로 공동체를 약화시키는지 잊어버려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공익(公益)을 쟁취하기 위한 시장의 역할을 토론하는 것이다. 시장이 어떻게 하면 제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다. 악덕을 공동선으로 만드는 시장의 도덕적 연금술(moral alchemy)을 재구축하는 일이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 삶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즉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해 말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장은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미국도 한국도 시장이 도덕적 규범이나 가족·교육·환경 같은 전통적 가치까지 파고들고 있지요. 최근 몇십년 동안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례별로 논쟁을 벌였어야 했습니다. 그런 흐름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마땅히 했어야 할 논쟁을 충분히 거치지 못하는 동안 우리는 '시장 경제(Market Economy)'에서 '시장 사회(Market Society)'로 흘러왔지요."

시장 논리와 부모의 미덕

―시장 사회란 무엇입니까.

"시장적 사고가 우리 삶을 장악해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왜곡해버리는 사회입니다."

―금방 와 닿지 않는데요. 쉬운 예를 들어주십시오.

"이스라엘의 한 탁아소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지요. 이 탁아소의 최대 고민은 부모들의 지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어요. 부모들이 종종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아이들을 데리러 왔고, 교사들은 그때까지 무작정 남아있어야 했지요. 탁아소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이런 거였어요. 지각하면 벌금을 낸다! 효과가 있었을까요?"

―부모들이 시간을 지키려고 더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각이 이전보다 늘지는 않았겠죠.

"틀렸어요. 지각은 늘어났습니다. 벌금을 도입하는 것이 생각의 기준을 바꿔놨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부모들은 지각을 하면 교사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했고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벌금제 이후, 부모들은 지각을 서비스와 연결시켰어요. 교사들이 추가 비용을 받고 더 일해주는 서비스 말입니다. 부모들은 벌금(fine)을 일종의 요금(fee)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벌금과 요금은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벌금은 도덕적 반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요금은 어떤 도덕적 판단도 적용되지 않는 '가격'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사와 부모, 아이들의 관계마저 바꿔놨지요."

―금전을 통해 부모는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탁아소와 교사들은 돈을 벌 수 있지요. 이런 공리(功利)주의적 계산법, 어쩌면 현대적 의미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셈법을 선생님은 비판하셨지요.

"그것이 과연 '최선의 삶일까' 하는 고민입니다.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를 고민하는 길이지요. 정의는 보통 사람이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개념입니다. 손길이 닿지 않는 구름 속 개념이 아닙니다."

샌델 교수는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공리주의를 집요하게 비판한다. 1명을 죽여 3명을 살린 식인(食人) 사건처럼 극단적 사례까지 동원한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방법 제시엔 인색하다. 그래서 고민하게 만든다. 그가 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이성을 일깨워 방황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샌델식 작법(作法)이다. 그래서 탁아소 사례에 적용될 '최선의 삶'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물론 그가 제시하고 싶은 답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교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아이를 제시간에 탁아소에 보내려는 부모로서의 미덕(美德),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삶이다. 그는 탁아소의 벌금제가 돈으로 공동의 가치를 맞바꾼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시장 사회'의 폐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또 다른 쉬운 사례를 들었다.

"미국 댈러스에는 학생들이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2달러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뉴욕시의 몇몇 학교들은 학생이 시험을 잘 보면 50달러를 줘 학업성취도를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좋은 목표, 좋은 의도를 위해 시장의 인센티브를 사용하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단기적으로 독서량이 늘고 성적이 좋아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론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 배움의 즐거움을 가르쳐줄 수 없지요.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단기적인 결과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장려하고자 하는 비(非)시장적 가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독서와 학습에 대한 열정과 같은 것이지요."

인권을 사고팔 수 있을까?

샌델 교수는 조금 더 큰 담론을 끌어냈다.

"1992년 노벨상 수상자인 시카고대 게리 베커(Gary Becker) 교수는 이민 문제에 대해 한 가지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5만~10만달러에 파는 것이죠.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하려는 사람들은 미국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젊음, 숙련됨, 야심만만함, 성실함 같은. 미국 사회가 주는 혜택에 안주할 사람들이 아니지요."

―지원자는 시민권을 얻어서 좋고, 미국 사회는 양질의 인력만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다는 발상이군요.

"난민 문제로 확대해 보지요. 시민권 가격처럼 박해를 피해 도망온 난민에게 5만달러를 내라고 하는 건 냉정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미국의 한 법학 교수가 시장적 해법을 내놓았지요. 국제기관이 각 국가의 부(富)를 참고해 1년에 난민 몇 명을 받을지 할당합니다. 각국은 할당량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만명을 할당받은 일본이 난민을 받아들이기 원치 않는다면 폴란드에 돈을 주고 할당량을 넘기는 것이지요. 시장 논리에선 모두가 이득입니다. 폴란드는 새로운 수입을 얻는 것이고, 일본은 난민 문제로 골치를 썩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난민들이 구조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익처럼 보이지만 사실 난민을 사고파는 행위의 윤리적 문제는 남겠지요.

"난민에 대한 시장적 접근은 난민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대접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습니다. 어떤 국가는 난민을 사회적 부담으로 여기고, 어떤 국가는 수입의 원천으로 여기지요. 시민권 역시 자동차나 토스터 같은 물건처럼 사고팔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뀝니다. 그런 논리는 '시민은 무엇인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시각까지 바꿔놓습니다. 우리 삶을 그렇게 흘러가게 놔둬도 되는 걸까요? 우리는 시장 지상주의(market triumphalism) 아래서 그 문제를 충분히 고민해 보지 않았습니다."

샌델 교수의 주장은 명쾌하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인도적 과제는 아이를 제시간에 등교시켜야 할 부모의 미덕처럼 세계가 수행해야 할 공동선이란 것이다. 시민권에 대해선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모병제의 사례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군인을 고용해 전쟁터에 나가 싸우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공평치 못한 처사라서가 아니라 (다수의 시민이 금전적 지급을 통해) 시민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례 1.탁아소가 지각하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매겼다
지각하는 부모들이 줄었을까? 천만에…
부모들은 벌금을 내고 죄책감마저 떨쳤다
돈이 부모· 아이 관계마저 왜곡해버린 것이다

사례 2.선진국· 후진국이 탄소배출권을 사고판다?
바람 피울 권리를 사고파는 것과 뭐가 다른가
환경· 인권 같은 삶의 가치가 '상품'이 될 때
그 가치는 타락하고 부패하는 것…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

그는 공동선의 개념을 탄소배출권 거래제에도 적용한다. 미국은 1997년 교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탄소배출권을 사고팔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소배출의 권리를 각 국가에 부여하고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나라(공업선진국)가 적게 하는 나라의 배출권을 사들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당시 샌델 교수는 이를 비판하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해 학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제 의견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제가 시장의 미덕, 경제의 합리성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 (경제학) 은사는 '당신이 뭘 말하는지 이해한다'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느냐'고 했어요. '누가 자네에게 경제학을 가르쳤는지 물어보면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이 건넨 돈으로 후발국가는 열대림을 복구하거나 노후 공장들을 현대화해 탄소배출의 총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매우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를 사는 것은 돈을 내고 쓰레기를 버리도록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부자 나라들이 돈을 주고 의무를 저버리면, 환경 문제에 대한 세계적 협력과 희생정신은 요원해집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비용·수익의 비즈니스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환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던져야지요. 경제학자들은 교육·환경 등 비(非)시장적인 분야를 다룰 때 아주 중요한 점을 놓칩니다. 우리 삶에서 도덕적 규범(norms)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삶의 좋은 가치들이 하나의 상품으로 변할 때, 그 가치는 타락하고 부패합니다. (단기적으론 서로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돈 많은 나라들이 자신의 에너지 사용을 줄이지 않고 돈으로 (환경을 오염시킬) 권한을 사려 한다면 결국 세계적인 협력은 요원해질 것입니다. 지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태도를 정립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샌델 교수는 탄소배출권 문제를 패러디한 영국의 한 웹사이트를 소개했다.

"불륜을 저지를 권리를 사고판다는 아이디어입니다. 불륜을 계속 저지르는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지 않고 배우자에게 충실한 누군가가 사용하지 않은 불륜권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불륜의 도덕적 죄책감을 덜어버립니다. 환경오염의 도덕적 책임을 돈으로 면제받는 것처럼. 시장사회는 이렇게 규범과 가치를 파괴합니다. 탁월한 경제학자조차 여기에 찬동하지요."

시장의 '도덕적 연금술'

―환경, 난민, 이민 문제는 인류가 풀기 어려운 난제들입니다. 시장적 접근은 윤리적 접근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차선(次善)으로 등장한 방법이지요. 하지만 탁아소, 탄소배출권처럼 그런 방식은 궁극적으로 효과도 없고 결국 공동선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주장인 듯합니다.

"물론 시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은 엄청난 부와 번영을 미국, 그리고 한국에 가져다주었지요. 시장은 중립적이며,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비(非)시장적 가치와 규범들에 대해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시장지상주의가 어떤 식으로 공동체를 약화시키는지를 잊어버린다는 것이지요. 시장지상주의의 '시장'은 이미 재화를 생산하는 도구로서의 시장이 아닙니다. 이민·시민권·관계와 같은 영역에 침입하는 시장적 사고, 경제적 사고를 의미합니다. 2008년 리먼 쇼크야말로 '우리 시대가 시장지상주의의 막판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지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시장지상주의가 공동선의 영역을 파고들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합니까?

"지금 대부분의 사람이 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규제를 마련할 시기가 아니라 공익(公益)을 쟁취하기 위한 시장의 역할을 재고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시장의 문제는 끝 모르는 탐욕이다, 이 때문에 탐욕을 억제할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리엔 오류가 있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사익(self-interest)에 의해 움직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사익과 탐욕엔 차이가 없지요. 탐욕은 인간관계에서 악덕으로 통하지만, 이런 악덕을 활용해 공동선을 이룩하는 것이 시장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장이 행해야 하는 도덕적 연금술(moral alchemy)입니다. 시장이 어떻게 하면 제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두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올바른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동시에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현재 세계적으로 시장은 이런 분배의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소득불평등은 '사회적 유대와 단결'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를 심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의 양이 다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점차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경험하게 된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 삶의 많은 부문이 민영화되고 있지요. 교육, 의료, 여가, 문화, 교통 등의 부문에서 말입니다. 가진 돈의 양에 따라 평생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경험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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