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국제 바칼로레아 교육과정으로 수업을 받아본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2017년 12월 13일에 이 학교 1층 회의실에서 8명을 만나 이들이 IB 교육과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봤다. 20분만에 모두 인터뷰하기 어려워 공통 질문을 주고 답변 내용을 종이에 적어서 제출하게 하는 방식을 병행했다. 한 학생이 글쓰기가 중요하다며 발표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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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대학입시와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평가혁명'에 착수했다. ①대학입학 공통시험(일본 수능)의 일부 문제를 논술형으로 출제하고 ②공교육에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교육과정을 도입했다. ③대입 논술 문제를 좀 더 수준 높게 출제하라고 각 대학에 지침을 내렸다.
반면에 한국은 ①대입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②대입전형에서 일부 대학은 논술고사를 전면 폐지하거나 축소했으며 ③질 낮은 암기식 내신 문제로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기고 공정성마저 상실한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했다.
한국과 일본의 교육은 마치 정반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 교육을 이대로 방치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고까지 걱정한다.
한국 교육의 혁신을 위해 '일본교육혁명, 그 현장을 찾아서'를 주제로 기획 취재를 시작한다. 일본의 일선 학교들과 교육 전문가들을 취재하여 일본교육 평가혁명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그 첫 단계로 홋카이도에 있는 '시립 삿포로(札幌) 가이세이(開成) 중등교육학교'를 현장 탐방했다. 이 학교는 삿포로시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로 IB 논술형 교육과정을 4년째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제학교'가 아니라 '공립학교'에서 IB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한국 공교육이 본보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교육회의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IB 교육과정을 한국 공교육에 적용하는 게 좋겠는지 토론해 보고, 교육담당기자들도 일본 교육의 혁신 현장에 가보면 좋겠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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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문 실력 있어야 지식 응용 가능"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3학년 학생(왼쪽 두 번째)이 '글쓰기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작문 실력이 있어야 지식을 응용할 수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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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3일 오후 일본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1층 회의실.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교육과정을 도입한 이 학교 중학생 8명에게 수업 소감을 들어봤다. 20분밖에 시간이 없어 이들을 각각 인터뷰하기는 힘들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 공통질문을 주고 각자 종이에 답변을 적어내게 했다.
"행복합니다."
"즐겁습니다."
"재미있습니다."
"만족합니다."
학생들에게서 거의 같은 답변이 나왔다. 이들은 IB형 교육에 한결같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8명이 전체 학생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학생들은 토론논술과 과제연구에 재미를 붙였다고 했다. 단 한 명도 지루하다거나 어렵다고 답변하지 않았다. 3일간 수업을 참관하면서 만나본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점수 경쟁에 내몰려 학업에 지친 일부 한국 학생들의 표정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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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형 수업이 좋은 이유"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IB 교육과정으로 공부하는 소감을 종이에 각자 적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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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면서 문제 푸는 활동 정말 즐거워"
키타야마 유우지(北山勇次, 1학년) 군은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이토 하루키(斉藤陽己, 1학년) 군은 "수업 시간에 교사에게 얼마든지 질문할 수 있다"면서 "어떤 질문을 해도 문제 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외국인들과도 교류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분야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어 IB형 교육에 만족합니다. 특히 토론하여 문제를 푸는 활동이 즐겁습니다. 배경지식을 쌓고 관심 분야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1학견 야마모토 쇼고군. 山本匠悟)
"세상 사는 데 필요한 지혜와 경험을 얻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토론하고 소통하는 능력은, 다른 교육과정으로 공부하는 학교의 학생들보다 더 우수할 겁니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봅니다."(3학년 타키모토 네네양, 滝本寧々)
이토 슌타(伊藤駿太, 1학년)군은 "(친구들과 협력하여 활동하는 일이 많다 보니 서로 친해져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없다"면서 "아무 걱정 없이 즐겁게 학교에 다닌다"고 말했다. 쿠보 슌스케(久保俊介, 3학년) 군은 "친구들과 마음껏 소통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서 "사회에 나가서도 이것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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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런가 하면" 학생에게 질문을 받은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과학 교사가 지구 모양의 큰 풍선을 들고 답변해 주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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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같은 객관식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아예 없어"
학생들은 대부분 '과제탐구 보고서 수업'에도 만족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이패드(iPad)를 활용하여 자료 조사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고 말했다. 한국처럼 객관식 선택형 문제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는 대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해서 부담스럽다고는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탐구하여 글로 정리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에서는 과제탐구학습을 위해 수업 시간에 아이패드(iPad)를 사용하게 한다. 정보들을 재조직하여 생각을 구성하는 데 활용하라는 취지다.
미즈시마 타네키(水嶋胤喜, 1학년)군은 "보고서를 써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궁금한 분야를 마음껏 찾아가면서 공부할 수 있고 국제적인 시야도 넓힐 수 있어 유익하다"고 말했다. 또, "대학생이 되어서도 보고서를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타키모토 네네양은 "정보 검색에 아이패드를 요긴하게 활용한다"면서 "아이패드로 자료를 조사하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는 활동이 즐겁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소통하고 자료를 찾아볼 때 재미가 있습니다. 아직은 나이가 어리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타키모토 네네양)
"글로 써내는 숙제가 많지만 집중하여 작업하면 어느새 끝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습니다. 문장력이 있어야 지식을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보고서를 쓰는 일이 유익하다고 봅니다."(이토 슌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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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별 활동 재미있어요"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과학 시간에 학생들이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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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치열한 토론...학교생활 정말 재미있고 즐거워
일부 학생들은 토론 수업이 즐겁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가 머리에 넣어주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주제를 정해 놓고 급우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학업의 재미를 맛본다고 했다.
니시야 후우카양은 "역사나 체육, 동물 등 친구들마다 좋아하는 게 모두 다르다"면서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문제 해결 방법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찾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사이토 하루키 군은 "토론식 수업이고 친구들 성격도 좋아 대화하기가 수월하다"고 밝혔다.
"조별 토론은 물론 반 전체가 모여 치열하게 토론할 때 흥미진진합니다."(키타야마 유우지양)
"친구들 모두 재미있게 토론하고 선생님들도 도움을 주셔서 학교생활이 즐겁습니다."(쿠보 슌스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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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별 공동작업"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가정 시간에 학생들이 조별로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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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활동 하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인성 갖춰
학생들이 IB형 수업에 만족해하는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아이자와 교장은 조별학습 등 학습자 중심 수업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지식 습득보다 지식 활용을 중시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등 함께 사는 삶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학교를 집에서처럼 편하게 느끼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조별 토론은 학생들이 급우들을 이해하고 각자의 차이를 상대의 좋은 점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집단 따돌림 현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집단 따돌림이 하나도 없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 학생들은 정말 서로 친하게 지냅니다. 조별 학습을 하면서 예방 효과를 본 겁니다."
아이자와 교장은 "학생들은 학습자 중심 수업에 참여하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실감한다"면서 "사회 진출 뒤에도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을 익힌다"고 말했다. 또 "시험 범위를 공부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평생 경쟁력을 키운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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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형 수업이 좋은 이유"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아이자와 교장이 IB 교육과정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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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도움받는 대신 혼자 공부하는 데 익숙"
예상대로 사교육 의존도는 높지 않았다. 인터뷰한 8명 중에서 3명만 사설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미즈시마 타네키군은 "일주일에 네 번 학원에서 영어, 수학, 국어를 공부하고, 사회와 과학은 독학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토 슌타군은 "학교 공부만으로는 부족해 주 3~6회 학원 수업을 듣는다"면서 "특히 이과 과목에서 학원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밝혔다. 쿠보 슌스케군도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학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수학과 영어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사이토 하루키군은 "학원에 다니지 않지만, 학원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며 "그 이유는 학교 수업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더 높은 수준으로 똑똑해지고 싶은 마음에 일부 친구들이 학원에 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니시야 후우카양은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부족한 과목은 스스로 집에서 공부하여 해결한다"면서 "그렇게 해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타키모토 네네양은 "학원과 학교의 공부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면서 "그런데 혼자 공부하다 보니 영어 공부는 좀 어렵다"고 밝혔다.
이 학교의 고교 과정 학생들은 아직 IB 교육과정에 들어가지 않아 중학생들만 인터뷰를 했다. 이들의 취미는 수학 문제 풀이부터 야구, 서예, 가라테, 노래, 재즈, 다도,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장래희망은 수리연구원, 의사, 수학 교수, 난민 구호가, 음악가, 농학(農学) 연구원 등으로 조사됐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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