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영어학원에서 배우는 단어들을 보고 영국인 학생들이 보인 첫 반응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12일 서울 강남·목동의 영어전문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하루치 단어숙제를 동갑의 같은 학년 영국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다른 학원을 다니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 2명, 중학교 2학년 학생 2명으로부터 학원에서 숙제로 준 단어리스트를 받아, 국내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영국인 남매에게 단어 뜻을 아는지 표시해보도록 한 것이다. 영국인 남매는 둘 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꽤 잘하는 우등생들이라고 학교 관계자는 전했다. 개인차를 고려할 때 주관적인 평가지만, 대체적인 추이는 볼 수 있었다.
평가 결과는 뜻밖이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쓴다지만 정답률은 매우 낮았다.
▲ 영국 학생 “대부분 처음 봐”
‘초등 5년’ 정답률 75~82%
암기식 교육, 영어 과잉 초래
초등학교 5학년 동생은 목동과 강남 학원 2곳의 5학년 단어리스트에서 각각 40개 단어 중 7개, 36개 단어 중 9개를 모르겠다고 표시했다. 정답률이 75~82% 수준이다. linger(오래 머물다), mishap(작은 사고), blemish(흠집), fatigue(피로), nomad(유목민) 등을 맞히지 못했다.
중2 나이에 해당하는 단어리스트의 정답률은 더욱 낮았다. 강남의 중 2~3학년이 다니는 주니어 토플학원의 숙제에선 40개 중 15개에 모른다(×)는 표시가 붙었다. 영국의 14살 학생은 dwindle(꾸물거리다), fugitive(회피하는), sanguine(낙관적인), succinct(간결한), uproar(소란) 등을 모른다고 답했다.
강남의 영어 독서클럽형 학원의 숙제에선 맞힌 단어를 세기가 더 편할 정도였다. 30개의 단어 중 안다고 대답한 것이 불과 7개에 그쳤다. invincible(천하무적의), mettle(패기), resilient(탄력있는), stamina(체력), composure(구성), incite(선동하다), serenity(고요함) 등이었다. abhor(혐오하다), kudos(영광), pejorative(경멸적인) 등 대부분의 단어는 ×표였다.
잠깐의 평가를 마친 남매는 “단어 수준이 너무 높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중학생은 “처음 접하는 단어들이 대부분”이라며 “알고 있는 단어들도 일상대화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도선 고려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보통 영미권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알게 되는 단어 수가 1만2000~1만3000개 정도”라며 “한국에서 토플을 준비하는 초등·중학생들이 학원에서 배우는 2만2000단어 수준은 현지의 고1 수준을 넘는다”고 지적했다.
어 교수는 단어의 수준뿐 아니라 학생들이 학원에서 무조건적인 암기로 단어를 배우는 상황 자체가 교육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맥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살아있는 단어를 배워야 말하기·쓰기 등 실제 상황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며 “한국 학생들은 영어단어를 실제의 삶과는 전혀 연관짓지 못한 채 암기만 하면서 앵무새들의 발화행위처럼 배운다”고 말했다. 한국의 입시나 취직시험에서 영어가 과잉으로 치닫고 있는 단면이다.
경향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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