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주년 노벨상의 新트렌드… "함께 하는 과학이 대세"]
최근 5년 공동수상률 93%… 가족·부부·師弟 수상자 많아
퀴리家, 남편·사위 등 5명 배출
'지옥의 상인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으로 불리는 노벨상 올해 시즌이 12일 경제학상 발표로 막을 내렸다. 올해도 우리나라는 과학 분야에서 일본과 중국의 수상을 부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노벨상은 과연 누가 받는 것일까. 과학자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갈수록 노벨상은 단독 수상이 드물고 공동 수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혼자 하는 과학'은 설 자리가 좁은 것이다. 대형 연구기관에 노벨상 수상자가 집중되는 것도 '나 홀로 연구'보다는 '함께 하는 과학'이 중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최근 5년 공동 수상률 93%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중시하는 문학상은 대부분 단독 수상하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최근 공동 수상이 당연시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1981~2010년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분석한 결과, 공동 수상 비율은 78.9%였다. 1901년 첫 수상자가 나오고 10년간 공동 수상은 16.7%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1950년대를 기점으로 50%를 넘어섰고 2000년대(2001~2010) 들어서는 90.0%에 이르렀다. 2011년 이후 올해까지 최근 5년간은 93.3%다.
- ▲ 노벨상은“인류에게 가장 큰 유익을 가져다 준 사람들에게 상금을 수여하라”는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시작됐다. 2009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 등 참석자들이 스웨덴 국가 연주를 듣고 있다. /노벨재단
◇오보(誤報)가 낳은 노벨상
노벨상은 1895년 11월 27일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이 작성한 유언장에서 비롯됐다. 노벨이 처음부터 재산을 기부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1888년 노벨의 형 루드비히가 사망했는데 프랑스의 한 신문이 노벨로 착각해 "지옥의 상인이 사망했다"는 부고 기사를 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노벨은 자신의 오명을 극복하기 위해 생리의학·물리학·화학·문학·평화 분야에 상을 제정하기로 결심했다.
◇집안 전체가 수상자인 퀴리家
노벨상의 역사에 가장 많은 이름을 남긴 것은 퀴리 가문이다. 흔히 퀴리 부인으로 알려진 마리 퀴리는 1903년 남편 피에르 퀴리와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1911년에는 혼자서 화학상을 받았다. 퀴리의 큰 딸인 이렌과 남편 프레데리크 졸리오 역시 1935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둘째 사위인 헨리 리처드슨 라부이스 주니어가 1965년 유니세프 대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을 포함하면 한 가문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5명 배출했다.
퀴리 일가 정도는 아니더라도 부부(夫婦)나 부자(父子) 수상도 많다. 거티 코리와 칼 코리(1947년 생리의학상), 에드바르 모세르와 마이브리트 모세르(2014년 생리의학상) 등 모두 다섯 쌍의 부부가 노벨상을 함께 받았다.
200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와 올 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우주선 연구소장처럼 사제(師弟) 수상은 노벨상에서 흔한 일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연구자들 밑에서 뛰어난 제자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 태생 과학상 수상자도 있어
현대 세계가 형성된 2차 대전 이후 노벨상 수상자는 미국이 326명으로 압도적인 1위이다. 영국(86명)·독일(56)·프랑스(36)·일본(25) 순이다.
출생 국가로 따지면 우리나라도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에 앞서 과학상 수상자도 배출한 바 있다. 198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미국 듀폰사의 찰스 존 피더슨 박사는 대한제국 시절인 1904년 부산에서 노르웨이인 엔지니어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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