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목요일

스승·제자 3명, 40년간 집요하게 대물림 연구… 그게 日과학의 저력

노벨과학상 수상 벌써 21명째… 비결 살펴보니]

올해 물리학상 받은 가지타, 스승 연구 업그레이드 시켜
'이단아' 였던 나카무라조차 선배들 연구 발전시켜 수상


"결과적으로는 제 이름이 수상자 명단에 올랐지만, 저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선생님'의 공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일본 도쿄대 우주선(宇宙線) 연구소장은 6일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지타 소장은 도쿄대 대학원 재학 시절, 200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명예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가지타 소장이 언급한 '선생님'이 당연히 고시바 교수일 것이라 착각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리킨 스승은 따로 있었다. 생전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될 만큼 우수한 학자였지만, 2008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도쓰카 요지(戶塚洋二) 도쿄대 교수로, 가지타 소장보다 먼저 고시바 교수 연구팀에 들어간 '선배'였다.

일본 과학계에선 스승·제자 3대(代)가 연구를 계승한 가지타 소장 사례처럼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해 다음 세대, 혹은 그다음 세대에서 열매를 맺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을 물리학 강국으로 만든 인물은 '일본 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다. 1917년 설립된 일본을 대표하는 연구 기관 중 하나인 이화학연구소(일명 '리켄')에 근무한 그는 1930년대 교토대에서 양자역학을 가르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 생소한 학문이었던 양자역학 강의에 매료돼 이것을 발전·계승시킨 인물이 훗날 노벨상을 탄 두 명의 제자,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와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郞)다. 도모나가의 연구는 제자 고시바에게, 그리고 도쓰카 교수에게 이어졌다.
일본 물리학계의 노벨상 계보도
도쓰카 교수는 '고시바의 수제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스승의 연구를 이어받아 이를 업그레이드했다. 고시바 교수가 노벨상을 탄 결정적 업적은 양자 붕괴 현상 관측 장비인 '가미오칸데'를 만든 것이었는데, 도쓰카 교수는 후배인 가지타 소장과 함께 '가미오칸데'의 오류를 개선한 '수퍼 가미오칸데'를 완성했다. 2001년 말 수퍼 가미오칸데가 폭발사고로 부서져 연구가 중단될 위기에 빠졌는데, 이를 해결한 것도 도쓰카 교수였다. 그는 당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직후였지만, 앞장서 복구에 온 힘을 기울였다. 주변에선 그런 그를 말렸지만 "이제까지 해 온 연구를 수포로 만들 순 없다"고 고집했다. 그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실험이 재개됐고, 13년이 지난 올해 후배인 가지타 소장에게 노벨상을 안겼다. 처음 가미오칸데 연구를 시작한 지 40여년 만이다.

스승이 먼저 길을 터놓고 제자가 꽃피운 경우도 있다. 사카타 쇼이치(坂田昌一) 나고야대 교수는 유카와 교수의 '중간자 이론'을 수정해 문제점을 해결할 만큼 뛰어난 물리학자였지만, 자신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자신을 계승한 제자 두 명이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결실을 거뒀다. 일본 과학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는 작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조차 '연구의 지속성'을 지켜온 일본 과학계 풍토와 동떨어진 인물은 아니다. 그는 선배들이 40년간 닦아온 청색LED 연구를 토대로 이를 상용화시켰을 뿐이었다.

직접적 사제 관계는 아니더라도 선배의 정신을 이어받은 경우도 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교수는 일본 미생물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의 이름을 딴 기타사토 대학에 재직 중이다. 기타사토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처음 선정한 1901년 후보에 올라 일본 연구자들에게 귀감이 된 인물이다. 결국 끝까지 상을 받지는 못했다. 오무라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기타사토처럼) 나 역시 미생물이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그의 정신을 기렸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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