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는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누구나 당연히 거쳐가는 과정이고 자연스러운 변화이지만, 요즘 부모는 내 아이만 유난스러운 것 같다는 생각에 걱정과 불안에 시달린다. 아이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싶고 다가가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어쩔 줄 모르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 팁을 전한다.
사춘기는 누구나 거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기틀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다.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대체로 총체적인 혼돈 상태에 빠지는데, 그걸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 역시 힘겹긴 마찬가지다. 사춘기는 끔찍하고 힘든 시기라고 규정되고, 부모에게는 고난의 시기이자 위기의 시기로 인식되어 있다.
“자녀의 사춘기에 대해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춘기가 무섭고 답답한 것은 너무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모르면 당연히 겁이 나고 답답할 수밖에 없지요. 걱정만 하지 말고 사춘기를 공부하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해보세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곧바로 아이를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누구도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중요한 것은 노력의 과정이지요. 그 과정을 함께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아이가 사춘기라는 번데기를 당당히 뚫고 스스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화려한 나비가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사춘기를 힘들게 바라보지 말고 아이를 믿으라는 솔루션을 제안했다.
지극히 정상적인 단계를 밟아가고 있을 뿐이니, 너무 갑작스럽고 많은 변화에 아이 스스로 당황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지만 부모가 “괜찮아, 나는 너를 믿고 있어” 하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주면 안정되고 단단한 인격으로 자랄 수 있다.
대표적인 사춘기 고민상담&솔루션
01 입만 열면 욕하는 아이
신문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부모를 심하게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다툼 끝에 부모를 확 밀친다거나 대놓고 욕을 하는 패륜적인 행동을 한다. 굉장히 상식적인 집안 환경에서 자랐고 예의 바르기 그지없는 아이가 엄마랑 싸우기만 하면 ‘야, 이×아, 네가 엄마면 다야?’, ‘미친 ×’ 같은 말을 충동적으로 내뱉는다. ‘에이, 씨×’ 하고 욕하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한다.
solution 이런 말이나 행동은 사실 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때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그다음 행동이 결정된다. 그 순간만 참으면 아이의 충동은 더 큰 패륜이나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사그라진다. 하지만 부모가 감정적으로 격한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두세 배 더 강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저자세를 취해도 좋지 않다.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부모는 일단 단호해야 한다.
우리나라 부모는 아이가 화를 내면 비슷한 감정으로 맞받아친다. 아이가 “신경질 나” 하면 “네가 왜 신경질이 나? 네가 돈을 벌어왔어, 공부를 열심히 했어, 왜 신경질이야?”라는 식이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가장 큰 문제다. 아이가 신경질을 내면 “그런 마음으로 무슨 얘기가 되겠니. 엄마는 너랑 꼭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이따 하자. 일단 좀 진정하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봐” 하면서 한 걸음 물러나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02 고집을 위한 고집을 부리는 아이
말도 안 되는 고집이 늘어난다. 본인 생각만 옳다고 우기면서 부모 말은 도통 들으려 하지 않는다. ‘무조건 부모 말을 안 들어야겠다’는 생각이라도 한 듯 뭐든지 억지 주장을 펼치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solution 사춘기 아이가 똥고집을 부릴 때는 그 안에 늘 억울함이 깔려 있다. 편애를 당하거나 부당하게 혼이 났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아이의 똥고집을 잡으려면 아이의 억울함부터 풀어줘야 한다. 오빠라고 해서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말은 그만하고, 아이가 억울해하는 걸 들어주고 인정해줘야 한다. 동생이 시작했는데 마지막 반응 때문에 오빠가 혼나는 경우는 더 그렇다.
형제 관계에서 억울한 마음이 쌓이다 보면 그 양상이 다른 관계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 특히 큰애가 오빠고 작은애가 여동생인 경우 부모가 딸에게는 좀 유한 경우가 많다. 그런 부모의 머릿속에는 아들은 남자니까 좀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있다. 그런데 아들 입장에서는 여동생에게만 한없이 허용적인 상황이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게 당연한 심리다. 정말 문제는 그 억울함이 계속 쌓이면 피해 의식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과거의 경험이 상기되면서 억울함이 피해 의식으로 되살아난다.
사춘기 때는 성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남녀 차별에서 억울함이 쌓이는 경우 나중에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03 친구 관계가 불안하고 걱정인 아이
부모 입장에서 어울리는 친구에게 문제가 있어 보일 때가 있다. “네 친구들 좀 문제 있어 보이던데, 괜찮은 거야?” 하고 물어보면 아이는 백발백중 “걔네들이 얼마나 착한데요”라고 반박하고 친구를 옹호하게 마련이다. “내가 볼 때는 다 형편없던데 뭘” 하고 대답하면, 아이는 욱해서 대들어 악순환이 반복된다.
solution 아이와의 충돌을 줄이려면 객관성과 합리성 말고도 한 가지 더 유념할 것이 있다. 아이와 적당한 거리 유지다. 사춘기 아이일수록 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볼 수 있다. 부모도 아이를 자기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가 “저 좀 나갔다 올게요” 하면 누구를 만나느냐 정도는 물어도 되지만, 누구를 만날 건지 정확하게 말하라거나 어디 가서 뭐 하고 놀 거냐고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면 기분이 상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것을 지상과제로 생각한다. 부모가 자기에게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부모를 떼놓는 데 혈안이 되어서 거기에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현명한 밀당을 해야 한다. 너무 당기면 줄이 끊어져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04 만사 귀찮고 싫다면서도 게임할 때만 눈이 반짝거리는 아이
게임만 하면 두 눈이 반짝거리는 아이. 중독이 되었을까 걱정이다. 처음에는 시험이 끝나고 하루 정도만 게임에 빠지더니, 지금은 컴퓨터 앞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solution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공부는 뜻대로 안 되지만 게임은 조금만 연습하면 금세 레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연습하는 것 자체도 재미있고 시간을 투자해서 내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내 공부를 잘하다가 갑자기 게임에 빠지는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패배감이나 좌절감을 게임으로 보상받기도 한다. 주의력이 떨어지는 아이들, 귀차니즘이 심한 아이들일수록 자극이 강한 게임에 빠져들기도 한다.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중독이다. 아이에게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니까 건강하게 활용하면 좋다. 심하면 마약 중독자나 도박 중독자와 똑같아진다.
보통 아이들은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게임 중독을 막으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규칙을 명확히 정해주는 게 좋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야단만 칠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조금씩 줄여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좋다. 사실, 외부의 통제로는 게임 습관을 바꾸기 힘들다.
05 사는 게 재미없다는 아이
뭐가 그렇게 심심하고 지루한지, 말끝마다 지겹다고 투덜대기만 한다. 어떤 화제를 갖다 대도 아이에게서 나오는 대답은 늘 똑같다. 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어떻게 대화를 끌어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solution 사춘기는 유아기와 비슷한 게 많다. 뭔가 성숙한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결국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재미인 경우가 많다. 아이의 생각을 바꾸려면 부모 스스로 생각을 바꿀 필요도 있다. “학생이 무슨 재미 타령이야? 재미없어도 그냥 꾹 참고 해야지” 하고 타박만 해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 정말 그렇네? 재미있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 하는 의문이 생기면 그다음부턴 아이도 뭔가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없으면 무조건 못 견뎌하는 반사적인 행동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보람과 가치를 생각하지 않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아이가 “전 이미 틀렸어요. 이 성적으로 대학에 가긴 글렀어요”라고 말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의사나 박사,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야.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고비를 견디고 지루한 걸 참는 법을 배우는 거지”라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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