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미래인터넷, 수학으로 새판 짠다

미래인터넷, 수학으로 새판 짠다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의 도움으로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그러나 보안성, 이동성, 확장성 등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미래인터넷 연구다.


지난 3월 한 고등학생이 EBS 수능강의 사이트를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 학생은 담임교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학교 홈페이지를 디도스 공격했는데, 이게 성공하자‘EBS 같은 대형 사이트도 마비시킬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인터넷은 어느 정도의 해킹 지식이 있으면 누구나 쉽게 디도스 공격으로 특정 서버나 사이트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동영상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고, 휴대전화 같이 이동하면서 인터넷을 쓰는 환경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인터넷으로는 이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인터넷은 처음 구상할 때 신뢰할 수 있는‘착한’사용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 악의적인 사용자나 공격을 예측하지 못했다. 또 당시에는 이동하는 기기에서 사용한다는 생각을 못했고, 지금과 같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이용하는 상황도 고려하지 못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보완해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점과 새로운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이하 수리연)의 미래인터넷연구팀이다.

수리연의 미래인터넷연구팀은 2008년부터 국가사회적 문제해결형 과제(NAP)의 하나인‘미래인터넷 네트워크 모델 개발’연구를 서울대, KAIST와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특히 연구팀은 지금의 인터넷을최적화이론과 그래프이론, 게임이론 같은 수학적인 도구를 이용해 분석한 뒤, 수학적인 원리를 찾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인터넷 모델을 제시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디도스 공격도 막을 수 있는 미래인터넷

“고등학생이 집에서 EBS 사이트를 마비시킬 정도로 인터넷은 허점도 문제점도 많습니다. 인터넷 구조에 수리과학적 원리가 들어가면 예측가능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그러면 디도스 공격 같은 걸 막을 수 있어요.”강정임 미래인터넷연구팀 팀장은 미래인터넷 연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구팀의 허지완 박사는“현재 인터넷은 공학적으로 만들어져 문제가 생기면 조금씩 고치면서 해결하는 방식”이라며 “이런 특성 때문에 기존과 다른 인터넷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 인터넷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지금 시스템을 계속 보완해가는 방법이다. 아파트가 오래돼 수도관에서 녹물이 나오고 창문에 틈이 생겨 찬 바람이 새어들 때 수도관이나창문을 조금씩 수리하며 사는 방법과 비슷하다. 다른 하나는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고 앞으로 나타날 문제를 대비할 수 있는 새로운 인터넷을 만드는 것이다.문제가 있는 아파트를 완전히 허물고 새로 완벽하게 짓는 셈이다. 미래인터넷 연구팀은 이처럼 인터넷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팀의 허지완 박사(왼쪽)와 다난자이 싱 박사(가운데), 권오규 박사가 효과적인 네트워킹에 관해 논의하고있다.


수학으로 인터넷 연구하는 법

그런데 수학적으로 인터넷을 어떻게 연구할까? 네트워크 상황은 교통상황과 비슷하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있고 그 사이에 차량 대신 데이터가 오갈 뿐이다. 즉 교통상황에서 수학의 역할을 상상하면수학이 네트워크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퇴근시간에 직장 M에서 H라는 주거지까지 10대의 차가 이동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때 갈수 있는길은 둘이다. 하나는 폭이 좁은 지름길 A인데, 1대만 지나가면 1분이 걸리지만 차가 많아지면 정체가생겨 이동시간은 이동차량수만큼 늘어난다. 즉 a대면 a분이 걸린다. 반면 B는 빙 돌아가는 길이지만 폭이 넓어 차가 많아져도 이동시간은 무조건 10분이 걸린다.

10대의 차가 어떻게 이동해야 전체 이동시간이 최소가 될까? 모든 차량의 이동시간을 더했을 때 가장 적은 시간이 나온 경우다. A로 가는 차량수를 a, B로 가는 차량 수를 b라고 하면 a+b=10이라는 식과 총 이동시간 = (A로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이동차량수) + (B로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이동차량수) = a×a+10×b라는 식이 생긴다. 두 번째 식이 최솟값을 가질 때가 가장 효과적인 이동경로다. 즉 a2 + 10(10-a) = a2-10a+100 = (a-5)2+75이므로 a=5, b=5일 때 75분이라는 최소 이동시간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로는 앞의 상황에서 개인에게는 5대가 이동할 때 5분이 걸리는 길 A를 선택하는 것이 차량이 늘더라도 항상 10분이 걸리는 길 B를 선택하는 것보다 이득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운전자는 자신의 이동시간을 줄이려고 A를 선택한다. 결국 a=10, b=0이 돼 전체 이동시간은 100분이 된다. 운전자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판단이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비용을 늘려 전체에게는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이때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사람들이 전체를 고려해서 판단하지 않으면 총 이동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수학적인 연구에 따르면,실제 생활에서는 도로를 더 늘리는 것보다 기존 도로 하나를 막거나 없애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있다.

이처럼 수학은 가장 효과적인 이동경로와 방법을 찾도록 돕는다. 미래인터넷에서도 최적화이론, 그래프이론, 게임이론 같은 수학적 접근법으로 인터넷에서 가장 효과적인 네트워킹 방법을 찾고 있다.
 
M에서 H로 가는데 10대의 차가 어떻게 이동해야 전체 이동시간이 최소가 될까?


미래인터넷이 꿈꾸는 세상

미래인터넷 환경이 만들어지면 무엇이 좋아질까? 우선 디도스 공격 시 나타나는 패턴과 같은 특성을 수리과학적인 방법으로 파악해 공격을 감지해낸다. 이를 감지한 시스템은 중간에서 접속이나 데이터를 분산시켜 공격을 근본적으로 막아낸다. 한 번만 인증하면 모든 사이트를 계속 이용할 수도 있게 된다. 한 사이트를 다시 접속할 때마다 또는 여러 사이트를 접속할 때마다 매번 로그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결해준다.

또 콘텐츠중심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어떤 동영상을 내려받으려고 할 때 현재 인터넷에서는 라우터라고 하는 중계 장치를 통해 정보를 보내고, 원하는 동영상은 서버에서 내려받는다. 이때 여러 경로를 거치며 최종 목적지에서 이른다. 하지만 콘텐츠중심 네트워크에서는 라우터가 이전 사용자가 찾았던 동영상을 저장하는 역할도 해, 서버까지 가지 않고도 동영상을 저장해놓은 가까운 라우터에서 받을 수 있다. 현재 위험수위에 다다른 정보전송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미래인터넷 연구다.

사용자중심 네트워크도 만들어진다. 거실에 아버지가 나오면 TV에 뉴스가 나오고, 학생이 등장하면 교육뉴스나 취미와 관련된 내용을 보여준다. 이는 상황을 인식하는 장치 덕분에 가능하다. 이 시스템은 네트워크 도움 없이도 구축할 수 있지만 네트워크 차원에서 구축하면 사용자가 어디를 가든지 자신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다. 항상 인터넷에 접속하기 때문에 회사나 학교 등 장소가 바뀌어도 개인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는 것. 사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이용한다는개념의 유비쿼터스 환경도 네트워크의 도움이 없으면 구현되기 어렵다.

미래인터넷에서는 사람이 온라인으로 인맥을 구축하듯 네트워크 장치인 라우터끼리‘소셜네트워크’를 구축할 수도 있다. 기계장치인 라우터에도 친구관계를 맺는 개념으로 가까운 라우터, 신뢰할 수 있는 라우터 등을 적용하면 라우터가 더 똑똑하게 *인터넷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다.

* 인터넷 트래픽 인터넷 사용자가 주고받는 데이터 양이다. 보통 방문자가 많을수록 커진다.


“엔진처럼 인터넷에 혁신적인 변화 꿈꿔”

“동물의 도움을 받던 교통수단이 엔진이 발명되면서 크게 달라졌어요. 미래인터넷 연구도 엔진과 같이 인터넷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강정임 팀장은 연구팀의 미래인터넷 연구를 교통수단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킨 엔진의 발명에 비유해 설명했다.

“우리 팀에는 수학자, 물리학자, 공학자들이 모두 있는데, 때로 같은 단어에 대해서 서로 의미하는 바가 달라서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물리학자가 도로망의 효율성을 연구하는 수송 네트워크를 이야기할 때, 공학자는 도로를 네트워크로, 자동차를 인터넷 트래픽으로 생각하고, 수학자는 함수를 생각하거나 그래프를 머릿속에서 그려요.”

이처럼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은 각기 전공에 따라 같은 현상을 보고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관찰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항상 같은 것이 있다. 모두가 네트워크를 더 좋게 만들려고 한다는 목표이다. 강 팀장은“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수학과 같은 원리적인 접근이 필수”라며“모든 문제를 수학으로 풀어낼 순 없지만 실생활에는 수학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수학동아 독자에게 수학의 매력을 설명했다.
 
연구팀은 강정임 팀장(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같은 수학자는 물론 공학자와 물리학자가 협력해 인터넷을 수리과학적 접근법으로 연구하고 있다.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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