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은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 24절기 중 열세 번째인데 보름씩 앞뒤로 대서(大暑)와 처서(處暑)를 두고 있다. 대서 즈음에는 ‘더위 때문에 염소 뿔이 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는 옛말은 선선해진 날씨로 극성이던 모기도 약해지는 현상을 이른다. 그러니 전국 대부분 지역에 제아무리 폭염 특보가 내려졌어도 입추를 지나면서 더위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 걸쳐 있는 모하비 사막에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있다. 여름철(6∼8월)에는 평균 낮 기온이 40∼46도여서 이 시기에는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다. 57도까지 올라간 공식 기록이 있다.
이 국립공원의 방문자 센터에는 지도와 함께 ‘데스밸리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든지, 되도록 힘이 좋은 4륜구동형 차량을 타고 갈 것을 권유하는 ‘경고성’ 안내문을 내준다. 조난자들도 가끔 발생하는 지구상에서 꼽아주는 극한 지역이다. 이런 곳도 1∼2월에는 낮 기온이 20도 밑으로 떨어진다. 이곳의 동식물도 폭염을 견디면 달콤한 계절을 맞을 수 있다. 타오르는 폭염은 강인함, 단련, 인내, 결실 같은 단어를 생각나게 만든다. 폭염을 참아내면 그 이후의 무엇이 기대된다고나 할까.
설립된 지 오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뜻하는 스타트업(start-up) 분야에서도 데스밸리라는 표현을 쓴다. 창업 후 3∼5년쯤 사이에 마케팅·경영 능력이나 자금이 부족해 겪는 위험시기를 뜻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난 용어인데 이 시기를 못 넘기고 망하는 벤처들이 많은 데서 유래했다. 한국 스타트업의 데스밸리 생존율은 41%로, 미국(57.6%) 호주(62.8%) 등 주요 국가보다도 현저히 낮다고 한다. 폭염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입추 때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속담이 있다. 개가 짖을 정도로 벼가 소리 내며 빠르게 자란다는 과장된 표현이다. 강인하게 인내한 자의 결실을 지칭하는 듯하다. 메르스와 폭염을 이겨낸 모두들 수고했다. 다음 주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간간이 가을비도 내린단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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