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일 화요일

기억은 어디에 저장되는 걸까


뇌 겉부분에 뉴런 1000억개…외부 정보에 자극받으면 전기신호 발생시켜 분산 저장

10년 만에 나간 동창 모임에서 한 친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도통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색한 악수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친구가 "너희 땡땡이 쳤다가 걸려서 같이 청소했잖아"라며 참견을 한다. 그 순간 곧바로 친구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동창의 이름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일까.
기억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인간이 외부 환경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정보를 뇌에 받아들이는 과정을 학습(學習)이라고 한다. 시각·촉각·후각·청각 등을 통해 체험하는 모든 것이 학습이다. 학습한 정보를 잘 저장하고,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도록 해주는 과정이 바로 기억이다. 기억이 없다면 사람은 걸을 수도 없다. 걸음마조차도 학습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어디에 저장될까. 뇌의 겉부분인 피질(皮質)에는 1000억개에 이르는 신경세포(뉴런·neuron)가 있다. 이 뉴런에 기억이 저장된다. 컴퓨터는 휴대용 저장장치(USB)나 하드디스크처럼 특정한 곳에 기억을 모아서 저장한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여러 영역에 분산돼 저장된다. 뉴런은 우리 몸의 다른 세포와 마찬가지로 전기신호를 발생시키고 전달한다. 외부에서 온 정보에 자극을 받아 전기를 만드는 곳의 뉴런에 바로 기억이 저장된다. 한번 가본 장소에 다시 간 사람의 뇌에서는 특정한 뉴런이 신호를 낸다. 이 뉴런이 이 장소에 왔던 기억을 담고 있다가, 이전에 왔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전기신호를 읽어 신체 활동을 살피는 것으로는 심근세포의 전기신호를 측정하는 심전도가 대표적이다. 심근세포는 여러 세포가 한꺼번에 전기신호를 내면서 '박동'을 만들어낸다. 반면 뉴런은 제각각 신호를 만든다. 심장이 합창곡을 연주하는 기관이라면, 뉴런은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 비유할 수 있다.

뉴런이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것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 뉴런 간의 연결이 막혀 신호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군가 힌트를 줬을 때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신경회로가 다시 연결돼 온전한 정보를 꺼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연결에서 중요한 것이 뉴런과 뉴런이 만나는 연결 부위, 즉 '시냅스(synapse)'이다. 시냅스는 전기를 만들어내거나 전기 발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학습을 하면 시냅스에는 가시 형태가 생기는데 이를 '시냅스 가시'라고 한다. 기억이 생기면 시냅스 가시 모양이 변한다. 여러 번 반복해서 공부하면 시냅스 가시가 굵어지고 커진다. 시냅스는 매순간 역동적으로 변하는데, 나이가 들면 가시의 탄력성과 변형성이 떨어진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힘들어지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일 수많은 정보가 뇌에 도달하지만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장기 기억이 되는 것은 생존이나 먹이, 번식과 관련된 정보이다. 예를 들어 이런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경험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 한눈에 반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생존이나 번식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다르다. 사람에게는 공부가 중요하지만, 뇌는 생존과 별 관계가 없다고 본다. 결국 공부한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만들려면 반복 학습을 통해 시냅스 가시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충격을 받거나 상처를 입어 뉴런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장기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숨겨져 있을 뿐이다. 이렇게 숨겨진 장기 기억은 냄새나 촉각 등의 단서를 만나면 불현듯 튀어나온다. 맨 앞에서 얘기했던 동창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단서를 만난 덕분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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