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7일 월요일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지구를 떠나 저 광대한 우주 공간으로 나가면 시공간의 기이한 왜곡 현상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든든히 믿을 만한 절대적인 공간도, 절대적인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대성 이론은 광활한 우주 공간을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시간이 수축하며 빨라지는 현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중1밖에 안 된 아들이 “아빠, 초딩 때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갔는데 요새는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지?”라고 물었을 때 저는 “너, 벌써 노인이 되어버렸냐?”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렇지요. 젊다는 것의 특권은 영원한 시간이 허락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나이 든 사람을 더욱 처량하게 만드는 것은 가뜩이나 많이 남지도 않은 시간이 화살처럼 날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심리학의 창시자라 일컬어지는 윌리엄 제임스는 날아가는 시간의 쓸쓸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렸을 때 사람들은 항상 주관적으로든 객관적으로든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불안감은 생생하고 기억은 강렬하다. (중략)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이런 경험들 중 일부가 자동적인 일상으로 변해 사람들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하루 또는 일주일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알맹이 없이 기억 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그래서 기억들이 점점 공허해져서 붕괴해버린다.”
나이가 들면 시간은 점점 더 빨리 갑니다. 10대에는 시속 10㎞로 가던 시간은 60대가 되면 60㎞로 날아갑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속도는, 째깍거리는 시계의 속도와는 차이가 납니다. 연인과 달콤하게 보낸 두 시간은, 치과에서 생니를 갈아내는 2분보다 몇 배는 더 짧게 느껴집니다.

아르헨티나 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는 단편 《비밀의 기적》에서 극적인 상황을 상상합니다. 때는 1939년 독일군이 진주하던 시점의 체코슬로바키아입니다. 명성을 날리진 못했지만 그런대로 몇 편의 문학 작품을 자랑스레 펴냈던 유대인 작가 홀라딕은 하루아침에 독일군에게 끌려가 총살형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에겐 아직 끝마치지 못한 희곡 〈적들〉에 대한 미련이 있습니다. 그는 신에게 갈구합니다. 기적을 베풀어서 자신의 마지막 역작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

그러나 시간은 화살같이 흘러 어느 날 아침 홀라딕은 무심하고 따분해 보이는 독일 병사들의 총구 앞에 서게 됩니다. 마침내 발사의 명령이 떨어진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홀라딕은 움직일 수도 없고 침을 삼킬 수도 없었지만,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고 시간이 정지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총구 앞에 서 있는 채로 홀라딕은 1년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자신의 유작을 다듬고 또 다듬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구절을 완성하고 이제 다 되었다고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순간 총성은 그를 존재에서 지워버립니다.

지금 현재 경험하는 시간과 기억 속의 시간의 속도는 전혀 다른 식으로 경험됩니다. 지금 현재 경험하는 시간은 신나고 재미있을수록 빨리 가며, 지루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을수록 느리게 갑니다. 그러나 기억 속의 시간은 정반대입니다. 생생한 기억으로 가득 찬 시간은 길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지루하고 무료했던 시간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흘러간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 면에서 윌리엄 제임스의 성찰은 좀 더 우리 스스로의 경험에 잘 부합합니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강렬한 감정과 함께 기억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대부분 이미 다 해본 경험이라 웬만한 사건에는 무감각해집니다. A와 B 시점 간의 경험된 시간은 그 사이에 있었던 사건의 개수에 비례합니다. 따라서 나이가 들었을 때 지금 현재 경험하고 있는 시간은 무척이나 무료하고 길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기억 속의 시간은 아무런 사건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Paul Janet)는 비슷한 원리를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는 10살짜리에게 1년은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80살 노인의 1년은 인생의 80분의 1이라고 말합니다. 자연히 노인에게 시간이 빨리 갈 수밖에 없지요. 생물학적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뇌에 내장된 생리학적 시계의 사이클이 늦어지기도 합니다.

1995년 심리학자인 피터 맹건(Peter Mangan)은 무척이나 명쾌하고 단순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19세에서 24세 사이의 학생 25명과, 60세에서 80세 사이의 노인 15명에게 각각 어림잡아 3분이 지난 후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젊은 학생들은 평균 3분 3초 만에 버튼을 눌렀던 반면, 노인들은 평균 3분 40초 후에 눌렀습니다. 또 다른 심리학자인 로라 클라인(Laura Klein)은 흡연자가 담배를 끊으면 평소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모두는 시간 경과에 대한 지각이 뇌 회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망원경 효과(Backward & forward telescoping)’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실제보다 좀 더 과거에 일어났다고 기억하며, 먼 옛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좀 더 최근에 일어났다고 기억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거 사건과 최근 사건 사이의 시간이 축소됩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의 시간이 실제보다 빨리 흘러버린 것 같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겠지요.

설명은 많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무료하게 흘러가지만, 역설적으로 되돌아본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것처럼 느껴지고 남은 시간은 너무나 짧게 느껴집니다. 주어진 시간은 채우기 어렵지만, 흘러간 시간에 대한 미련은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죽음이 점점 더 다가온다는 절박감은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만들고, 평정심을 갉아먹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삶에 대한 긍정과 애착이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영국 작가인 마이클 폴리(Michael Foley)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은 경험에서 흔히 누락되는 집중성과 강렬성을 제공하는 말년의 또 다른 선물이다. 시간이 많은 젊은이들은 물질적인 부자처럼 주제넘고 신중하지 못하다. 무엇이든 살 수 있다면 귀중한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는 노인들은 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귀중해진다.”
원고를 쓰다 보니 밤이 깊었습니다. 만약 이날이 제게 남은 마지막 날이라면 좀 더 치열하게 살아가겠지요. 그러나 습관과 타성은 자꾸 이를 부인하게 만드네요. 내일 아무런 일 없이 침대에서 눈을 뜰 것임을 확신하면서 오늘도 대책 없이 잠자리에 듭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간 수축 효과 [Time Com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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