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8일 토요일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최근 CEO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면 경영 관련 책 외에도 인문서, 그중에서도 고전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손자병법》은 《논어》, 《노자》, 《주역》과 함께 중국 4대 고전으로, 리더들이 가장 아끼는 비서(?書)로 손꼽힌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마쓰시타 고노스케 등은 《손자병법》을 머리맡에 두고 경영전략서로, 그리고 인격수양을 위한 수신서로 활용할 정도다.  

굳이 리더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마흔쯤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과 달라짐을 느낀다. 사회에서의 지위는 높아지지만 세상살이가 생각만큼 녹록치 않음을 더 절실히 깨닫는다. 이러한 때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은 ‘정치와 경영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손자병법》을 통해 인생과 경영의 지혜를 한 수 가르쳐준다. 무엇보다 저자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다시 읽어본 《손자병법》에서 새로운 철학을 하나 건져올린다.  

“《손자병법》 가르침의 밑바닥에는 경쟁자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인정하는 철학이 숨어 있다. 겉으로 보면 《손자병법》은 ‘싸움의 기술’이다. 그러나 그 속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오늘날 우리가 손자에게서 배울 것은 겉이 아니라 속이다.”  

‘마흔’이라는 나이 혹은 ‘리더’라는 자리에서 저자가 무릎을 치며 깨달은 것도 바로 이 점이다.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전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몸소 체험하면서 느낀 공감과 성찰이 있었기에 저자만의 이런 색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었다. 이것이 저자가 마흔에 읽은 손자병법의 철학이자,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마흔에 대한 메시지다.  

리더들은 왜 손자병법을 애독서로 꼽는가 " 

얼마 전 삼성경제연구소가 SERI CEO 회원 535명을 대상으로 “리더로서 조직에 해가 되는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내용의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손자병법》에 나온 ‘장수가 빠지기 쉬운 5가지 위험’을 제시했다.  

1위.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약점을 노출하고 만다는 뜻의 ‘분속가모야(忿速可侮也)’ : 28%
2위. 싸움에서 살아남으려고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소심한 자세를 꼬집는 ‘필생가로야(必生可虜也)’ : 25.4%  
3위. 용기만 갖고 무작정 돌격한다는 필사가살야(必死可殺也) : 17.9%
4위. 지나치게 원칙을 고집해 실속을 놓치는 염결가욕야(廉潔可辱也) : 15.0%
5위. 인정에 얽매여 과감한 추진력을 잃어버리는 애민가번야(愛民可煩也 : 13.3%

손자는 1편 ‘시계(始計)’에서 장수가 갖춰야 할 5가지 자질로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을 내세우며, “전쟁은 ‘전쟁의 조건’과 ‘장수의 자질’로 판가름난다”라고 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이 사뭇 전쟁터를 방불케 하듯 《손자병법》의 전략과 전술은 정치, 경제, 인간관계 등 여러 분야에 응용 가능하다. 《손자병법》이 초창기 병서(兵書)에서 벗어나 문인, 학자는 물론 경영인들의 애독서가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마흔, 인생의 전환기에 손자병법에서 찾은 새로운 철학  

1. 손자병법은 ‘비겁의 철학’이다  

사실 같은 책, 같은 글귀를 보더라도 때와 장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역시 그랬다. 주장은 거침이 없고, 일처리는 저돌적이며, 마음만은 세상을 향한 싸움의 준비를 마친 듯한 20대, 30대에 《손자병법》을 읽었다면? 아마 ‘싸움의 기술’ 그리고 ‘승리의 비법’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흔은 당당하게 논쟁을 벌였던 상사의 지시에 더 이상 토달지 않게 되고, 후배들에게는 지시보다 부탁을 하게 되는 나이다. 손자는 “진짜 싸움 잘하는 사람은 쉽게 이길 만한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은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해지라’는 ‘비겁의 철학’이다.

2. 손자병법은 ‘생존의 기술’이다  

패기만만한 청춘과 달리 마흔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에는 나보다 센 사람들투성이다. 누구 하나 만만한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그들과 싸워 이기기보다 지지 않고 살아남기가 더 급한 과제일 수 있다. 남의 밥그릇 빼앗기를 논하기 전에 내 밥그릇 빼앗기지 않을 궁리를 해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자병법》은 더 이상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에 더 가깝다.

3. 손자병법은 ‘공존의 철학’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으로 얽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경쟁사회에서는 나 혼자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수 없다. 누군가와는 협력해야 한다. 동시에 누군가의 배신도 잊으면 안 된다. 더욱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경쟁자들도 나와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이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내가 이기기 위해 경쟁자들을 무너뜨리지만, 그들도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다.

《손자병법》에는 ‘싸움의 기본은 속임수’라는 치사한 내용도 있지만, 그 가르침의 밑바닥에는 경쟁자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인정하는 ‘공존의 철학’이 숨어 있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가르친다.  

한국 전쟁사를 인용, 손자병법과 삼국사기를 함께 읽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읽기 어려운 고전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고전을 읽다 보면 ‘기필코 완독하겠다’는 처음의 의지와 달리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고전에 비해 분량이 작은 《손자병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친절한 손자의 글을 해석하면서 ‘예화’를 들긴 하지만, 대부분 중국 고사나 유럽의 일화라 익숙하지 않다.  

저자는 이 점에 착안해 이번 책의 예화들을 대부분 《삼국사기》에서 가져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쟁사가 펼쳐져 있어 내용 이해와 집중도가 높은 것은 물론, 한 권으로 《손자병법》을 완독하고 《삼국사기》까지 맛볼 수 있어 일석이조다. 문맥을 모른 채 한 문구만을 부각시킨 기존의 고전 해설서와 달리 《손자병법》 원문과 동일하게 구성한 것도 자랑이라 할 만하다. 읽기 수월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이 책은 ‘만만한 고전 읽기’로 재탄생했다 하겠다.  

원전을 해석한 단순 해설서가 아닌 일상에서 활용 가능한 실용서 

무엇보다 저자는 ‘마흔’과 ‘조직생활’을 하는 리더의 시각에서 《손자병법》을 해석하고 있어 현실적인 부분이 많이 부각된다. 몇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답시고 허세를 부리지만, 실상은 어떤 것을 잡아야 이로운지 헛갈리기 때문에 둘 다 잡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한 마리도 못 잡는다.” (143쪽, ‘모든 곳을 지키면 모든 곳이 약해진다’ 중에서)  
“인사는 전격적으로,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조직이 흔들리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적은 알아서 무너진다. 지치고 주리고 어지럽게 해야 하는 상대는 적이다. 스스로 힘을 뺄 이유가 없다.” (177쪽, ‘지치고 주리고 어지럽게 하라’ 중에서)  

“시시콜콜한 병사들의 사생활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관심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무심한 사람의 눈에는 별 것 아닌 깨진 유리창 하나지만, 관심 있는 사람의 눈에는 많은 뜻을 담고 있는 게 단 한 장의 깨진 유리창이다. 그 깨진 유리창 속에 담겨 있는 속뜻을 찾아낼 때 장수는 병사들을 통솔할 수 있다. 적을 마주하는 건 그 다음 일이다.” (212쪽, ‘나아가는 데도 원칙이 있다’ 중에서)

“비단 대단 곱다 해도 말같이 고운 게 없다고 했다. 장수는 항명을 고민하기 이전에 임금을 설득해야 한다.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싸움에 지지도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장 눈앞에 있는 적과 싸우느라 정신없겠지만 등뒤에 있는 임금의 관심도 살펴야 한다. 이걸 아부라고 부른다면 아부, 아첨이라고 부른다면 아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수는 깨진 유리창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민감한 촉수를 세우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 촉의 대상은 부하들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임금이기도 하다. 왜 쓸데없는 일에 힘 빼느냐고 푸념할 필요 없다. 그게 장수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그래서 장수 해먹기 어렵다.” (244쪽, ‘항명은 정당한가’ 중에서)  

이런 부분들이 바로 독자를 사로잡는 대목들이다. 《손자병법》 원문을 읽으면서 매번 마음을 재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자만의 색다른 관점과 툭 내뱉는 듯하지만 꽤 농도 깊은 의미를 품고 있는 해설은 마음에 꽂혀 쉬이 잊히지 않는다. 고전을 일상에 접목해 활용하겠다는 이들에겐 더욱 실용적으로 와 닿는 부분이다. 《손자병법》을 조직생활과 일상에 적용하라는 흔한 자기계발 식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느꼈던 점들을 소신 있게 발언하는 저자의 화법은 이 책을 실용서로 읽어가는 데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손자병법에서 배우는 인생과 경영의 지혜  

始計 _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은, 이겨놓고 시작해야 한다. 이길 자신이 없으면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作戰 _ 전쟁, 오래 끌면 헛장사다  
전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 싸움은 손해를 본다고 해도 일찌감치 끝내는 게 낫다.  

謀攻 _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한 승리다  
가장 좋은 승리는 좋게 타일러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목적을 이뤘다면 모양새가 어떠하든 간에 그 싸움은 이긴 것이다.  

軍形 _ 이기는 싸움만 한다  
싸움은 지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이길 싸움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때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兵勢 _ 계란으로 바위치기? 바위로 계란치기!  
싸움은 세가 결정한다. 그러나 세는 미리 결정된 게 아니다. 만들어낼 수 있다.

虛實 _ 선택과 집중  
모든 곳을 지키면 모든 곳이 약해지는 법이다.  

軍爭 _ 지름길은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마음만 급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싸움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서 시작한다.  

九變 _ 장수의 조건  
장수는 智, 信, 仁, 勇, 嚴으로 적의 힘은 약화시키고 내 힘은 극대화해야 한다.

行軍 _ 본질은 숨어 있다  
나의 일은 한발 떨어져서 보고, 남의 일은 한발 다가서서 본다. 입장 바꿔보는 것이 정답이다.

地形 _ 패전의 이유  
싸움에는 변화무쌍한 상황이라는 외부 변수가 있다. 싸울 때는 이 모든 요소를 고려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九地 _ 본심을 들키면 진다  
많은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싸움에 임하게 하려면, 그들에게 감동을 주어 마음을 다잡도록 해야 한다.  

火攻 _ 얻는 게 없으면 나서지 않는다  
전쟁은 분풀이가 아니다. 냉철하게 이익을 따져야 한다.  

用間 _ 아는 게 힘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움이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적을 아는 게 곧 승부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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