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5일 금요일

안전한 항해를 가능케한 좌표와 기하학

전 런던에 오면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어요. 바로 세상의 중심, 세계의 시간이 시작되는 곳이라 불리는 ‘그리니치 천문대’예요. 그리니치는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보존돼 있어요.

그리니치 파크를 중심으로 언덕 위로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아래로는 퀸즈 하우스와 해양박물관과 왕립해양대학이 자리 잡고 있지요. 중요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본초 자오선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그리니치 천문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많은 관광객들이 일렬로 줄을 선 채 양 발을 사진 찍고 있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한쪽 벽에 “Prime Meridian of the world”라고 쓰여 있었어요.
거기서 시작된 붉은 선이 바닥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이 선이 바로 세상의 중심을 가르는 본초 자오선이에요.
위도 51° 28′ 38″, 경도 0° 0′ 0″의 본초 자오선. 이 평범한 선 하나가 세상을 동과 서로 나누는 중심이라니…!

저도 얼른 본초 자오선을 양 발 사이에 두고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어요.
세상의 동쪽과 서쪽이 내 양 발 아래에 있다니 신기했지요.
그런데 영국은 어떻게 본초 자오선을 갖게 된 걸까요?






본초 자오선 뒤편에는 ‘플램스티드 하우스’라는 건물이 있어요. 팔각형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영국 최초의 왕실 천문학자였던 플램스티드가 천문학을 연구하고 거주했던 곳이에요.
이 건물에는 천문 관측과 시간 계산의 역사를 잘 설명한 박물관이 있어요.

인공위성이 없던 시절 바다에서 어떻게 위치를 알아냈을까요? 2차원 평면에서 임의의 점의 위치는 x, y축의 두 좌표만 알면 돼요.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려면 위도와 경도, 두 좌표만 알면 되죠. 옛 선원들은 위도를 구하기 위해 정오에 육분의란 기구로 해의 높이를 쟀어요.

적도에 가까울수록 태양의 고도는 높아지고 멀수록 낮아지는 원리를 이용했지요.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경도를 구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1707년, 영국 왕립 해군 4척이 경도를 구하지 못해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영국 정부는 당시 유명한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동원해 경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요. 이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한 사람은 시계 기술자이자 발명가인 존 해리슨이에요.

그는 정확한 시간만 알 수 있다면 어디서든 경도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구는 24시간을 기준으로 자전해요. 360°/24시간= 15°/1시간 이므로 1시간 차이는 15°만큼 경도 차이가 나는 거죠.
만약 누군가 본초 자오선과 3시간 차이가 난다면 경도 15°×3=45°에 있다는 뜻이지요.

결국 그가 할 일은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존 해리슨은 40여 년의 연구 끝에 거센 움직임과 온도, 습도에도 오차가 거의 나지 않는 시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결국 경도 문제도 해결됐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리니치에서 천문대만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반드시 봐야 할 곳이 또 있어요. 그리니치 파크 오른편에 위치한 ‘퀸즈 하우스’예요.

퀸즈 하우스의 1층(Ground floor)에는 그레이트홀이 있는데, 홀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멈춰서 위를 올려다 보면 나선형의 튤립 계단이 눈에 들어와요. 이 계단은 가운데 지지대 없이 한쪽 벽과 아래 계단만을 의지해 쌓아 올린 영국 최초의 나선형 계단으로 유명해요.

그런데 가만 보니, 이 계단의 나선 구조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네요? 아하! 소라 고둥이나 앵무조개, 은하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나선 구조와 같아요. 계단을 계속 올려다 보자, 점점 좁아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사실 계단은 바닥부터 윗부분까지 일정한 원기둥 모양이래요.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아서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지요.

계단 바닥에 놓인 원이 문제를 푸는 열쇠였어요. 자가 있다면 지름을 잴 수 있겠지만, 여행하면서 자를 갖고 다니진 않잖아요? 이럴 땐 신발을 이용해 어림 측정하면 돼요. 한 발, 두 발 신발로 길이를 재 보니, 바닥원의 지름이 2m 정도 되겠네요.

그럼 튤립 계단의 안쪽 원 둘레는 2m×3.14≒6.28m지요. 같은 방법으로 계단 안쪽의 폭을 재 보니 약 18cm, 1회전에 필요한 계단의 수는 34개더라고요. 그럼 1회전의 둘레는 0.18m×34=6.12m 정도로 거의 비슷해요. 약간의 오차가 있긴 하지만, 튤립 계단이 원기둥 형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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