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펜보다 키보드

펜보다 키보드

시대에 따라 키의 개수 변해

컴퓨터 전원을 켜고 부팅이 되는 동안 할 일이 없다. 키보드를 내려다보다가 키가 전부 몇 개인지 세보기로 했다. 총 106개다. 키의 개수를 굳이 106개로 한 이유가 뭘까?

영어권 나라에서 많이 쓰는 키보드는 키의 개수가 총 104개다. 우리나라 키보드에서 한/영 키와 한자키가 빠졌을 뿐이다. 현재 대부분의 키보드는 1984년 IBM에서 개발한 ‘모델 M’ 키보드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그 이전인 1981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와 함께 키를 5열로 배치한 키보드가 있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엔터 키나 시프트 키의 크기가 작고 키의 수도 83개에 불과해 불편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델 M은 키를 6열로 배치하고 화살표나 편집할 때 많이 쓰는 키를 넣어 키의 개수를 101개로 늘렸다.현재 쓰는 키보드와 다를 바 없었다.‘윈도95’가 나온 뒤에는 키가 3개 더 생겼을 뿐이다. 스페이스바 좌우에 윈도 키가 하나씩, 거기에 메뉴키가 하나 덧붙어 총 104개가 됐다. 윈도를 운영체계로 쓰는 컴퓨터의 키보드가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동하면서 쓸 수 있는 노트북 컴퓨터가 나오면서 여기에 적당한 키보드가 필요했다. 1987년 도시바의 노트북에 달린 키 84개짜리 키보드는 노트북용 키보드의 표준이 됐다. 노트북은 공간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숫자패드를 없애고 자주 쓰지 않는 키는 다른 키와 기능을 합쳐 쓴다. 그 뒤로 윈도 키나 알트 키를 1개로 줄이고 몇몇 키를 덧붙이면서 현재는 노트북용 키보드로 키 83~89개짜리가 많이 쓰인다.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은 터치패드형 키보드 시대를 활짝 열었다. 화면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키를 넣으려다 보니 개수를 줄여야 했다. 키의 개수는 키의 크기와도 관련이 있다. 키의 개수를 줄여야 키하나의 크기를 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키는 최대한 큰 게 좋다. 현재 터치패드형 키보드는 키의 개수가 34개 정도에 불과하다.

키의 배치가 정삼각형일 때는?

키보드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키의 배치가 사뭇 신기하다. 키 하나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상하좌우에 있는 키가 조금씩 다르게 놓여 있다. 규칙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묘한 균형을 이룬다.

컴퓨터 키보드는 오래전부터 쓰이던 타자기 자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계식 타자기의 자판은 각 열의 자판이 비스듬하게 놓여 있다. 타자기는 키 하나를 치면 아래에 있는 먹지 리본이 종이에 글자를 표시한다. 이때 먹지 리본이 서로 엉키지 않도록 자판의 위치를 조금씩 비스듬히 놓은 것이다.

컴퓨터 키보드는 타자기 자판을 기초로 하고 손목 각도와 손가락 길이의 평균을 고려해 키의 크기와 배치를 조절했다. 예를 들어 J 아래에 있는 N과 M, J 위에 있는 U와 I를 비교해 보자. N과 M은 J를 좌우로 나눈 선을 기준으로 대칭을 이룬다. 세 키의 중심점을 이으면 정삼각형이 나온다. 하지만 U는J와 가까운 위치에, I는 J보다는 K와 더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다. J를 기준으로 U가 N보다 더 가까이 있는 이유는 집게손가락을 굽히는 것보다 펴는게 더 어렵기 때문이다. 즉 손가락을 움직이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J 위치에 집게손가락을 올려놓고 실험해 보면, 지금보다 U가 더 왼쪽에 있었거나 N이 더 오른쪽에 있었다면 손가락을 움직여 키를 누르기가 지금보다는 불편했을 거라고 느끼게 된다.

손가락의 힘이 서로 다르다는 점까지 고려한 키보드도 있다. 미국의 한 입력장치 회사는 키의 압력을5가지로 구분한 키보드를 개발했다. 제일 힘이 약한 새끼손가락으로 누르는 키에는 35g, 일반 키는 45g, 시프트 키를 포함한 편집 키나 위쪽에 있는 기능 키에는 55g, 엔터 키는 65g, 스페이스 바나 알트, 컨트롤 키에는 제일 무거운 80g의 압력을 적용했다. 각 키가 각 손가락의 힘에 맞게 만들어져 타자를 오래 할 때 특정 손가락이 피곤하게 되는 경우를 줄인 셈이다.

키보드에는 손가락과 손목을 편하게 하는 인체공학 기술이 많이 담겨 있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높이 조절 장치다. 키보드 뒷면에는 키보드 윗부분을 들어 올려 기울기를 조절하는 장치가 있다. 책상과 의자의 높이, 앉은키에 따라 키보드의 기울기를 적당히 조절하면 손목의 피로를 줄일 수 있다.
 
각 손가락의 힘에 따라 키의 압력을 다르게 만든 키보드.
 
키보드를 눈높이로 올려서 보면 대부분의 키는 손가락이 쏙 들어가도록 오목하게 생겼다. 하지만 맨 아래의 스페이스 바는 볼록하다.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기 쉽도록 만든 것이다. 같은 이유로 맨 아래 열의 키 전체를 볼록하게 만든 키보드도 있다.

키보드를 옆에서 봤을 때, 전체적으로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키보드도 있다. 이 키보드는 위 열일수록 키가 몸 쪽을 향하고, 아래 열일수록 키가 모니터 쪽으로 기울어 있다. 손가락이 각 키에 일정한 넓이로 닿을 수 있도록 각 열마다 키의 각도를 조절한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처리한 키보드의 기술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각 열마다 키의 각도를 달리해 쓰기 편하게 만든 키보드도 있다.
 
최고의 한글 자판은 어떤 조합일까

키보드의 영문 자판은 대부분 쿼티(QWERTY) 배열로 돼 있다. 쿼티는 키보드 왼쪽 위에 연속해 있는 알파벳 여섯 글자를 딴 이름이다. 타자기 시절부터 자주 쓰는 알파벳을 적당한 간격으로 배열한 것이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쿼티 배열에서 Q, W, Z, X처럼 많이 쓰지 않는 알파벳은 끝부분에 있다.

한글 자판 역시 한글의 특성을 잘 살렸다. 우리나라는 1982년부터 두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두벌식이란 왼손에 자음, 오른손에 모음을 배치해 자음, 모음 또는 자음, 모음, 자음 순서로 입력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한글은 자음이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14개에 쌍자음 ㄲㄸㅃㅆㅉ 5개로총 19개, 모음은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ㅐㅔㅒㅖㅚㅙㅘㅝㅞㅟㅢ로 21개다. 알파벳 26자로 된 영문 쿼티 자판에 맞추려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26개의 키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두벌식 자판은 자음 19개 중에서 단자음 14개만 자판에 배치하고 쌍자음 5개(ㄲ, ㄸ, ㅃ, ㅆ, ㅉ)는 위 글자로 시프트 키와 함께 쓴다. 모음 21개 중에서는 기본 모음 10개(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ㅣ)에 자주 쓰는 ㅐ와 ㅔ를 추가해 12개의 모음만을 자판에 배치했다. ㅒ와 ㅖ는 위 글자로 시프트 키와 함께 쓴다. 나머지는 다른 모음을 조합해 쓴다.

두벌식 자판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시프트 키와 함께 쓰는 위 글자가 7개나 된다는 점이다. 타자를 할 때 시프트 키는 손가락에 부담을 많이 준다. 한글 타자에서 오타가 생기는 경우도 대부분 시프트 키와 관련이 있다. 왼쪽에 자음, 오른쪽에 모음을 두는 것이 두벌식의 기본인데, 모음인‘ㅠ’가 왼손에 할당돼 있는 것도 문제다.

김국 서경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두벌식 자판을 쓰기 편하게 고치는 방법을 제안했다.기존의 두벌식 자판을 최대한 그대로 사용하되 시프트 키 대신 키 하나를 연속해서 2번 누르는 방법을 사용하는 안이다.

연구팀은 먼저 백과사전에 있는 15만자에 사용된 초성과 중성, 받침의 개수를 계산했다. 그 결과 초성에는 ㅇ이, 중성에서는 ㅏ가, 받침에서는 ㄴ이 가장 많이 쓰였다. 이와 함께 의미 있는 결과도 나왔다. 초성(자음)에는 ㄸ이 ㅋ보다 많이 쓰였고, 받침에는 ㅆ이 ㅁ이나 ㅂ보다 많이 쓰였다. 중성(모음)에는 ㅖ가 ㅒ보다 많이 쓰였다. 현재 두벌식 자판에서 위 글자에 배치된 글자 중에 자판에 배치된글자보다 더 자주 쓰이는 글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연구팀은 자판의 각 키가 손가락에 주는 부담을 점수로 계산했다.
 
또한 연구팀은 자판의 각 키가 손가락에 주는 부담을 점수로 계산했다. 각 키마다 손가락의 힘과 자판의 위치에 따라 부담 점수를 다르게 줬는데,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치는 키는 1점, 넷째 손가락으로 누르는 키는 2점, 새끼손가락으로 누르는 키는 3점으로 했다. A 키가 있는 열을 기준으로한 열 아래나 위에 있는 키는 1점을 더했다. 기준에서 멀수록 점수 차를 더 크게 늘렸다. 시프트 키는 키의 크기와 필요한 힘을 고려할 때 20점으로 했다. 글자가 자주 쓰이는 횟수와 손가락에 주는 부담점수를 기초로 연구팀은 아래와 같이 개선된 자판을 내놓았다. 내년이면 30살이 되는 두벌식 자판에 새로운 변화가 기대된다.

김국 교수가 제안한 두벌식 자판 개선안
 
김국 교수가 제안한 두벌식 자판 개선안
 
① 시프트 키 대신 같은 키를 2번 누르는 방식으로 모음을 입력한다.(ㅏ/ㅐ, ㅑ/ㅒ, ㅓ/ㅔ, ㅕ/ㅖ, ㅗ/ㅘ, ㅛ/ㅚ, ㅜ/ㅝ, ㅠ/ㅟ, ㅡ/ㅢ, ㅣ) 물론 기존 방식도 가능하다.
② 기본모음이 아닌 ㅐ와 ㅔ는 ① 방식으로 입력하고, ㅐ 자리에 ㅠ를 넣어 왼손으로 자음을, 오른손으로 모음을 입력한다.
③ ㅔ 자리에는 쓰임이 많은 ·(가운뎃점)을 넣는다. 고어인 아래아 역할도 할 수 있다.
④ ㅠ 자리에는 많이 쓰는 ㅆ를 넣는다.
⑤ 쌍자음 중 ㄲ, ㄸ, ㅃ, ㅉ은 ㅋ, ㅌ, ㅍ, ㅊ의 위 글자로 옮겨 편의성을 높인다.

한 손 키보드
 
한 손 키보드
 
양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 손 키보드가 있다. 단 5개의 방향 키로 한글과 영문을 모두 입력할 수 있다. 글자를 쓰는 흐름대로 방향 키를 움직이면 모니터에 입력된다. 예를 들어 8을 누르고 9를 지나 6을 누르면 ㄱ이 입력되는 식이다.

두벌식 자판의 도깨비불 현상

두벌식 자판에는 ‘도깨비불 현상’ 이 일어난다. 입력된 자음이 받침인지 다음 글자의 초성인지를 알지 못해, 우선 받침으로 보여주고 다음 글자가 모음이면 옮겨가는 것이다.‘가을’을 입력할 때, ‘가 → 강 → 가으→ 가을’ 순이 된다. 이 때문에 컴퓨터가 아닌 기계식 타자기에는 두벌식 자판을 사용할 수 없다.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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