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동시에 배출한 일본과 중국에서는 대대적 축하와 함께 해당 수상자의 삶도 조명받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별로 얘기하지 않지만, 보통사람보다 얼간이 짓을 (더 많이)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대중들에겐 무명이었던 오무라 사토시(80) 기타사토대 특별영예교수가 5일 밤 남긴 소탈한 수상 소감에 일본은 열광했다. 오무라 교수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협력해 다양한 기생충 예방약을 개발했다. 자신이 몸담은 기타사토연구소에 250억엔(약 2433억원) 가까운 특허 수입을 안겨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가 일본에서 가장 특허 수입이 많은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일본 중부 야마나시현 농촌에서 초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땐 축구, 고등학교 땐 스키 선수로 뛰었다. 야마나시대학 졸업 후 야간 공고 교사로 일하며 도쿄이과대 대학원을 마쳤다. 그는 30대에 미국 유학 중 산학 협력을 통해 기생충 약 애버멕틴(Avermectin)을 개발했다. 기업과 협력해 신약을 만들어내고, 제품 판매가 이뤄지면 매출액에 따라 특허료를 받는 구조도 고안해냈다. 사재 5억엔을 들여 고향에 미술관도 지어줬다. 그가 몸담은 기타사토연구소는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 기타사토 시바사부로의 이름을 땄다. 기타사토는 독일 학자 베링과 공동 연구를 하고도 베링에 밀려 노벨상을 못 탔다. 오무라가 기타사토의 한을 풀었다고 일본은 더 열광했다.
중국도 투유유(85) 중의연구원 교수가 자국 국적의 첫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된 것에 환호했다. 그러나 그가 박사 학위도, 유학 경험도, 원사(院士·최고 과학자) 칭호도 없는 '3무(三無) 과학자'라는 이유로 홀대한 것에 대해선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은 투 교수가 1700년 전 중국 의학서 '주후비급방'에서 말라리아 퇴치 약초인 개똥쑥을 찾아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투 교수의 업적이 암울했던 문화대혁명 기간에 이뤄진 것도 높게 평가받는 분위기다. 투 교수는 1969년 미국과 전쟁하던 북베트남에 제공할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연구팀은 1971년까지 약초 표본 190개를 실험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개똥쑥은 191번째에 찾아낸 100% 치료 약초였다.
그러나 중국 과학계는 2011년 '노벨상 전 단계'라는 '래스커상'을 받을 때까지 40년간 투 교수를 주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고 과학자인 '원사'를 뽑는 투표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인민망은 "연구만 하고 '관시(關係·유력한 인물과 맺은 유대 관계)'를 넓히지 않은 과학자는 원사가 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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