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올해도 日本의 노벨상 바람을 맞으며

단 이틀 만에 話題 자리에서 밀려난 한국 과학의 장래
노벨상은 더디게 크는 나무, 정부·연구자·국민 함께 달라져야
 
10월에 부는 일본 바람은 고마운 바람이다 . 역사를 비튼 일본 초·중·고 교과서 검정 결과를 실어나르는 3월 바람과 다르고 독도가 일본 땅이라 우기는 방위백서의 닳고 단 억지 주장을 전해오는 7월 바람과도 다르다. 10월의 일본 바람은 한국 과학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올해도 일본 바람은 어김없이 불었다. 5일 오무라(大村智) 기타사토대(北里大)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6일에는 가지타(梶田隆章) 도쿄대 교수가 물리학상을 받았다. 7일 발표된 화학상 수상자 명단에 일본이 빠진 건 조금 뜻밖이다. 노벨상 수상 대기(待機) 인원이 가장 많은 분야가 화학 분야라고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한국 과학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주간(週間)'은 너무 허망하게 날아가 버렸다. 이틀 만에 화제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國定化) 논란과 여야 내부의 공천권 시비 뉴스가 다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 연구자가 화학상까지 휩쓸어 '스리런 홈런'을 쳤더라면 사정이 달라졌을까. 한 사회에서 위정자(爲政者)·연구자·국민의 과학에 대한 인식과 자세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생리의학상 수상자 오무라 교수는 지방 대학인 야마나시(山梨)대학, 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교수는 사이타마(琦玉)대학을 나왔다. 두 사람 다 대학원·박사과정을 일본 안에서 마쳤다. 외국 대학이나 연구소 경력은 일본에서 돋보이는 연구 실적을 올리고 나서 그것도 단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일본 노벨상 수상자는 1949년 일본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湯川秀樹)처럼 도쿄대나 교토대 같은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다음 일본을 대표하는 기초과학 연구소인 이화학(理化學)연구소에서 연구 경력을 쌓았다. 이것이 일본 노벨상 수상자의 표준 모델이었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미국·유럽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거친 사람은 거의 없다. 노벨상에 근접(近接)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연구자 대부분이 미국·유럽 대학 출신 박사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 모습은 10여년 전부터 크게 변했다. 지방 대학을 졸업해도 대학원·박사과정은 도쿄대·교토대에서 밟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요즘 달라졌다. 지방 대학에서 학사·석사·박사과정을 내리 밟는 수상자가 늘었다. 지방 대학을 나와 지방 중소기업에서 연구 경력을 쌓아가다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 한 가지 제품 생산에만 100년 이상 매달려온 3만여개 중소기업이 연구의 전진(前進)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쏟아진 수상자 16명은 일본에서 노벨상으로 가는 경로(經路)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 사이의 연구 수준과 여건 차이가 눈에 띄게 좁혀졌다. 연구 마당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 정계와 재계를 쥐락펴락하는 유명 사립대 와세다(早稻田)나 게이오(慶應) 출신은 노벨상 세계에선 맥을 추지 못한다. 과학의 운동장과 권력과 돈의 운동장은 경기 규칙이 다르다.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한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세계 1위다. 총액(總額) 기준에선 아직 일본의 3분의 1이라지만 경제 규모와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여간 분발(奮發)한 게 아니다. 노벨상 바람이 불 때마다 반자동(半自動)으로 튀어나오던 연구비 투정이 다소 누그러진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떨어지는 자동판매기처럼 노벨상은 연구비를 쏟아붓는다고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노벨상은 더디게 크는 나무이고 습기와 온도와 햇볕이 조화를 이뤄야 싹을 내는 까다로운 씨앗이다. 연구 목표 설정과 연구비 배분에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필요하다. 노벨상은 대부분 20~30년 전의 연구 실적으로 수상 여부가 결정된다. 거꾸로 말하면 20~30년 후에도 참신하고 중요하게 여겨질 연구 테마를 찾아야 한다.

대통령이 한말씀하신다고 연구 목표와 연구비가 온통 그 방향으로 기우는 후진적 행태는 독약(毒藥)이다. 전직 교육부 장차관이 총장으로 있는 대학에 연구비를 몰아주는 전관(前官) 비리(非理)도 어서 졸업해야 한다. 교육부 사무관·계장·과장이 서투른 지휘봉을 휘둘러 현장의 진짜 연구자들을 좌절시키는 장면도 이젠 사라져야 한다.

근본(根本)은 연구자의 자세와 윤리 변화다.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 일본인 21명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총장 꿈을 꾸고 여기저기 기웃거린다는 소문에 휘말렸던 적이 없다. 연구비 관리 부실(不實)로 외부 간섭을 불러들인 일도 없다. 때로 경쟁하고 때로 협력하면서 함께 일본을 노벨상의 길로 이끈 1949년 수상자 유카와나 65년 수상자 도모나가(朝永振一郎)는 연구 업적만이 아니라 연구자의 품격(品格)과 권위로 우러름을 받았다. 올해도 거르지 않는 10월의 일본 바람을 맞으며 여러 생각이 오간다.
 조선일보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