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5일 일요일

세상은 구부러졌다

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가장 짧은 길이의 선을 구하는 문제를 종종 접하게 된다. 이는 최단 거리를 구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중간에 어떠한 장애물도 없을때 집에서 학교까지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어떤 모양일지 구하는 문제가 그 예다. 답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곧은 선이다.
최단 거리도 굽은 선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다. 지구는 둥글다. 평평해 보이는 길이라도 굽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위 문제의 답을 곧은 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굽어 있는 선이다. 지구는 공 같이 생긴 ‘곡면’으로 이뤄져 있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곡선과 관련된 문제는 모두 ‘유클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가 만든 수학 분야다. 최초로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2000년 이상 유일한 기하학으로 받아들여졌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평면’ 위에서만 점, 선, 면 등을 다룬다. 유클리드는 다음의 다섯 가지 공리★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평면에서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곡면에서는 다섯 번째 공리가 옳지 않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기하학★ : 점, 선, 면, 도형, 공간 등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다.
공리★ : 증명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명제다.
새로운 기하학의 탄생
다섯 번째 공리에 문제가 있다는 고민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수학자 지오바니 사케리다. 처음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집대성한 ‘원론’으로 기하학을 연구했지만, ‘평행선 공리’라고 불리는 다섯 번째 공리에 의심을 품었다. 이를 부정하고 모순을 증명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리를 많이 얻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사케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건 아니다. 뒤를 이어 독일의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러시아의 니콜라이 로바쳅스키, 헝가리의 보여이 야노시, 이탈리아의 에우제니오 벨트라미 같은 수학자가 연구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평행선 공리를 부정하면 기하학에 모순이 생기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하학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의 노력으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탄생했다. 서검교 숙명여대 수학과 교수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맞먹는 수학계의 대혁명이었다”며, 비유클리드 기하학 탄생의 의미를 설명했다.

우주도 굽어 있다
가우스의 제자였던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은 19세기 중반 ‘기하학의 기초를 이루는 가설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구부러진 세상의 기하학에 대해 강연했다. 여기서 ‘리만 기하학’이 탄생한다. 리만은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달리 ‘곡률’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곡면이 얼마나 굽어 있는지 잴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다. 60년 뒤 리만 기하학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가 된다.

아인슈타인은 사실 리만 기하학에 대해 잘 몰랐다. 대학 동기였던 수학자 그로스만이 아인슈타인에게 리만 기하학 같은 고등 수학을 가르쳐주면서 알게 됐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을 생각해냈고,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만일 내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몰랐다면 결코 상대성이론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 지구와 우주는 굽어 있다. 그것을 깨닫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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