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3일 금요일

피아노 스승 신수정 교수 "조성진, 어려서부터 기막힌 실력"

세계 3대 피아노콩쿠르인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첫 우승, 우리나라의 클래식 음악사를 다시 쓴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은 '신동' 또는 '천재'라고 불린다.

과거 인터뷰에서 "진짜 천재는 쇼팽 같은 사람이다. 나를 천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겸손함도 갖춘 그는 평범하게 피아노를 시작했다. 외동아들이라 여섯살에 엄마가 외롭지 말라고 동네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라고 했다. 본격적인 레슨은 열살 때부터 받았다. 바이올린을 6년 간 배우기도 했는데 피아노가 더 좋아서 피아니스트가 됐다.

그가 피아노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스승인 피아니스트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 회원)와 박숙련 순천대 교수의 공이 크다. 두 사람은 조성진의 인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박 교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조성진의 레슨을 시작했고 2007년 그의 재능을 알아본 신 교수도 레슨에 합류했다. 조성진이 2012년 프랑스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두 사람은 혼신을 다했다.

한국 피아노계의 대모로 통하는 신 교수의 "우리나라 피아노계가 야단이 났다"는 들뜬 목소리는 전화로도 생생했다. "성진이가 김선욱, 손열음의 뒤를 잘 따라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재주 많고 끼가 넘치는 젊은 피아노 연주자들이 많다"며 즐거워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에 대해서는 "완전히 우리나라의 피아노 역사를 다시 쓴다고 하면 과언일까"라면서도 "분명 대단한 음악적인 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조성진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기가 막힌 실력이 있었다"며 "날이 갈수록 성숙해져 고귀한 품성의 연주를 하고 있다"고 봤다.



 
그동안 본선은 너무 떨려서 실황 중계는 못 봤다. 오늘 아침에는 심사 결과 발표가 늦어져 더 떨렸는데 2등까지 성진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 (그가 1등인 걸 알고) 바로 행복해졌다"며 웃었다. "폴로네이즈 최고연주상도 받았는데 (본선 2차에서 연주한 쇼팽의) 폴로네이즈 연주도 보통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조성진은 강심장이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 중 한 곡을 연주해야 하는 결선 진출자 10명 가운데 평정심을 제대로 유지한 것은 사실상 조성진 한 명이다. "본선에서 결선으로 가는 동안, 갈수록 더 잘했다. 정말 잘 쳤다. 그런데 1차에서는 자신도 떨었다고 그러더라.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안쓰러웠는데 정말 잘 해냈다. 힘든 길을 잘 가고 있는 것 같아 기특하다."

조성진이 프랑스로 간 뒤 자주는 보지 못하지만 "이제는 어엿하고 준수한 청년이 다 됐다"며 "앞으로 더 잘해나갈 거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여섯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신 교수는 6·25 동란 중이던 1952년 피란지 부산에서 제1회 이화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이후 굵직한 콩쿠를 휩쓸었고 서울대를 수석 졸업한 뒤 빈 국립음악원에 유학했다. 1969년 당시 26세 최연소로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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