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 유행이라고 한다. 머물다(Stay)와 휴가(Vacation)를 합친 신조어인 스테이케이션은 멀리 떠나지 않고 집이나 집 근처에서 즐기는 휴가 법이다. 원래 2008년을 전후해 미국에서는 금융위기와 비싼 기름값 때문에, 영국에서는 파운드화 가치 하락으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등장해, 2009년 미국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오른 용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스테이케이션에서는 경제적 이유와 함께 빡빡한 일상 속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피곤한 심정도 엿보인다. 계획하고, 예약하고, 도착해서는 최선을 다해 쫓아다니며 평소보다 더 힘들게 보내야 하는 휴가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겠다는 바람이다.
실제로 최근 한 소셜커머스가 회원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름휴가 계획 조사에서 집이 바다, 강에 이어 가고 싶은 휴가지 3위로 꼽혔다.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에서는 ‘휴가 때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는 의견이 절반 가깝게 나타났다. 16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가 겹쳐 떠오른다. 빠르고 정확한 월스트리트 필경사 바틀비는 어느 날 갑자기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prefer not to)”라며 모든 일을 거부한다. 사회적 경쟁은 치열하고 개인 스스로 자신을 성과주의로 내몰아 괴롭히는 ‘피로 사회’에서 사람들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휴가에서만큼은 바틀비가 되어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주변에서도 이번 휴가에 특별한 계획 없이 집에서 쉬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 이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쉬면서 책도 좀 읽고…”이다. 바쁘고 피곤한 피로사회에선 평소에 편하게 책 한 권 읽기도 쉽지 않다. “쉬며 책도 좀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곳곳에서 여름휴가 책을 추천하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는 일찌감치 지난 5월 여름 휴가철 책 7권을 추천했고, 신문, 잡지, 서점과 여러 단체에서도 휴가철 추천 책 목록을 내놓고 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이들 목록을 살펴보면 대략 3가지로 나뉜다. 수년간 여름 독서 시장의 최강자로 꼽혀온 추리 장르 소설, 휴가에 어울리는 가벼운 읽을거리 그리고 유명인의 필독서이다.
하지만 휘몰리지 않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겐 우리 시대 최고의 독서가로 꼽히는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 여행 독서법을 소개하고 싶다. 그는 여행을 떠날 땐 읽지 않은 새 책이 아니라 평소 여러 번 읽던 책을 갖고 간다고 한다. 낯선 곳과 자신을 연결해 안정감을 얻고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오에의 독서법을 따라 유명인이 추천하는 ‘내 인생의 책’이 아니라 자기만의 ‘내 인생의 책’을 챙겨보는 것은 어떨지. 어쩌면 그 책을 여행 가방에 던져놓은 뒤 휴가기간 내내 제대로 펼쳐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책을 여행 가방에 넣었다는 것 자체가 나를 돌아보는 책 읽기, 나를 찾는 여행의 시작일 수 있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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