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校 학생 1400명 중 1100여명이 육지서 제주로 유학 와
'해외유학 기러기' 아닌 주말마다 보는 '제주 기러기' 선택
외국학생 6%뿐… 서울 강남 학원가선 '국제학교 선행학습'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가 출범한 지 만 2년을 맞았다. '기러기 가족' 등 조기 유학 수요를 흡수하고 아시아 유학생들을 유치하겠다고 시작된 프로젝트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현재 제주도에는 NLCS 제주, 브랭섬홀 아시아, KIS 제주 등 국제학교 세 곳이 있다. 미국계 세인트 존스베리 아카데미가 2015년 개교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주말에 상봉하는 '제주 기러기' 1100여 가족
이날 NLCS 제주 3층 물리 교실에서 10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사 매튜 맥로드씨는 칠판에 실험 방법을 적은 뒤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 질문을 받았다. 학생들은 기숙사를 포함한 학교 모든 장소에서 영어로만 대화해야 한다. 교사와는 영어로 대화했지만 일부 학생은 "이렇게 하면 되나" 하고 한국말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 28일 제주 영어교육도시 내 NLCS 제주 국제학교에서 10학년 학생들이 물리교사 매튜 맥로드씨와 함께 실험을 하고 있다. /제주도교육청 제공
NLCS와 KIS에 초등학생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 A씨는 "당초 미국 유학을 생각했는데, 남편이 아이들과 어릴 때부터 떨어져 지내고 싶지는 않다고 해서 제주행을 택했다"고 말했다. '미국 기러기 가족' 대신 '제주 기러기 가족'이 된 것이다. A씨는 "주말마다 아이를 볼 수 있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제주 출신 학생과 외국인 등을 제외하고 A씨처럼 서울·부산 등 '육지'에서 온 유학생이 1100여명에 이른다.
◇학부모들의 품앗이 주말 보육
방학 때마다 국제학교 앞은 진풍경이 벌어진다.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12~18대의 버스가 줄지어 선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을 공항까지 데려다 줄 버스다. 4일 방학을 시작하는 NLCS는 45인승 버스 16대를 대절했다. NLCS에서는 방학과 설·추석 등을 포함해 1년에 예닐곱 번 이런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개학 전날에는 시간대별로 공항에 버스를 보내 학생들을 학교까지 태워온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교 스케줄에 따라 항공권을 예약한다. 학부모 50~100명이 모여 여행사를 통해 항공권을 단체로 싸게 구매하기도 한다.
학부모들이 품앗이로 아이를 돌보는 것도 제주 국제학교의 신풍속도다. 세 아이를 NLCS에 보내는 한 학부모는 "아이 따라 제주에 내려와 사는 엄마들끼리 월화·수목·금으로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도 한다"고 했다. 자녀를 브랭섬홀에 보내는 한 학부모는 "4~5명의 학부모가 당번을 정해 주말마다 제주에 내려가 아이들을 돌보고 서울로 돌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남 학원가에 '국제학교용 선행학습' 나오기도
제주 국제학교의 2년 성적표가 '대(大)만족'인 것은 아니다. B(17)양은 이번 학기를 끝으로 2년간 다니던 국제학교를 떠나 서울 학교로 다시 옮긴다. B양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힘들고,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제주 국제학교로 오는 학생도 매년 늘지만 B양처럼 국제학교를 떠나는 학생도 꽤 있다.
학생들의 사(私)교육 의존 역시 여전하다는 말도 나온다. 영어로만 진행하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방학이나 주말이면 서울 강남의 학원에서 영어로 배울 교과목을 미리 우리말로 공부하기도 한다. 강남 사교육 시장에 '국제학교용 선행학습'이 맞춤 상품으로 나온 것이다. 한 학생은 "방학 때 강남 학원가에 가면 우리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고 했다.
학교별 외국인 학생 비율이 6%대로 낮아 국제학교라는 '이름값'을 못하는 것도 한계다. NLCS 제주의 피터 데일리 교장은 "홍콩·싱가포르 국제학교들은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자녀가 많아 그야말로 '국제학교'인데, 한국 학생들이 주를 이루는 이곳 제주 국제학교에서는 '인터내셔널(international)'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제1의 과제"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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