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두 개의 박스가 세상을 바꾸다

1956년 4월, 뉴저지주 뉴워크 항. 부두 하역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그들 앞에 나타난 거대한 관경에 일제히 넋을 잃고 모두 시선을 한 곳으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어디로 보나 미적 감각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수십 개의 거대한 박스가 기중기에 의해 유조선으로 옮겨지는 관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새로운 관경을 지켜본 이들 중 자신이 역사의 전환점에 선 목격자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가 있었을까? 이 강철 박스는 다름 아닌 바로 컨테이너였다.

경제학자인 마크 레빈슨(Marc Levinson)은 그의 저서 '강철 박스가 만들어낸 신화'에서 바로 이날을 운송의 혁신이자 세계 경제의 혁명이 시작된 날로 칭한다. 컨테이너가 탄생하기 전, 부두의 하역과 선적은 수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에 의해 이뤄졌었다. 젊은이들은 항구로 모여들었고 항구는 대도시화 되었다. 당시 비싼 물류비로 인해 제조업체는 소비자가 많은 항구에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항구는 제조 생산 기지이자 한편으로는 소비자들이 모인 시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견고하던 항구-생산기지-소비시장이란 연결고리는 투박하고 거대한 박스의 탄생에 파괴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노동 인력에 의지해 몇 주나 걸리던 적재-하역 작업은 단 몇 시간 만이면 가능하게 되었다. 컨테이너를 통해 항구에서 철도와 트럭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수송의 혁신으로 운송비용은 파격적으로 곤두박질 쳤고, 기업은 땅 값이 싼 외곽으로 제조시설을 옮기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소비자가 머무는 지역을 떠나 더 싼 값에 생산할 수 있는 저개발국으로 향했다. 바로 글로벌 공급 생산망이 탄생한 것이다.

물류의 이동 그리고 공급 사슬망의 효율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부상하면서, 기업은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제조시설을 선택하고 물류 이동을 설계하기에 이르렀다. 경영학의 ‘공급 사슬망 경영 (Supply Chain Management)’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의 핵심이 바로 수학 알고리즘이다. 수학자들은 이미 19세기부터 물류의 효율적 이동의 근본인 최단 거리 경로란 문제를 고민해 왔으며, 확률 이론에서 다루는 불확실성을 이용해 예측 불가능한 수요의 변동 예측과 재고관리에 응용하였다. 기업의 물류담당 임원이 수학자에게 조언을 받는 세상을 어디 상상이냐 했으랴! 수학자들의 이론이 현실화되고 기업 경쟁력의 수단이 된 것은 다름 아닌 투박한 박스 - 컨테이너의 탄생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2010년 1월 27일. 세계의 시선은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연단에 올라온 사내에게 집중되었다. 스티브 잡스다. 애플 신제품 발표회장에 선 그는 마치 모세가 십계명판을 들어올리 듯이 네모난 얇은 박스 모양의 아이패드를 들고 세계를 향해 새로운 혁명을 ‘계시(啓示)’했다. 애플이 창조한 것은 새로운 기기 그 이상이다. 컴퓨터도 아닌 스마트폰도 아닌 새로운 ‘종(種)’의 탄생과 새로운 게임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리고 신문 및 출판 미디어 업계가 이 게임의 가장 중심에 설 것이란 사실에 이견은 없는 듯하다.

기존 활자 매체나 컴퓨터가 제공할 수 없었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 벌어질 새 게임에서의 구도변화를 어느 정도 예견케 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종’의 탄생의 가치가 하드웨어적 우위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종’은 수학적 알고리즘이란 새로운 유전자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어떤 기사나 책을 읽는지, 또 어느 시간대 어디에서 읽는지 등 독자의 모든 행동은 바로 휴대 기기를 통해 컨텐츠 제공 업체의 데이터베이스에 고스란히 축척된다. 이 데이터가 모이면 신문사와 컨텐츠 제공 업체는 독자마다 차별된 기사 배치와 광고 설정이 가능해진다. 신용카드업체에서 고객의 소비패턴 데이터를 이용해 취향을 파악하고, 고객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 관계 관리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가 신문과 출판업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용자의 패턴 분석을 통해 콘텐츠의 사용성을 늘리는 방식은 이미 전자책에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시도 중이다. 전 세계 최대 전자책 앱(App)인 아마존(Amazon.com)사의 킨들(Kindle)로 책을 읽다보면 밑줄 처진 단락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독자들이 그어 놓은 밑줄을 공유하는 기능이다. 책을 읽는 독자가 의미있는 단락에 밑줄을 표시하면 이 정보는 킨들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고 같은 단락에 많은 독자들이 밑줄을 표시했으면 이 밑줄은 이 책을 읽은 모든 독자에게 공유된다. 수 십만에 이르는 독자들의 개개인 데이터를 취합해 이를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기술적 증거다.

미국 TV 방송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학의 최적화 알고리즘을 이용해 시간대별 광고 배치를 결정한다.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광고들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 알고리즘은 비행기 항공사 가격결정을 최적화하는 수익 경영 (Revenue Management)과 흡사하다. 이러한 방식은 거액을 들여 실시간 시청률을 조사할 수 있는 대형 TV미디어 업체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아이패드와 같은 개인용 미디어 기기가 보편화 되면 수많은 미디어 업체들이 수익 경영에서 사용된 방식을 통해 광고 효과를 최대화하는 일이 개개인 사용자에게 적용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미디어 업계도 신용카드사에서 활용하던 CRM과 항공업계의 핵심 경영 기술인 수익경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이 고민의 핵심에는 바로 고도의 수학 알고리즘이 있다.

1950년대 탄생한 거대학 박스는 단순한 부두 선적 문제를 공급사슬망 관리란 수학적 알고리즘 문제로 진화시켰고 이 결과 세계 물류의 혁명을 가져다주었다. 21세기를 맞는 우리는 또 다른 네모난 박스가 일으킬 새로운 혁명에 주목하고 있다. 50년대 거대한 박스가 물류, 즉 하드웨어 이동의 혁명이었다면, 이 작은 네모난 박스는 정보와 미디어의 혁명이 될 것이다. 이제 펼쳐질 새로운 미디어의 게임. 이 게임의 본질인 수학적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이를 기업의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는 기업이 승리자가 될 것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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